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해시태그 - # 코로나
집에 있는 시간이 늘었다. 3월부터 시작하기로 했던 일은 코로나 19가 진정된 뒤에 하자며 무기한 연기됐다. 늘 을의 입장이다 보니 ‘네 그러시죠.’ 외에는 달리 할 말이 없다. 그렇게 전화 한 통화로 갑자기 할 일이 없어져버렸다. 질병관리본부였다가 질병관리청으로 승격한 곳에선, 쓸데없는 외출을 자제하란다. 그 말을 듣고 난 이후, 나는 늘 고민한다. 나의 외출은 쓸데 있는 외출인가 쓸데없는 외출인가 하고 말이다. 내 취미는 여행이고, 특기는 ‘만보 걷기’였다. 방송작가를 하면서도 서른일곱 개 나라 구십여 개 도시를 구경했고, 틈만 나면 국내 여기저기를 둘러보며 사진 찍기를 즐겼다. 하지만, 때가 때이니만큼 이참에 집순이가 되기로 결심한다.
급하게 할 일이 없어졌으니 그동안 미뤄두었던 일들을 하나 둘 처리하기 시작한다. 늘 하던 청소, 빨래에 더해 모처럼 이불 빨래, 창틀 닦기, 베란다 청소, 냉장고 청소까지 마쳤다. 책장 정리, 옷장 정리까지 하고 나니 집이 모처럼 볼만해졌다.
선택 장애가 있어 살까 말까 몇 달을 고민하다 구입한 아이패드는 요즘 나의 제일 친한 친구다. 친구들을 만나는 대신 아이패드를 만나 영화도 보고 드라마도 본다. 거의 모든 도서관이 휴관이지만, 전자책은 대출이 되니 아이패드로 알뜰하게 전자책도 챙겨 읽는다. 1만 2천 원을 주고 구입한 어플의 본전을 뽑겠다면서 열심히 그림에도 도전한다. 평소 좋아하는 그림을 따라 그리다 ‘풋’하고 웃음이 터진다. 좋아서가 아니라, 그림이 웃겨서다.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 사이의 거리감을 확인하는 순간이다. ‘언젠간 볼만하게 그릴 수 있겠지’라며 스스로를 위로한다.
코바늘 뜨개질로 마스크를 3개나 만들었다. 뜨개실은 ‘오~ 이거 재미있겠다.’하며 인터넷에서 충동적으로 주문했다가, 마무리 못하고 미뤄둔 ‘에어 팟 뜨기’ 세트에 들어있던 것이다. 에어 팟 케이스는 만들지 못했지만, 마스크를 만들었으니 성공한 취미인 건가? 뜨개질을 하다 보니 손의 감각이 되살아난다. 내친김에 10여 년 전에 떴던 볼레로 실을 풀어서 아이패드 파우치를 떴다. 뜨개질 실은 재활용이 된다는 점에서 참 좋다. 남은 실로는 티코스터를 만들었다. 돈 한 푼 안 들이고 뜨개질을 즐겼으니 알뜰한 취미가 아닐 수 없다.
밥도 평소보다 잘 챙겨 먹는다. 평소엔 일하던 중 급하게 때우는 식이었다면, 요즈음 내 밥상은 정성이 한 스푼 더 들어간다. 하루 세끼를 집에서 꼬박 해 먹다 보니 할 수 있는 메뉴도 늘었다. 몇 년째 펼쳐보지 않았던 요리책을 들여다본다. 그래 중고서점에 안 팔길 잘했어 라면서 말이다. 마트에서 사 온 대파는 뿌리째 화분에 심어 키워먹는다. 상추 모종과 깻잎 모종도 키워서 맛을 봤다. 식사 후엔 매트를 펴놓고 홈트(홈트레이닝)를 한다. 유튜브에는 집에서 할 수 있는 운동이나 요가를 가르쳐주는 특급 강사들이 넘쳐난다. 짐스러웠던 아령과, 폼 롤러, 짐 볼의 제대로 된 사용법을 이참에 터득한다.
SNS에는 여행사진 대신, 집에서 시간을 보내며 새롭게 도전한 다양한 결과물을 올린다. 뜨개질 마스크, 여러 장의 웃음 나는 그림, 스누피 모양으로 완성한 카레요리, 5분 안에 완성하는 견과류 호떡, 태어나서 처음 만들어본 팥죽 등이다.
친구와는 살아있는지 아프진 않은지 하루에 한 번쯤 톡으로 안부를 전한다. ‘너 하나 조심하면 세상이 안전해진다.’는 당부도 잊지 않는다. 충동구매는 줄었고, 꼭 필요한 식자재만 구입한다. 집 안에서 혼자 즐길 거리를 찾아내는 능력이 생겼다. 쏘다니기에 익숙한 나였지만, 이렇게 사는 것도 괜찮겠다 싶다.
요즘의 나는 생각보다 잘 지낸다. 다만 한 가지 걱정이 있다. 하필 코로나 시기에 책이 나온 것이다. 라디오 작가인지라 매일같이 방송이 끝나면 허공으로 사라지는 원고가 아까웠다. 일정한 테마가 있는 코너 원고는 특히 그랬다. 라디오 작가 셋(김현정, 신미경, 이윤정 - 다들 흔한 이름의 소유자라는 공통점이 있다.)이 의기투합해서 책을 내기로 했다. 1, 2차에 걸쳐 원고를 마무리하고, 편집과 수정, 디자인 과정을 거쳐, 인쇄에 돌입했다. 밸런타인데이와 졸업·입학 시즌에 맞춰 인쇄가 마무리됐다. 우리 이름을 단 책이 나온 거다. 그러던 차에 코로나 19가 전국적으로 확산됐다.
출판사는 책의 시판 일시를 당분간 보류했다. 책이 나온 걸 알고 ‘언제 살 수 있냐.’고 물어보는 지인들에게 처음엔 ‘2월 14일’ 이랬다가, ‘3월 10일’로 정정했다가, ‘4월 초’까지 미뤘다가 결국엔 4월 중순에 세상 빛을 보게 되었다. 약간 기구한 운명을 타고난 것 같은 책의 제목은 하필이면 ‘8그램의 행복’이다. 독자들 행복하라고 쓴 책인데, 행복하지 못한 시대에 세상에 나와서 행복을 1그램만큼도 전하지 못하고 있다.
요즘의 나는 나름 행복한데 책은 행복하지 못하다. 그래도 나는 또 글을 쓴다. 이 글을 읽는 누군가 조금이나마 행복해졌으면 하는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