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쓰지 않던 이야기
페미는 이간질일 뿐이다.
어려서 잘 몰라서 그런 것이다.
페미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런 정신승리의 외침을 언제까지 들어야 하는지...
이렇게까지 정서를 읽지 않으려 하면서, 더 좋은 사회를 꿈꾸는 것이 아이러니하다.
사람들의 마음을 얻는 것이 정치이기에, 연애하듯이 정서를 읽고 움직여야 한다.
그런데 그 정서를 세심하게 읽을 생각은 하지 않고 팩트 타령만 한다.
이 형태가 누구와 닮았는지는 생략한다.
지금부터 정확히 2년 전, 이 부분에 대한 염려를 담은 글을 남긴 적이 있었다.
당시는 이미 정의당 사태로 페미 문제의 샘플과 파장이 충분히 제시된 상황이었다.
정의당 사태를 반면교사 삼아서 '페미' 관련 이슈와 적당히 선을 긋고 잘 풀어나갈 줄 알았다.
극우가 일베를 활용하기 위해 어린아이들에게 자극적인 여혐 코드 속성들을 적극적으로 이용했기에 분명히 정리해야 할 부분들은 있었기에, '페미' 그 자체가 문제는 아니었다.
메갈/워마드류의 조작/왜곡/억지/패륜의 일베식 페미와는 완전히 선을 그어야 했다.
하지만 전혀 그러지 못했다.
정의당은 초소형 정당이고 민주당과 겹치기에 페미를 콘크리트로 삼을 명분이라도 있지만,
민주당은 대중 정당이기에 절대 지양해야 할 방향이었다.
상반기까지 기다려 보기로 했지만, 이 현상의 심각성만은 한 번 고지해둘 필요가 있어서 정리해본다.
페미 문제가 얼마나 심각하고, 얼마나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것인지도 예상해야 한다.
(개인적으로는 무책임할지 모르지만 면피용 포스팅이다.)
페미로 인해서 문재인 정부가 잃어버린 10가지다.
실제로는 더 잃었지만, 10가지로 간추려본다.
한국 페미의 주요 전술 방식은 왜곡과 조작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왜곡과 조작이 결합돼 있다.
그들의 행동은 마스크와 익명이며, 그들의 주요 활동 채널은 트위터다.
무책임하게 만들어주니 확실하게 무책임하게 왜곡하고 조작한다.
간단하다. 무책임하면 무시하면 된다.
하지만 지식인과 언론이 그들의 목소리 증폭기 역할을 하고, 공권력은 그들의 시위를 특혜성으로 보장하고, 여가부를 비롯한 행정부가 그들의 목소리를 주의 깊게 들었다.
무책임한 목소리를 시민단체를 넘어 정부/여가부가 집중해서 들어줬다.
여가부는 한술 더 떠서, 무책임한 페미에 반대하는 콘텐츠를 제어하겠다는 생각도 추진했다.
페미는 '표현의 자유'에 선을 그을 필요가 없었고, 이것은 온라인 세상에서 페미를 넘어서서 전체 이용자에게 전염됐고 오프라인으로까지 확장됐다. 예전에는 일베만 쓰던 저열함을 이제는 모두가 공유하고 보여준다.
정부는 페미 때문에 조작/왜곡/가짜뉴스에 대해서 제어할 명분이 사라졌다.
그제 나경원의 발언과 어제 초등학교에 쳐들어간 보수단체의 모습이다.
이제는 화도 안 난다.
사람들도 이상하게 크게 분노하지 않는다.
왜? 저런 표현들에 사람들은 익숙해져 버렸다.
온라인 댓글들을 보면 저 정도는 매우 점잖은 수준에 속한다.
'표현의 자유'를 구가할 때도 선이 있고 예의를 지켜야 한다.
아무나 개소리를 해도 되면, 모두가 개소리를 한다.
표현의 자유가 추구하는 긍정적인 사회적 효과가 사라져버린다.
<표현의 자유>의 불문율이 사라져버렸다.
이제 본질을 읽으려는 노력은 아무도 하지 않는다.
최근 일어나는 사안들을 보면, 가해자가 남자인지 여자인지의 결과론만 따진다.
본질도, 맥락도, 잘잘못도, 파장도 고민하지 않는다.
동성끼리 일어난 사건은 신경조차 쓰지 않는다.
이수역에서 일어났던 주폭, 공공 예의, 언어폭력 문제는 어떤 문제에 대한 논의도 없이
여혐과 남혐만 남았다.
이제는 아무도 본질을 읽을 필요가 없어졌다.
쓰레기짓을 해도 책임질 필요 없고, 적당히 여혐 프레임 만들고, 거짓말하며 편들어달라고 하면 된다.
그럼 누군가들은 아무런 고민도 하지 않고, 편들기에 나선다.
정준영 문제도 마찬가지다.
쓰레기가 쓰레기짓한 것을 남녀, 몰카 문제로 전이시킨다.
이 문제의 본질은 정준영의 문제들이 지속된 이유와 결탁과 은폐의 문제, 그들만의 클럽 쓰레기 문화가 이 사회에서 존재할 수 있었던 어떤 힘과 반칙에 대한 이야기가 본질이다.
이런 사건들로 사회가 교훈을 얻어야 하는데, 꼼수만을 얻고 있다.
자신의 행동에 책임질 필요가 없어졌다.
많은 사람들이 문재인 정부를 선택한 이유다.
문재인 대통령의 후보 시절 슬로건이 국정철학이 되길 바랐기 때문이다.
그동안 적폐들 때문에 사회적인 철학과 상식이 무너져 있었기 때문에 회복시켜달라는 요구였다.
딱 이 정도만 되기를 요구했다.
누군가를 위한 유토피아가 아니라, 모두에게 '상식이 통한다'는 사회를 바랐다.
페미는 애초부터 그 상식과 어긋나 있었지만 바보 같은 주장이라 무시했었다.
하지만 여가부가 여기에 개입하면서 문제가 매우 심각해졌다.
여가부가 기계적인 여성할당제를 추진한다.
이제는 변호사라는 사람이 TV 토론에 나와서 '노력 없이 좋은 자리를 달라'라고 주장하고 있다.
2번과도 연결되는데, 남녀의 문제가 아닌 리더십의 자질에 대한 문제다.
국정철학에 대한 신뢰가 사라졌다.
페미의 소통 콘텐츠는 조작과 왜곡이고, 소통 방식은 억지와 집단 공격이다.
물론 어느 시대에나 이런 소수의 사람들은 있었지만, 그들은 대화와 토론에서 배제됐다.
약자라서 배제된 것이 아니라, 대화와 토론의 자격을 갖추지 못해서 배제된 것이다.
약자라서 갖출 능력이 없는 것이 아니라, 독단적이라 갖출 생각이 없는 것이다.
대화와 토론은 배려와 이해가 디폴트 기능으로 내재돼야 가능하다.
페미들은 항상 자신들이 옳다고 생각하다 보니 갖출 생각이 없었다.
이런 사회적 배제의 기능이 있어야, 그들도 대화와 토론에 끼기 위해서 능력을 갖추게 되고, 사회적으로 대화와 토론이라는 사회적 합의 기능이 유의미하게 유지될 수 있다.
그런데 최근에는 약자의 소리를 들어야 한다며 이들의 목소리를 들어주기 시작했다.
아니, 너무 적극적이어서 그들이 특정 집단을 대표하게끔 한다.
그것도 정부 관계자들, 특히 여가부에서는 이것을 미러링이라느니 약자의 외침이라느니라는 합리화로 그들의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포섭했다.
그래서 그들은 막나가기 시작했다.
대화와 토론은 없다.
다른 생각에도, 아니 오히려 합리적인 이야기에도 그들은 집단행동으로 반응한다.
배제되어야 할 자들이 정의로운 척 약자인 척 집단행동으로 누군가를 조롱하고 괴롭힌다.
페미를 용인하자 대부분의 사안에서 이 행동들은 정석이 되었다.
대화와 토론은 사라지고
억지와 다구리만 남았다.
갑작스럽게 정권이 바뀌었다.
그래서 인사에 어려움이 있었지만, 우여곡절 끝에 국민들의 지지 속에 인사는 잘 마무리했다.
탁현민, 조국, 임종석에 대한 야당의 막무가내 공격이 있었지만 국민들의 신뢰 속에 통과됐다.
하지만 공격하지도 않았는데 무너진 인사가 있었다.
여성부 장관 정현백이었다.
여가부장관이라는 자리에 전혀 어울리는 구석이 없는 인사였다.
그래도 다행히 혜화역 사태로 장관이 교체됐다.
진선미 여가부 장관은 한술 더 떴다.
여가부 장관으로 맞으면서 가겠다고 입장을 밝혔다.
왜 사랑받고 인정받을 생각을 안 하고 맞으려고 하는 건데?
이 두 사람이 문제가 아니라 이 불신은 과거뿐 아니라 앞으로의 인사에도 적용될 것이다.
인사 시스템의 신뢰를 잃었다.
이명박근혜는 자유당에 표를 던진 사람들을 부끄럽게 만들었고 반성하게끔 했다.
사람들은 그 분노를 촛불로 표출했다.
그래서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으로 쪼개졌고, 그 덕분에 박근혜가 탄핵됐다.
그들은 소멸해가고 있었다.
자유한국당은 소멸의 길을 걷고 있었다. 일베도 설 곳이 없었고 핍박받고 있었다.
1년 10개월 전에는 그랬다.
진보언론과 진보세력들이 메갈 워마드의 편을 들면서 그들이 당당해지기 시작했고, 죽어가던 일베에 CPR을 하면서 서서히 살아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티핑 포인트는 홍대 몰카 사건과 혜화역 집회였다.
이 사건에서 공권력이 여성들이 하는 집회라고 과보호하고, 정부가 무시해야 할 말을 경청하며 반페미 전선이 구축됐다.(다시 한 번 정리하자면, 당시 집회는 자신들의 범죄와 나쁜 짓을 물타기하기 위한 집회였다.)
그리고 현재,
자유당은 민주당을 위협하고 있고, 일베도 완전히 살아났다.
자유당과 일베가 극우라서 소멸시키려한 것이 아니라, 그들이 적폐와 패륜의 본산이라 소멸시켜야 했다.
촛불이 제공한 박멸의 기회를 잃었다.
정치는 좋든 싫든 지지세력을 확고하게 한 이후, 중도층의 표를 가져오는 싸움이다.
중도층은 <무조건 지지>에 동의한 적이 없다.
중도층은 잘하면 지지하고, 잘못하면 지지를 접을 자유가 있다.
중도층은 페미 현상의 불만을 적극적으로 표출해왔다.
단순히 페미라는 존재 때문이 아니라, 페미로 인해 상식이 무너졌기 때문이었다.
크게 2개의 장면에서 젊은 중도층부터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이 두 장면은 생각보다 굉장히 큰 의미가 있는 장면들이다.
소통 능력의 부재와 함께 사법적폐에 대한 의지 부족까지 보여줬고,
현상 분석 능력 부재와 함께 대통령이 여가부와 하나로 묶이게 됐다.
이 장면들에서 상당수의 젊은 중도층들이 분노하며 배신감을 느끼며 돌아섰다.
중도 20대 남성 아이덴티티로는 가장 합리적인 선택을 했다.
이 합리적인 선택에 정서를 읽으려는 노력은 하지 않고, "그래서 자한당 뽑을 거야?"라는 비아냥은 새로운 세대갈등과 이탈을 가속화시켰다.
이들은 가상화폐 도박 허용을 요구한 것이 아니라, 대통령의 철학을 지켜주기를 요구했었다.
더 큰 문제는 그 젊은 중도층들은 그동안 온라인에서 문재인 정부의 약점인 전략적 커뮤니케이션 부재를 보완하며 극우 세력과의 온라인 여론전을 자발적으로 해주던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그들은 젊기에 정의롭고 상식적이고 싶어서 그 역할을 아무런 대가 없이 해주고 있었다.
그들이 싸워주지 않자, 온라인 여론은 급격하게 기울어버렸다.
그러자 다른 세대들은 가짜 뉴스와 조작에 정신을 못 차리고 휘둘리며 피로감이 끝도 없이 축적되며 외면하기 시작하며 온라인에 영향을 받고 지지를 접게 된다.
합리적인 중도 지지자들을 잃었다.
청와대의 전략적 커뮤니케이션 전략과 능력은 매우 떨어진다고 평가한다.
예전에 별도로 다룬 적도 있을 정도로 처참하다.
만약 적폐청산을 위한 스피커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상황은 정말 암담했을 것이다.
아마 정권교체조차 되지 않았을 것이다.
김어준, 전우용, 주진우, 이작가, 김용민, 정봉주 등등
이들을 약화시킨 것에는 모두 페미 세력들이 끼어 있다.
(찢빠 사건도 있지만, 기저에는 페미와 미투가 결합돼 있다.)
페미 세력들이 가장 싫어하는 사람들이다.
정의로운데 합리적이고 논리적이고 겁이 없는 사람들
매우매우 싫어한다.
궤변을 무기로 개싸움을 만들어야 하는데, 저들은 개싸움을 하지 않는다.
그래서 작년 말부터는 이런 메시지를 끊임없이 내보낸다.
상처는 작지 않았다.
일부는 이탈했고, 모두의 출력이 약화됐다.
이 스피커들은 정권에 부담을 줄까 봐 제대로 페미/여가부 비판조차 못한다.
정부는 이 스피커들 귀한 줄 모른다.
훌륭한 스피커들을 잃었다.
미국의 트럼프를 당선시킨 가장 큰 요인 중 하나가 PC주의다.
정치적 올바름이지만 한국말로 번역해보자면 가장 의미가 근접한 용어는 인권타령이다.
당연히 인권에 대한 존중과 전진은 필요하다.
하지만 인권이란 것에만 과몰입되면서, 피로감을 누적시키는 것이 PC주의다.
개인적으로 사회가 합의하는 인권운동과 독선적이고 무책임한 인권타령을 이렇게 구분한다.
인권을 위한 전진 이면의 악용과 부작용을 제어하는 방법을 충분히 고민했는가?
학종, 미성년자 범죄, 소년법, 학폭위, 양심적 병역거부 등등 계속 피로감을 생성한다.
위의 토론 장면은 아예 그 이전의 근원적인 '왜?' 질문조차 던지지 않았다.
그런데 여가부는 저 변호사의 수준으로 나아가고 있다.
나아가고 싶다면 함께 가고 싶게끔 만들어야 하는데, 인권을 주창하는 이들이 더 이상 똑똑하거나 멋있지도 않다.
얕고 가볍고 저렴하고 대책도 없다.
인권의 전진 의지가 사라졌다.
그리고 이 모든 이유들로 인해서 지지율과 신뢰가 무너지면서
사람들이 촛불을 들었던 그 이유마저 흔들린다.
<더 좋은 사회를 위해서 적폐청산이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많은 사람들이 촛불을 들었다.
적폐라는 것은 어떤 인물이 아니다.
적폐의 의미는 '오랫동안 쌓이고 쌓인 폐단'이다.
적폐청산을 위해서는 2가지 조건이 필수적이었다.
1. 국정운영 철학의 굳건함과 효능감
2. 대통령의 지지와 여당의 인기 유지
문재인 대통령의 3줄의 철학이 굳건하게 중심을 잡아야 적폐청산의 명분이 생기고,
정부와 여당의 인기가 보장돼야, 해결책 적용 시, 적폐의 저항에 맞설 힘이 생긴다.
하지만 2가지 모두 무너졌다.
적폐청산의 동력이 사라졌다.
일단 이 정도로 가늠하지만 훨씬 더 많다.
페미는 매우 별거다.
기존 사안들이 돈이나 부패, 진행 완료된 것에 대한 것이라면,
페미 사안은 근간의 가치와 상식이자 현재 진행 중에 대한 문제다.
단순한 찌질함의 발로가 아니라, 정의와 가치에 대한 반발이다.
젊은 세대이기에 그것에 훨씬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 오히려 좋은 것이다.
(물론 그 속에는 이간질 세력도 많고, 표현방식의 문제는 별개의 문제다.)
정의감이 표면적 이유라면, 법의 불확실성에 대한 공포 역시 본능에서 기인한다.
정말 별거 아니라고 어른스러운 소리를 하고자 한다면,
최소한 이 영상 정도는 보고, 어른의 논리를 구축한 다음에 하자.
멋있는 꼰대가 되려면 그 정도 노력은 하자.
이대로 간다면, 내년 총선...
낙관적인 결과는 나오지 않을 것이다.
지선보다 총선이 국정운영에 훨씬 더 중요하다.
2018 지방선거 당시 대통령의 지지율은 70%를 넘었고, 민주당의 지지율은 50%를 넘는 상황이었다.
그래도 밤을 새워서 지켜볼 만큼 박빙인 곳이 넘쳐났다.
그렇다면 내년 총선은 어떻게 될까?
이미 너무 많은 것을 잃었다.
상반기까지 이 부분을 읽어내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정서로 인해 잃은 부분의 회복이 어려울 것이다.
실망이 분노로 변하는 중이다.
비판적 지지라고 욕해도 좋다.
내가 규정한 비판적 지지는 오히려 당연한 시민의 자세다.
조만간 일반 시민들이 이 여혐남혐 사태에서 갖춰야할 태도 정도는 따로 정리해야겠다.
이 피로감을 우리끼리라도 조금이라도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은 있다.
그들이 원하는 바는, 우리 모두 천박해지는 것이다.
난 그들이 원하는대로 아래로 내려가주지는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