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구매욕구 변천사

오늘의 해시태그 - # 쇼핑

by 새로운 니나


나에겐 금기시되는 단어가 있다. 바로 리미티드 에디션이다.

리미티드 에디션이라는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수량을 제한하여 판매하는 상품이라고 나온다. ‘수량을 제한한다.’는 말이 나에게는 어쩐지 ‘꼭 사야 한다.’로 받아들여졌다. 싼 것이든 비싼 것이든 상관이 없다. 내 귀에 리미티드 에이션이라는 말이 들려오면 그것이 무엇이든 나는 홀린 듯이 사고야 만다.


물론 구매욕구가 모두 구입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지갑 사정을 고려하다 보니, 명품 백의 리미티드 에디션이라든지, 스포츠 스타의 이름을 붙이고 나오는 농구화 리미티드 에디션 등을 척척 살 수는 없다.


보통 내 경우에는 원래는 엄청 비싼 옷을 만드는 디자이너지만, 대중적인 스파 브랜드와 컬래버레이션을 통해 리미티드 에디션 제품을 내놓았을 때는 거의 예외가 없이 사고야 만다. 실제로 가서 물건을 보면, 마음에 쏙 들지 않거나 심지어는 ‘이게 뭐야’라는 말을 하면서도, 리미티드 에디션이기 때문에 비슷한 제품이 다시 나올 가능성이 없고, 매장 내에 있는 품목이 다 팔리고 나면 재입고 역시 없다는 걸 알게 되면 미련 없이 카드를 꺼내 든다. 역시 카드는 긁어야 맛이다.


그렇게 사서 안 입고 옷장에 쌓아둔 옷이 꽤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건 꽤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난 후였다. 리미티드 에디션을 샀다는 기쁨은 잠깐이다. 집에 와서 찬찬히 살펴보면, 나랑 스타일이 맞지 않아서 손이 가지 않는 옷이 많다. 내 체형이나 얼굴색과 상관없이 ‘리미티드 에디션’이라고 하니까, 그 말만 믿고 샀기 때문이다.

결국 리미티드 에디션 옷들은 옷이 아니라 수집품처럼 집에 쌓이게 됐고 십수 년 만에 이사를 하면서 나는 그것들을 버렸다. 심지어, 한 번도 입지 않았거나 텍을 떼지 않은 것도 몇 개 눈에 띄었다. 그런데 리미티드 에디션이라고 이름 붙은 것들을 붙잡고 있으면 있을수록 더 벗어나지 못할 것 같아서 싹 정리를 해버린 것이다. 미련은 없었다. 그리 비싸지 않은 물건이어서 가능했을 테다.

이후로, 나는 ‘리미티드 에디션’의 덫에서 풀려난 듯했다.


그런데 거기가 끝이 아니었다. ‘리미티드 에이션’에 대한 강박은 ‘마감 임박, 매진 임박’이라는 글씨 앞에서 멈춰 섰다. 중독에서 벗어난 것 같이 보였지만, 나의 구매욕은 또 다른 중독으로 옮겨간 것일 뿐 사라진 것이 아니었다. 늦은 밤이나 새벽시간 아무런 생각 없이 홈쇼핑 채널을 보다가 ‘마감 임박, 매진 임박’이라는 표현이 나오면 나도 모르게 홀연히 스마트 폰을 들고 주문을 하고 만다.

쇼핑호스트라는 사람들의 직업이 그런 것이겠지만, 이번 기회가 아니면 이런 좋은 제품을 어디서 사겠냐며, 얼른 스마트 폰을 들고 주문을 하라고, 나에게 윙크를 보낸다.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방송이 분명하지만, 어느 순간에는 나한테만 특급 정보를 알려주고 있는데 내가 모른 척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때로는 ‘이래도 안 사? 이렇게 싸고 좋은데?’라고 하는 것도 같다가 또, 어떤 경우에는 ‘그래 네 형편에는 이것도 하나 맘대로 못 사지? 어쩌겠어. 넌 그냥 평생 그렇게 살아라.’라는 비아냥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마감 임박, 매진 임박’이라는 글씨가 화면에서 깜빡인다. 그 두근두근하고, 입안이 순간적으로 싸악 바싹 마르는 것 같은 느낌은 결국 결제로 이어지고, 어느 사이 문 앞에 택배가 도착해있다.

홈쇼핑은 다행스럽게도 무료 반품이 가능하다. 처음에 뭐에 홀린 듯이 구입했다가, 그대로 반품을 하는 경우도 꽤 있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반품도 귀찮아 택배를 받고 한 번 열어본 후에 그냥 방치해 둔 물건들이 생겨난다. 특히 구입 후 14일 안에만 신청을 하면 반품이 가능하니, ‘나중에 반품하지 뭐~’ 하는 귀차니즘이 발동한다. 도착 당일 택배 박스만 풀어본 채로 방 한 구석에 두었다가 어느 사이 정신을 차려보면 꽤 여유 있을 것만 같았던 14일이 훌쩍 지나있음을 깨닫는다. 택배는 한 달째 방치되어 있다가 결국 반품도 못하고, 쓰지도 않고, 단계가 그렇게 되는 거다. 그 무한 반복의 굴레에 갇혀 한 동안을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과감하게 홈쇼핑 채널을 없앴다. 홈쇼핑 채널을 없앴다기보다 TV를 없애버렸다. 그리고, 홈쇼핑 중독은 별다른 금단현상도 없이 깨끗하게 사라졌다.


‘리미티드 에디션’에서도 벗어났고, ‘매진 임박’이라는 홈쇼핑의 마수에서도 벗어난 나는 요즘. 어이없게도 ‘한정판 굿즈’에 매달려 산다.

먼저 굿즈라고 하면 내가 좋아하는 배우, 가수 등 소위 말하는 덕질의 대상을 모티브로 해서 만드는 소소한 물품을 말한다. 작게는 ‘전차스(전자파 차단 스티커)’, ‘다꾸용 스티커(다이어리 꾸미기용 스티커)’, ‘배지’, ‘엽서’, ‘에코백’, ‘티셔츠’, ‘텀블러’ 등이다.

굿즈는 대게 팬이 개인 소장용으로 만들고 거기에 더해 만드는 김에 몇 개 더 만들어 다른 팬들에게 이익을 남기지 않고 파는 것이 대부분이다. 최소 수량 30개 정도밖에 만들지 않기 때문에 덕후들 사이에는 매 번 ‘폼림픽’이 열린다. 먼저 인터넷상에서 수요조사를 한 후에, 시간 공지를 하고 ‘구매 폼’을 여는데, 선착순으로 구입이 가능하다. 수요조사 때 사겠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해서, 모두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수량이 아주 많은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체적으로 20초에서 2분 안 안에 구입할 수 있는 물건이 매진되기 때문에 ‘구매 폼’과 ‘올림픽’을 합쳐 ‘폼림픽’이라는 말이 만들어졌다.


굿즈에 대해서 어떻게 이렇게 자세하게 아느냐고?

그래 나도 알고 싶지 않았다.

코로나 때문에 집콕하던 2020년 4월의 어느 날 드라마 16부작을 연이어 보다가, 나의 최애 배우가 생겼고, 덕분에 덕질이라는 걸 시작하게 되기 전까지는 말이다. 내년이면, 반백년을 꽉 채워 살게 된 내가 뒤늦게 덕질에 빠져 허우적대다 보니 ‘한정판 굿즈’ 구입에도 자연스럽게 눈을 뜨게 되었다.

‘선생님들. 이번 주 금요일 저녁 8시에 00 배우님 00 굿즈 선착순 30개 한정 폼림픽 엽니다.’라는 글에 가슴이 뛰어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번번이 손 빠른 어린 동생들에게 구입 기회를 뺏긴다. 지금까지 사려고 시도했던 굿즈가 20개 정도 된다면, 그중에 실제로 산 것은 여섯 개 정도밖에 안 되니 말이다.


굿즈를 사지 못하면 인터넷 상에 ‘이번 생은 망했다.’, ‘나놈아, 뭐하느라고 그것도 못 사고..’, ‘그 시간에 치킨 주문한 내 손가락 저승행’, ‘저한테 양도해주실 천사님 계신가요?’ 같은 글들이 올라온다.

그럼 나는 속으로 씩~하고 웃는다. ‘그래 나만 못 산 건 아니었어.’라며 스스로를 위로하는 것이다. 한정판 굿즈 폼림픽은 대부분 내 마음을 쓰리게 하지만, 좋은 점도 있다. 최애 배우의 한정판 굿즈를 사지 못하는 것은 당장엔 땅을 칠 일이지만, 결국엔 예쁜 쓰레기가 집에 쌓이는 걸 방지해주니까 말이다.


‘리미티드 에디션’에서 ‘매진 임박’으로 다시 ‘한정판 굿즈 폼림픽’으로 나의 구매 욕망 변천사는 이어진다. 그 가운데 ‘한정판 굿즈 폼림픽’은 현재 진행형이다.

아직은 초보 덕질러인지라 폼림픽이 열리면 매번 패하고 말지만, 다행스럽게도 내 지갑은 굿즈 살 정도는 늘 채워져 있고, 최애의 한정판 굿즈 폼림픽은 일주일에 한 번 정도씩은 열리니 기쁘게 기꺼이 ‘폼림픽’에 참가하련다.

선수가 올림픽에서 매 번 메달 따기가 쉬운 일인가 뭐? 포기만 안 하면 되는 거지. 그런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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