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마의 영국 Sep 13. 2022

책 읽는 시간 - Crying in H mart

음식이 만드는 나의 정체성 


내가 가진 몇 안 되는 취미 중 하나는 독서다. 


내가 좋아하는 독서만큼은 영어 때문에 스트레스받고 싶지 않아 난 철저히 한글책만 고집한다 

그러다 요 근래 독특한 제목의 책이 눈에 들어왔다. 책 제목에 <H mart>가 들어가는 게 아닌가! 내가 아는 그 마트? 메마른 해외살이의 (음식에 한해 메마르다고 말한다) 오아시스 같은 그곳? 


그래서 책을 찾아보니 한국 미국 혼혈 작가가 쓴 회고록 (memoir) 이라 한다. 세상을 떠난 엄마를 기리며 엄마의 투병과정과 그녀의 삶, 모녀의 삶 속 가장 중요한 '한국음식'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평범하지만 특별한 이야기라고. 리뷰를 좀 찾아보고는 바로 아마존에서 주문을 했다. 다음날 책을 받자마자 읽기 시작해 밤마다 아이를 재우고 조금씩 읽어갔다. 누군가의 회고록이 이렇게 깊게 다가올 일인가?


책을 읽으며 참 많이도 울었다. 신기하게도 그녀의 글에서 세 개의 나와 닮은 모습을 만났다. 






딸이 되어 울었다. 

Food was how my mother expressed her love.


책을 읽으며 유독 음식을 사랑하는, 정확히 말해 진짜 '유별나게' 음식에 진심인 내 엄마의 음식들이 생각나 울었다. 

경남에서 서울로 유학 간 나와 오빠를 위해 달마다 퀵 배송으로 반찬을 보내고 생일이면 당일 아침에 퀵 서비스로 미역국과 생일상 음식이 배달되었다. 그땐 그게 그렇게 많은 정성이 든다던가 대단한 거라고 생각지 못했다. '엄마는 요리를 좋아하고 음식에 진심이니까' 이렇게 생각하며 오히려 엄마의 수고에 대한 미안함을 애써 눌렀다. 


미국으로 유학을 간 20대 딸이 행여 한국 음식을 못 먹을까 엄마는 된장, 고추장, 외할머니 밭에서 난 참깨, 고춧가루 심지어 직접 만든 국간장까지 2-3달마다 몇 년을 국제 소포를 받았다. 거기엔 항상 외할머니의 깻잎 반찬이 있었다. 미국 사는 외손녀에게 해줄게 손녀가 좋아하는 깻잎 반찬이라 생각해 먼저 딴 부드러운 잎을 고르고 골라 내게 보내신 거다. 덕분에 난 깻잎이 없는 미국에서 사계절 내내 깻잎을 원 없이 먹었다. 

고백하자면, 몇 번은 남은 깻잎을 버린 적도 있다. 

'어차피 또 보내주실 텐데 뭐...' 어리석은 나는 그게 영원할 줄 알았다. 


할머니가 떠난 지금은 그 '깻잎 반찬'이 사무치게 그립다. 책을 읽고 할머니의 깻잎을 그리워하듯 언젠가 내 인생의 등대인 엄마가 떠나면 내가 그리워할 엄마 요리가 얼마나 많을지 가늠이 안된다. 그리고 그리워할 엄마 요리가 많은 만큼 엄마가 날 위해 만들어준 셀 수 없이 많은 음식에서 엄마의 깊은 사랑과 그에 감사함을 느낀다. 



엄마가 되어 울었다. 

All the Korean moms took on the names of thier children... Their identities were absorbed by their children. 


작가의 엄마는 한국 식당도 식재료 마트도 찾기 힘든 미국 소도시에서 어지간히도 부지런히 한국음식을 만들고 딸과 나누었다. 작가의 엄마가 살던 30년 전 미국 소도시는 한국인에겐 절대 만만하진 않았을 테다. 거기에 한국 음식을 구하기란 두 말할 필요도 없이 힘들었을 거다. 지금 나는 한국과 먼 영국에서 클릭 한 번으로 한국 음식을 쉽게 주문하고 웬만한 한식 재료는 (마음에 썩 들진 않지만) 얻을 수 있으며 국제택배로 엄마의 사랑과 정성도 받으며 한국 음식을 즐긴다. 그럼에도 내가 먹고 싶은 한국음식을 다 만들 수도 없고 만들어도 한국에서 먹던 맛이 안 난다. 아마도 아무리 완벽한 레시피도 내가 기억하는 그 순간의 음식 맛을 만들진 못하니까.  


작가의 엄마는 한국 음식을 얼마나 그리워했을까? 딸에게 그토록 한국 음식을 해주고 접하게 해 준 이유가 과연 무엇이었을까? 

분명 거기엔 딸과 나누고 싶었던 소통이  있었을 거라 짐작한다. 내가 좋아하는 걸 같이 하고 싶은 마음, 엄마의 역사가 담긴 음식, 엄마가 한국 가족과 나누었던 추억, 엄마와 딸이 공유할 수 있는 문화. 


작가의 엄마가 오랜 시간 공들여 보낸 주말 한글학교와 딸에게 만들어준 한국 음식은 엄마가 딸과 더 깊게 대화하고 더 진득한 유대감을 갖고 싶었던 마음이 아닐까? 지금 내 마음이 그러하듯 말이다. 



다문화 가정의 외동딸인 작가, 내 딸을 떠올리며 울었다. 

Within five years, I lost my aunt and my mother to cancer. So, when I go to H mart, I'm not just on the hunt for cuttlefish and three bunches of scallions for a buck; I'm searching for memories. I'm collecting the evidence that the Korean half of my identity didn't die when they did. 


책에서 작가인 미셸 자우너는 암투병을 하는 한국인 엄마를 둔 외동딸이다. 

엄마와 아빠의 나라가 다른 외동딸인 내 딸처럼. 

작가는 말한다, 엄마의 부재와 함께 작가의 한국인 정체성을 잃어버린 것만 같다고.


그 구절을 읽고 책을 덮었다.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내 딸도 내가 세상을 떠나면 본인의 반쪽 정체성이 사라진다고 느낄까? 내가 아이에게 충분한 한국인 정서와 문화를 전해주고 있는 건가? 아이에게 한국 음식을 해주며 우린 둘만의 소통을 하고 있었나?... 많은 물음이 떠올랐다. 


미셸 자우너는 엄마가 사라지면 엄마가 연결해주던 한국음식도, 한국 문화도, 심지어 한국어도 이젠 없어지므로 본인은 반쪽짜리 한국인에서 결국 더 이상 한국인이 아니라고 느꼈던 게 아닐까 짐작한다. 그리고 그 짐작만으로도 작가의 외로움과 막막함이 느껴져 매우 슬펐다. 


엄마와 즐겨먹던 한국 음식이 그리워도 어떻게 요리하는지, 엄마의 레시피가 뭔지 전혀 몰랐던 미셸 자우너. 

그래서 작가는 엄마가 해주던 음식, 엄마와 먹어본 한국음식을 엄마가 돌아가시고 나서 하나하나 배웠다고 한다. 아마 그 과정은 엄마를 추억함과 동시에 남아있는 한국인의 정체성을 이어가기 위한 그녀만의 몸부림이 아니었을까?






흔하게 먹던 음식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구나. 


음식은 참 신기하다. 그저 한 끼가 아니고 그냥 칼로리 섭취가 아니다. 

음식으로 가족이 되고 친구가 되고 우리가 되고 내가 된다.  

음식은 때론 사진보다 기록보다 선명한 기억을 간직한다. 


그러고 보면 나이가 들수록 내가 어쩔 수 없는 한국인이구나를 느낀다. 

아이를 낳기 전 나는, 오랜 해외생활 동안 한국음식을 딱히 그리워하지 않았다. 쌀밥 없이 한 달도 거뜬했고 김치는 손에 꼽을 정도로 찾았으니까. 참 이상하게도 아이를 낳고 나서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몰라도) 김치가 바닥나기 무섭게 만들어 채워 넣고, 밥을 안 먹으면 힘이 안 나고 기분이 좋은 날이나 특히 힘든 날은 꼭 한국음식을 고집하는 내가 되었다. 난 한국 음식을 먹고 살아온 한국인인 거다. 


그녀의 책을 읽으며 유달리 그리운 엄마 음식이 생각났다. 내가 이렇게 엄마 음식을 그리워하듯 내 딸도 내가 만든 음식을 그리워할 날이 오겠지. 지금 내가 해주는 음식이 너의 정체성을 만들고 있으니까. 

내가 해주는 음식이 내 딸에게 사랑으로 전달돼 평범한 누룽지 한 그릇도 소중한 어린날의 기억으로 남길 바란다. 



오늘 저녁은 무얼 만들어 줄까 행복하게 고민해봐야겠다. 







작가의 이전글  파워 내향형 엄마의 영국 육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