나를 찾는 여행, 라오스에서 베트남까지

싱가포르에서 베트남까지, 엄마와 두 아이의 20일 배낭여행기

by 미나래
18721936_310516309384856_5713397751790698496_n.jpg?type=w966

20일간의 긴 여행이 끝났다.
몸은 돌아왔지만 마음은 아직 어딘가 길 위에 남아 있다.
싱가포르의 따뜻한 햇살, 방콕의 혼잡한 시장, 라오스의 느린 강물, 하노이의 이른 새벽 냄새까지—
눈을 감으면 여전히 생생히 떠오른다.

떠나기 전, 나는 지쳐 있었다

워킹맘으로 살아오며 늘 앞만 보고 달렸다.
일은 내 삶의 전부였고, 일하지 않으면 불안했다.
하지만 어느 날 문득, 내 안에서 무언가가 말라가고 있다는 걸 느꼈다.

밤마다 불면증에 시달렸고, 무언가를 이루어도 기쁨이 없었다.
“이게 정말 내가 원하던 삶이었을까?” 그 질문이 내 하루를 지배했다.

결국 나는 사직서를 던졌다.
‘무념, 무상, 무계획.’
이번 여행의 컨셉은 그랬다.
어디든 좋았다. 단지, 내 안의 소리를 다시 듣고 싶었다.

남편과의 협상, 아이들과의 설득

“나 배낭여행 갈 거야. 육로로.”
늦은 밤, 남편에게 그 말을 꺼냈을 때 그의 얼굴엔 놀람과 걱정이 동시에 떠올랐다.
“밝은 날 다시 이야기하자.”
짧지만 단호한 대답이었다.

하지만 결국 그는 내 마음을 읽었다.
“5일까지만 비울 수 있어. 그 이후는 당신이 책임져야 해.”
그 한마디가 나를 현실로 끌어당겼다.
그렇게, 남편은 싱가포르까지 함께하고 아이들과 나는 남은 여정을 이어가기로 했다.

아이들도 처음엔 반대했다.
학교를 빠지는 것, 길고 고된 여행, 무덥고 낯선 곳에서의 불편함.
그런데 담임선생님이 말했다.
“책상 앞에서 배우는 것보다 세상 속에서 배우는 게 더 큰 공부예요.”

그 말에 나도, 아이들도 조금은 용기를 냈다.

길 위에서의 배움

2017년 5월 31일, 우리의 여행이 시작되었다.
싱가포르—말레이시아—태국—라오스—베트남.
짐은 단 세 벌의 옷, 그리고 ‘잘 살아내기’라는 마음 하나였다.

싱가포르에선 오랜 친구 질리안 가족의 따뜻한 밥상에 위로받았다.
태국에서는 거대한 와불상 앞에서 신비로움에 압도되었고, 수상시장에서는 흥정의 법칙을 배웠다.
그리고 라오스에서는, 시간이 얼마나 느릴 수 있는지를 처음 알았다.

라오스, 천천히 살아가는 법, 방비엥의 아침은 언제나 평화로웠다.

산 너머로 흘러나오는 물안개, 천천히 일어나는 아이들의 웃음소리.
나는 그 풍경 속에서, ‘살아 있음’을 느꼈다.

19050341_1941595359458394_6496412341876293632_n.jpg?type=w966

비엔티안으로 향하는 버스터미널에서
우린 ‘VIP버스’를 예약했지만 도착한 건 낡은 15인승 미니밴이었다.
“이게 VIP버스예요?”
“라오스에서는 이게 VIP야.”
기사의 웃음이 묘하게 진지했다.

시간은 시계가 아니라 사람의 리듬으로 흘러갔다.
출발은 예정보다 30분 늦었고, 기사는 천천히 담배를 피우며 하늘을 올려다봤다.
그 느긋함이 처음엔 답답했지만, 곧 나는 그 안에서 자유를 발견했다.

비엔티안에 도착했을 땐 또다시 ‘흥정의 전쟁’이 기다리고 있었다.
뚝뚝이 기사와 흥정을 하다 결국 잔돈을 잃었고, 그날 숙소 주인은 내게 웃으며 말했다.
“여긴 급할 거 없어요. 그냥 웃어요.”

그 한마디가 라오스를 요약했다.
급할 것도, 완벽할 것도 없는 나라.

껀군의 머리카락, 그리고 할머니의 가위 비엔티안의 오후는 무덥고, 바람은 끈적였다.

껀군은 더위를 참다못해 숙소 근처 허름한 미용실로 들어갔다.
거기엔 작고 단단한 할머니가 있었다.
한 올 한 올 정성껏 머리를 자르던 그 손끝에서 묘하게 느려진 시간의 온기가 전해졌다.

“3만 낍.”
짧은 한마디 속엔 자존심이 있었다.
나는 그 돈을 내밀며 말했다.
“라오스에서 제일 멋진 머리예요.”
껀군은 거울을 보며 활짝 웃었다.
그 웃음 속엔,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아이의 얼굴이 있었다.

돌아가는 길 위에서 여행이 끝나갈 즈음, 아이들의 말이 바뀌었다.

“엄마, 이곳에 뭐 볼 게 있다고 6일이나 있어요?”에서
“엄마, 며칠만 더 있으면 안 돼요?”로.

그들은 불편함 속에서도 감사함을 배웠다.

깨끗하지 않은 화장실에도, 느린 속도의 하루에도, 이제는 불평 대신 웃음을 지었다.

라오스 블루라군에서 예전에 우리를 도와줬던 청년 본드를 다시 만났을 때, 세상은 참 좁고, 인연은 신비롭다고 느꼈다.
우린 이름도 몰랐던 그를 다시 만나 반가움에 손을 흔들며 웃었다.
“안녕, 본드.”
그 순간은 짧았지만, 오래 기억에 남았다.

돌아와서 한국으로 돌아온 지 일주일.

나는 여전히 길 위의 냄새를 품고 산다.
여행의 여운은 피로와 뒤섞여 있었고, 제사를 지내며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하지만 나는 달라져 있었다.

이제는 작은 것에도 감사하다.
아침의 햇살, 남편의 “고생했어” 한마디, 아이들의 웃음소리.
그 모든 것이 내 삶을 다시 빛나게 한다.

여행이 내게 남긴 건 풍경이 아니라 사람,
사람보다 더 깊은 건 마음이었다.
19227230_443818965989925_453202711395958784_n.jpg?type=w966

나는 여전히 묻는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정답은 여전히 모르지만, 이제는 그 질문이 두렵지 않다.

왜냐면, 나는 알고 있으니까.
살아간다는 건 완벽해지는 게 아니라, 다시 걸어 나설 용기를 갖는 일이라는 걸.



2017년 여름, 싱가포르에서 베트남까지
길 위에서 나는 다시 나를 만났다.

월, 화, 수, 목, 금, 토, 일 연재
이전 10화라오스, 천천히 살아가는 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