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해시태그 - # 엄마
컴퓨터를 켜고, 음악 재생 목록을 플레이하고, 글을 쓰기 시작한다.
비가 제법 많이 내린다.
비가 올 때면, 엄마가 나를 데리러 와주었던 초등학교 시절이 떠오른다. 학교가 끝난 시간, 아침에 오지 않던 비가 내리면 마음 한편에선 은근한 기대를 한다. 오늘은 엄마가 와주었을까? 사업을 하는 아빠와 함께 일했던 엄마는 매번 나를 데리러 오지는 못했다. 어떤 날에는 멀리 외근을 나가야 했기 때문이다. 외근을 나가지 않은 경우라면, 엄마는 비 오는 날 우산이 없어 발을 동동 구르고 있을 나를 데리러 와주셨다. 엄마가 우산을 하나 더 챙겨 나를 데리러 온 날은 어쩐지 어깨가 으쓱했다. ‘우리 엄마는 나를 데리러 올만큼 나를 사랑하거든.’하면서 엄마가 못 오는 친구들을 은근히 깔아봤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나 유치하고 나쁜 생각이지만, 그땐 그거라도 뻐기고 싶었던 것 같다.
엄마가 나를 데리러 오는 날이면, 하나 더 추가되는 기쁨이 있었다. 다니던 초등학교 근처에 큰 시장이 있었는데, 나를 데리러 온 날이면 엄마는 집에 가는 길에 꼭 떡볶이와 순대를 사주셨다. 결국 나는 비 오는 날 엄마를 기다렸던 것인가? 엄마가 사 주는 떡볶이와 순대를 기다렸던 것인가? 오래전 기억이라 확실치는 않지만, 아니다. 아닐 것이다. 학년마다 15반에서 17반까지 있었고, 한 반에 많게는 73명까지 있었다. 그렇게 몇 천 명이나 되는 공립 초등학교 아이들이 한 번에 쏟아져 나오는 하교 길. 오직 내가 나오길 기다리다가, 멀리서 딸의 얼굴이 보이면 엄마 여기 왔다고 팔이 떨어져라 손을 흔들고 있는 예쁜 우리 엄마가 나는 좋았을 것이다. 떡볶이와 순대는 순수하게 덤이었을 테다.. 아마도.
지금, 엄마는 내 옆에 안 계신다. 하늘나라에 가셨다. 벌써 1년 하고 반이 지났다. 그렇단 얘기는, 비가 오는 날, 더 이상 나를 데리러 올 사람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데리러 올 엄마가 안 계신 대신, 내 주머니에는 비닐우산을 살 수 있는 돈이 있다. 그리고 원한다면 떡볶이와 순대 정도는 얼마든지 사 먹을 수 있는 돈도 있다. 오늘 또 비가 온다. ‘우리 딸 아침에 우산 안 가지고 갔는데’ 하며, 우산 챙기고 걸음을 서둘러 학교 앞으로 향했을 엄마가 떠오른다. 그때의 엄마 나이를 한참 지나버린 딸이 생각건대, 우리 엄마 참 감동이었네.
엄마 무덤에도 비가 내리겠구나. 갑자기 비가 온다고 엄마 무덤에 씌워줄 우산 챙길 생각도 못하고 사는 이 불효녀 딸은 오늘 하루를 그냥 엄마 생각으로 보낸다. 비가 그치고 나면 엄마한테 다녀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