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의 시작
2018년 2월의 어느날, 인스타그램으로 DM이 왔다.
"안녕 Babe, 나 다음달에 결혼해. 시간되면 브루나이 내 결혼식에 와주면 좋겠어."
"진짜? 축하해! 나도 꼭 가고 싶다. 근데 월요일에 일해서 가긴 어려울 것 같아. 아쉽지만 결혼식 사진 많이 업로드해줘. 아니면 나랑 한국 친구들 위해서 라이브 스트리밍 해줄 수 있어? 그렇게라도 결혼식 축하해주고 싶어."
브루나이 친구로부터 온 메시지였다.
이 친구를 표현하자면 이렇다.
'얼굴에 꽃이 환하게 피어난 것 같은 미소를 가진 친구'
'주변 분위기를 따뜻하고 밝은 에너지로 채우는 친구'
'궁금한 점이 생기면 수업중에도 손을 번쩍 들어 물어보는 적극적인 친구'
이 친구를 만난 후, 나의 세계는 한번 깨어졌고 더 넓어졌다. 이슬람권에 사는 히잡을 쓴 여성에게 소극적이고 어두운 여성상을 씌우고 있었던 나의 좁은 시야는 완전히 증발해 버렸다. 그런 편견과 좁은 시각을 가졌던 내 자신이 잠깐 부끄러웠다.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쉐르의 밝음이 떠올라 저절로 미소 지어진다. 쉐르, 이 친구와의 인연은 8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5년 3월, 나는 다시 대학생이 되었다.
글로벌경영학과로 편입하고 들었던 첫 전공수업 중 하나가 '미시경제원론'이었다. 떨리는 마음으로 들어간 넓은 강의실에는 A+ 학점을 다 쓸어가려고 눈을 반짝이며 모인 경제학과 학생으로 가득차 있었다. 혼자 어색하게 두리번 거리며 앉을 자리를 찾던 중 한국학생들 사이 두 명의 외국학생들이 눈에 들어왔다. 마침 옆자리가 비었고 나는 자연스럽게 먼저 다가가 인사를 건냈다.
"안녕! 만나서 반가워"
두 친구는 브루나이에서 온 교환학생이었다. 그 당시만 해도 브루나이는 나에겐 완전히 새로운 세계였다. 너무나 다른 미지의 세계에서 온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우리는 생각보다 여러 공통점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우선 우리는 같은과였다. 또 알고보니 마케팅 전공수업도 같이 수강하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반가운 건 우리 모두 이 학교가 처음이라는 것이다.
사실 그랬다. 거의 7년만에 다시 대학생이 된 나에게 학교생활의 모든 것이 어색하게만 느껴졌다. 하지만 동시에 오랜만에 학교생활을 다시 시작한다는 도전적인 설레임도 가득했다. 이제 막 교환학생으로 한국에 온 이 친구들도 나와 비슷한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새로운 환경에 대한 '낯설음'과 ‘설렘'이라는 공통의 감정을 나누며 우리는 그렇게 금방 가까워지게 되었다.
브루나이 대학에서 경제와 회계를 전공하는 두 친구는 국비 장학금을 받고 한국으로 한 학기 교환학생을 왔다. 1, 2학년 과정을 마치고 온 두 친구에게 수업 중 모르는 내용을 물어보면 쉽고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중간고사와 기말고사도 함께 준비하고 시험공부하다 모르는 것이 생기면 함께 교수님을 찾아가 물으며 처음이라 어렵게만 느껴졌던 전공수업을 쉽게 적응할 수 있었다.
당시 멸종위기의 팬더를 알리기 위해 세계 각국을 돌며 전시하는 1600 판다+의 세계여행 프로젝트가 남산타워 꼭대기에서 열렸다. 내 생일 때 함께 보러 올라가기도 했다.
사실 이 두친구를 알기 전까진 브루나이라는 나라가 존재하는지 조차 몰랐다. 두 친구와 자주 이야기를 나누고 작은 추억들을 쌓아 나가며, 그리고 구글링을 통해 검색해보며 전에는 전혀 알지 못했던 브루나이를 내 머리속에 조금씩 선명한 그림으로 그려볼 수 있었다.
1. 브루나이는 동남아시아 보르네오섬 북동쪽에 위치한 작은 나라다.
우리나라 면적으로 따지면 제주도 3배 정도의 크기다. 인구의 97%가 서부에 살고 있다.
2. 브루나이는 이슬람 국가다.
이슬람 국가에 사는 여성들을 히잡을 무조건 쓰고 있을 거라 생각하지만 두친구들 중 한명은 히잡을 썼고, 한명은 쓰지 않았다. 나도 두친구를 처음 봤을 때 의아했던 부분이었다. 브루나이 인구는 40만명으로 말레이시안 69%, 중국인 18%, 원주민 7%로 구성되있다. 알고보니 다른 한친구는 중국계 이민 3세대였다. 1세대인 조부모님이 오래 전 브루나이로 이주하면서 쭉 터를 잡고 살았다고 한다. 중국계 국민은 이슬람 종교를 존중하지만 이슬람 종교를 믿지 않아도 괜찮다. 이슬람에서 술은 금기되지만 중국계 국민은 집에서 마시는 것이 허용되고 히잡을 쓰지 않아도 된다.
3. 브루나이는 말레이시아어와 영어를 공용어로 사용한다.
예전에 영국 식민지배를 받았던 영향이 있었기에 영어도 공용어가 되었다. 브루나이 국민 대부분이 말레이시아인이다 보니 영어보단 말레이시아어를 더 많이 사용하지만 학교에서 두 언어를 일찍부터 가르쳐 영어 사용에도 익숙하다. 브루나이 국민들은 문화적으로 유사한 말레이시아를 자주 왕래하며 브루나이 청년들은 대학을 졸업하면 말레이시아로 취직하는 경우가 흔하다.
4. 브루나이의 국왕이 통치하는 왕정국가다.
원유와 천연가스를 보유해 동남아시아 국가들 중 국민소득이 높은 편이다. 브루나이 친구들이 가장 부러웠던 점은 교육비였다. 대학까지 전국민이 무상교육을 받는다. 대학과정 중 외국으로 교환학생이나 유학도 꼭 보내준다. 이렇게 교육에 아낌없이 투자를 하는 국왕을 국민들은 많이 존경한다고 한다. 두 친구도 장학금을 받고 한국으로 교환학생을 왔다. 왜 한국을 선택했는지 물어보니 한국 가요와 드라마가 좋아서라고 했다.
두 친구들은 나에게 브루나이 그 자체였다. 브루나이가 지구 어디쯤 위치하고, 어떤 종교를 믿으며, 어떤 언어를 쓰고, 어떤 문화를 가졌는지 알아가는 것을 넘어 둘의 순수한 호기심과 열정은 나에게 새로운 자극과 영감이 되었다. 둘을 통해 브루나이라는 새로운 세계가 나에게 열린 것이다. 함께 보낸 시간들이 즐거웠다.
한 한기가 빠르게 지나고 두 친구는 고향인 브루나이로 돌아갔다. 그 후에도 우리는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으로 꾸준히 연락하며 지냈다. 나는 간혹 내가 사는 이 시대가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때가 있다. 지구 멀리 사는 친구들과 소셜미디어라는 통로를 통해 실시간으로 연락하며 안부를 물을 수 있다는 점 말이다. 그렇게 3년의 시간이 흐르고, 쉐르로부터 결혼한다는 연락을 받았다. 환하게 핀 꽃과 같은 쉐르를 다시 만나고 싶었다.
그렇게 쉐르에게 메시지를 받고 몇 시간 후...
다음날 스케줄과 비행날짜를 체크하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그리고 내 맘속에 그려지는 퀘스천 마크.
'Why not? 지금 자유의 몸인 내가 브루나이까지 못 갈건 없지. 이번에 친구 결혼식에 참석해서 이슬람 전통 혼례도 직접 보고 브루나이 문화를 제대로 경험해 보는거야.'
몇 일 뒤, 브루나이행 비행기표를 예약했고, 그렇게 나의 브루나이 어드벤처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