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녹음 버튼을 눌렀어야 했다.

오늘의 해시태그 - # 팟캐스트

by 새로운 니나



나에게는 ‘고모네’라는 팀 이름을 붙인 친구들이 있다. 모두 방송작가 친구들로 멤버는 세 명이다. 셋 다 여자 형제는 없고 결혼한 오빠와 조카가 있어서 공통적으로 고모들이었기 때문에 고모들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전국 노래자랑에 나갈 것도 아닌데 이름을 왜 붙였는지는 기억이 안 난다. 셋은 고모라는 점 이외에도 공통점이 꽤 많았다. 일단 셋 다 라디오 방송작가였고, 지금은 한 명이 결혼을 했지만, 당시엔 모두 비혼 주의였다. 먹는 것도 좋아하고, 책도 좋아하고, 그리고 무엇보다 야구를 무척이나 좋아한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지금부터 하고 싶은 이야기는 야구에 관한 이야기다. ‘여자가 야구 얘기를?’이라고 할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일단 한 번 들어보시라. 셋 중 둘은 두산 베어스의 팬이었고, 한 사람은 김성근 감독의 오랜 팬이어서 두산 팬이었다가, 감독님을 따라 SK 팬이었다가, 한화의 팬이었다. 그래서 솔직히 지금은 어디를 응원하는지 잘 모르겠다. 두산 베어스의 팬이었던 친구는 LG에 다니는 남편을 만나서 요즘도 야구를 할 때면 ‘두산이 최강이다. LG는 무적이다’하며 신경전을 벌인다. 다행스럽게도 그 부부의 딸은 내가 그 집에 가서 치킨을 시켜놓고, TV 중계를 보며 연습시킨 ‘최강 두산’ 응원법을 외우고 있어서 잠정적으로 미래의 두산 팬이라 할 수 있겠다.


셋이서 여의도 방송국에서 잠실까지 야구장 현장 직관(직접 관람)도 한참 다녔다. 야구장에 가면 1루측 응원석 부근에 앉아 야구도 보고, 일사불란하게 응원도 하고, 굿즈도 사고, 야구장 가는 즐거움 중에 빼놓으면 섭섭할 치맥도 즐겼다. 참, 즐거웠던 시절이다.


그렇지만, 매 번 야구장에 갈 수는 없으니 별다른 약속이 없는 날이면 방송국 앞 치킨 집에 모여서 치킨을 먹으면서 중계를 봤다. 당시 방송국 앞에 있던 치킨 집은 왕년의 영화감독님이 운영하던 곳으로 꽤 큰 규모였다. TV 4대를 벽마다 설치해 전국에서 열리는 4경기를 모두 볼 수 있게 되어있었다. (당시는 프로야구가 8개 구단의 시대였다). 치킨 집에 모인 사람들은 대부분이 남자들이었다. 부근에서 일을 마친 직장인들이 삼삼오오 모여 치킨을 먹으며 상사의 험담도 했을 것이며, 응원하는 팀이 점수를 낼 때마다 건배를 외치며 생맥주 추가를 외쳐댔다.


치킨집 한편에 자리를 잡고 야구 중계를 보면서 치킨과 생맥주를 곁들이던 우린 어느 날 이런 대화를 나누게 된다. ‘여자 치고 우리만큼 야구 이야기 많이 하는 애들도 드물 텐데, 우리가 하는 대화를 그냥 녹음해서 인터넷에 올려도 재미있겠다’라고... 그래. 그때, 인터넷에 녹음파일을 업로드하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알지는 못했지만, 누구라도 휴대전화를 꺼내서 녹음 버튼을 눌렀어야 했다. 아니, 그 당시 멤버 중 한 명은 다큐멘터리 취재를 위해 개인 녹음기도 가지고 있었더랬다. 그때의 우린 왜 녹음을 안 했던 걸까?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말이 나온 김에 최초의 팟캐스트가 언제 시작되었는지 찾아보니 2004년이라고 한다. MTV 진행자 출신인 애덤 커리가 소프트웨어 개발자와 인터넷 라디오 방송을 애플 아이팟에서 다운로드하는 프로그램을 개발하면서 시작됐다고. 덕분에 주파수를 맞춰서 그 시간에만 들을 수 있었던 라디오를, 인터넷에서 언제 어디서나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들을 수 있게 됐단다.

우리가 원했던 것이 바로 그런 방송이었다. 프로야구가 하는 시간에는 야구중계를 보느라 우리 방송을 안 들을 테니, 야구를 하지 않을 때, 특히 야구팬들의 경우 야구 금단현상이 심한 경기 없는 월요일에 우리가 나누는 야구 이야기를 재미있게 들어줄 사람들이 어딘가에 있을 거라 생각한 거다.


그때, 우리가 프로야구 경기를 보면서 나누었던 이야기들. 이를테면 이런 것들이다. 당시 8개 구단의 전력 분석은 기본이고, 감독의 용병술에 대한 이야기. 선수들의 경기력과 습관, 외모에 대한 언급, 선수들의 평소 언행에 대한 평판이라든가, 연봉 이야기. 그리고, 각 구단의 유니폼에 대한 평가에다가 어느 구단의 응원단장이 바뀌었더라. 치어리더들은 여름에는 야구장에서 응원을 하고, 겨울에는 농구장으로 가서 응원을 한다더라’까지 실로 다양하게 야구 이야기를 나눴다. 당시에 나는 주말에 하는 라디오 스포츠 프로그램의 작가로도 활동을 하고 있었던 터라, 친한 기자들에게 야구나 축구계 뒷이야기를 조금씩 들을 수 있어서, 그런 정보들도 고모네 친구들과 나누곤 했다. 그랬으니, 나름의 전문성을 가지고 있기도 했다. 조금 안다 하는 여자 셋이 하는 야구 이야기를 상상해보시라. 상상만 해도 재미있지 아니한가?


그때, 누군가가 녹음 버튼을 눌렀다면, 그래서 우리들이 나누는 야구 이야기가 실제로 인터넷을 통해 퍼져 나갔다면, 어땠을까? 좋다고 하트를 눌러주는 몇몇의 사람이 있을 테고, 뭔 자기네들끼리 하는 잡답을 인터넷에 올려서 전파 낭비를 하냐며 비아냥대는 사람도 있었겠지. 분명한 건 어쨌거나 팟캐스트를 그때 시작했더라면, 재미있게 인생의 한 시기를 보낼 수 있었을 거란 점이다.


요즘 우리는 만나기만 하면, ‘그때 우리가 분명히 시대를 앞서가긴 했어. 녹음을 안 해서 그렇지, 분명 재밌어서 인기 끌었을 거야.’ 하면서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어 한다. 돌아갈 수 있다면 반드시 녹음을 해서 지금까지도 ‘안녕하세요. 고모네 야구 수다입니다. 2020년 프로야구 정규시즌이 끝났네요. 와~ 두산의 뒷심이 참 무서웠지요. 5위에서 단숨에 3위라니요. 덕분에 와일드카드 경기 없이 준플레이에 직행하게 됐잖아요. 알칸타라 선수의 20승 기록도 참 대단하네요.’라면서 신나게 방송을 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코로나 때문에 말 많고 탈 많았던 2020년 정규시즌 우승은 NC가 했는데, 코리안 시리즈 우승은 누가 하게 될까? 아직 와일드카드 결정전도 안 했지만, 벌써부터 코리안시리즈 결과가 나는 궁금하다!

이전 05화나의 구매욕구 변천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