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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의 영국 Dec 08. 2022

기괴함과 인류의 위대함이 공존하는 곳  

옥스퍼드 피트 리버스 박물관 


영국에서 가장 긴 역사를 자랑하는 옥스퍼드 대학은 그 역사를 증명하듯 무려 7개의 박물관을 가지고 있다. 

학교가 연구하는 분야가 그만큼 다양하고 역사가 긴 만큼 소장한 연구자료가(컬렉션) 방대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듯하다. 


7개의 박물관 중 제일 유명하고 대중적인 애쉬몰리언(영국 최초 박물관)을 비롯해 자연사, 과학 박물관 등

그런데 그중 가장 특이하고 생소한 박물관이 하나 있다. 그게 바로 오늘 소개할 <피트 리버스 Pitt Rivers> 인류 박물관이다. 





Pitt Rivers Museum 

Pitt Rivers Museum is a museum displaying the archaeological and anthropological collections of the University of Oxford in England.


아우 구스투스 피트 리버스 경

고고학과 인류학 컬렉션을 보유하고 연구하는 피트 리버스 박물관은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 '아우구스투스 피트 리버스'의 컬렉션 기증을 통해 1884년 설립되었다. 육군 장교이자, 민족 하자, 고고학자였던 아우구스투스 피트 리버스의 기증 조건은 옥스퍼드 대학에 '인류학'을 교육하게 하고 인류학을 가르칠 전임 교수를 선임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이런 기부 문화와 기부를 받아들이고 약속을 이행하는 문화가 진짜 대단하고 부럽고 멋지다. 


기증자의 요구대로 옥스퍼드 대학은 인류학을 처음 개설했을 뿐 아니라 근대 인류학의 창시자라 불리는 '에드워드 버넷 타일러 경'을 영국 최초의 '인류학과 교수'로 선임하게 되었다. 

<피트 리버스> 직원들 (큐레이터, 리서쳐)은 지금도 옥스퍼드 대학에서 고고학과 인류학을 가르치는 다소 독특한 포지션을 유지하고 있다. 남편의 슈퍼바이저 교수님도 반은 학교에서 반은 박물관에서 역할을 나눠하신다. 남편도 주로 박물관에서 연구를 하며 박사 생활을 하고 있다. 옥스퍼드 대학에서 인류학 - 박물관 학- 을 공부하게 된다면 <피트 리버스>가 강의실이자 연구실이 될 거다. 





인류학 박물관의 독특한 디스플레이 

위에서 바라본 1층 전시실 정면.  출처 @Cherwell Oxford student newspaper 


피트 리버스 박물관은 보다시피 매우 독특한 디스플레이를 보여준다. 

언듯 보면 정신없고, 너무 비좁고, 너무 복잡하고... 아이랑 갔다가 숨바꼭질만 하고 오는, 미로 같은 구조로 아무튼 일반적인 디스플레이가 아니라 매우 독특하다. 


왜 이런 디스플레이를 하는 걸까? 



답은 매우 간단하다. 

우리가 일반적인 화이트 큐브에 익숙하기 때문이다. 일반 예술품 전시에 익숙한 나머지 인류학 박물관의 디스플레이가 어색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인류학 박물관에 전시된 소장품들은 예술작품이 아닌 인간의 역사와 문화적 특징을 보여주기에 그 목록별로 나눠 분류되어있을 뿐, 아름다워 보이기 위해 깨끗한 흰 벽에 하나씩 걸어놓는 작품과 다르다. 


사진에서 볼 수 있듯 마스크는 마스크대로, 악기는 악기끼리, 의복은 의복끼리 종교 오브젝트는 그들끼리 묶여 구분되어 있다. 


쉬운 예로, 대영박물관은 나라별로 섹션을 마련해 뒀는데 인류학 박물관은 오브젝트 별로 분류되어있다. 그래서 같은 불교 오브젝트도 나라마다 다름을 알게 되고 토속 마스크도 나라별로 특징이 뚜렷이 보인다는 장점이 있다. 반대로 생각해보면 같은 종류의 오브젝트라도 어떤 나라는 엄청난 발전을 보이는 반면 어떤 나라는 굉장히 뒤처지게 보인다는 차별적 시선도 무시할 수 없을 거 같다. 대영제국인들의 눈에 문화적으로 뒤처진 (야만적이라고 느꼈을) 나라가 보였으리라. 문화적 우위를 결정지을 수 있는 잣대는 누구도 가질 수 없다 (가져서도 안되고).





피트 리버스에 들어서면 제일 뒤에 서있지만 제일 눈에 띄는 오브젝트가 있다. 

캐나다 원주민 '하이다'를 대표하는 11미터의 목재 기둥이 그것이다. 정식 명칭은 Haida Totem Pole 

1900년 영국 선교사가 캐나다 토착민 지역에서 기둥째 잘라서 (ㅠㅡㅠ) 이곳 옥스퍼드 피트 리버스 박물관으로 가져온 거라 한다. 우리나라로 따지면 모든이들이 소원을 빌던 국가적 보물로 여겨지던 정승을 뽑아다가 이국땅에 세워둔 격. 


참...대단한 영국인들이다... 




아이가 초등학생 정도만 돼도 매우 흥미뤄워 할 아기자기한 소장품이 넘치는 마치 보물창고 같은 곳이다. 

봐도 봐도 새로운게 보이는 그런 장소. 

덕분에 1년 내내 학생들의 스쿨 트립으로 북적되는 곳이기도 하다. 




이렇게 흥미로운 소장품을 볼 수 있어 너무 좋지만, 너무 좋은 공부가 되지만, 

'이런 것까지 가지고 왔나?'라는 생각은 떨칠 수가 없는 웃픈 현실. 





<피트 리버스>가 불과 몇 년 전 언론에 오르내린 일이 있다. 

박물관 입구에 디스플레이되어있던 <줄어든 머리, Shrunken Heads>가 그 주인공이다. 


Copyright @ artnewspaper


디스플레이 제목도 <Treatment of Dead Enemies, 죽은 적군에 대한 대우> 무시무시한 이 섹션은 아이러니하게도 <피트 리버스>를 찾는 방문객이 가장 보고 싶어 하는 오브젝트 <줄어든 머리>가 있(었)다. 

사진에서 오른쪽에 위치한 걸려있는 머리가 논란의 대상이었다. 


페루 열대우림지역의 전통인 적군들의 잘린 머리가 장장 80년이나 <피트 리버스>의 인기 전시품이었다고 한다.  물론 나도 여러 번 봤다. 코로나 시기에 갑자기 사라져 남편에게 물어보니 새 관장이 취임하고 내린 결정에 따라 <줄어든 머리> 소장품이 디스플레이에서 빠지고 반환 문제를 두고 아직도 갈등 중이라고 한다. 


Copyright @ artnewspaper


페루 부족들은 그들의 전통이었지만 1960년대에 이미 사라진 문화를 두고 서양의 한 박물관에서 이것이 '페루'인양 보이는 게 당연히 부담스럽고 싫었을 테다. 그리고 누군가의 머리가 전쟁에서 졌다는 이유만으로 구경거리로 전략해 저렇게 매달려 있는 게 사실 매우 잔인하고 존엄성에 어긋난다고 생각한다. 누군가에겐 신기한 '오브젝트'로 보일지 몰라도 또 다른 누군가에겐 가슴 미어지는 역사이자 경험일테니 말이다. 

이렇게 박물관에 전시된 소장품 하나하나는 여러가지 문제를 다양한 시각을 고려해 전시되고 또는 퇴장되기를 반복한다. 그냥 줄지어 놓여있던 작품이 사실 알고보면 매우 까다로운 절차를 거친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개인적으로 <줄어든 머리>를 처음 본 건 독일로 필드트립을 갔을 때였다. 유명한 개인 컬렉터의 컬렉션에서 처음 봤는데 그 충격은 지금도 잊히지가 않는다. 그 컬렉터는 '그로테스크'를 주제로 컬렉팅을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하고많은 것들 중 꼭 진짜 인간의 머리를 소장해야 했나 싶기도 하다. 


실제로 보면 워낙 작아서 가짜처럼 보이지만 만드는 과정을 알게 되면 더 무섭고 잔인하고... 여기다 말하고 싶진 않으니 패스. 


이렇듯, 요즘 박물관들이 맞닥뜨린 공통의 화두가 있으니 바로 <탈식민지화>. 

<줄어든 머리>를 디스플레이서 내린 건 영국 내 크게 이슈가 된 <탈식민지화> 개념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인류학 박물관에도 특별전이 있다. 



사실 항상 똑같고, 색다를 거 없이 보이는 인류학 박물관도 특별전이 열린다. 

<피트 리버스>와 <모던 아트 옥스퍼드>가 동시에 진행하는 <마리나 아브라모비치> 전시가 올해 가을, 겨울을 장식하는 특별전이 되었다. 



오프닝 날. 마리나 아브로모비치와 남편의 담당 교수님이자 피트 리버스 박물관 큐레이터 클레어.


행위 예술의 대모라 불리는 마리나 아브라모비치가 웬 인류학 박물관?이라고 생각할 수 있으나 그녀의 작품이 시사하는 인간에 대한 깊은 고찰은 인간, 종교, 문화와 절대 뗄 수 없다는 걸 알 수 있다. 


불교철학 특히 티베트 불교에 깊은 관심을 두고 작업을 하기에 그녀의 작품은 인류학 박물관과 제일 잘 어울린다고 할 수도 있겠다. 


(참고로 모던아트에서 열리는 전시는 체험예술로 피트 리버스 것과 전혀 다른 전시가 진행중이다)



진정 우리 집 가보로 전해질 사진.

마리나 아브로모비치가 우리 집 꼬맹이를 불러 사진을 찍었다. 남편을 좋아해 주시는 마리나가 특별히 사진을 찍으라고 말씀해주셨다. 감동. 


'슈퍼스타를 만나면 이런 기분이구나'를 느낀 어느 가을밤. 



다양한 문화를 바탕으로 한 어린이 교육 프로그램




인류학 박물관이 진행하는 교육 프로그램은 당연한 말이지만 문화, 국가, 인류와 관련된다.

예를 들어 2021년 핼러윈에는 멕시코 (스페인) 전통 놀이인 <피냐타>를 만들었다. 박스 안에 사탕류를 넣고 겉은 만들고 싶은 형태로 꾸미는 일종의 종이인형이라고 보면 된다. 


핼러윈에 맞춰 괴물 고양이를 만들고 신이 났던 3세 어린이 ^^ 핼러윈이라 곱게 한복도 차려입었다. 


이렇게 미국의 핼러윈 문화만 접한 아이들이 멕시코 스페니쉬 문화와 어린이 놀이를 체험하도록 진행하는 게 인류학 박물관의 교육팀이 하는 일이다. 




두 달 전에 진행한 <티베트 스토리텔링> 에도 다녀왔다. 

한국과 티베트 혼혈인 우리 집 꼬마는 처음으로 티베트 전통 복식을 갖추고 박물관에 다녀왔다. 

치마가 길어서 질질 끌면서도 새로운 드레스가 마음에 들었는지 매우 행복해했다. 


오래된 티베트 전통 이야기를 듣고 체험 학습도 하고 역사도 배우고 만들기 수업도 했다. 

참가자들 모두 신기해하며 전통 오브젝트를 만져보고 즐거워한 이벤트였다. 


박물관 이벤트의 장점 중 하나는 스토리텔링 하나 만으로 아이들은 그 국가와 역사 문화적 특징을 가볍게 익히게 된다는 것이다. 



올해 여름에 진행되었던 <한국 전통 놀이체험> 이벤트도 많은 관심을 받았다고 한다. 아쉽게도 아이가 아픈 바람에 당일 행사에 못 갔지만. 남편에게 전해 들은 바로는 참가자들의 반응이 매우 좋았다고 한다. 


박물관 이벤트가 좋은 이유는 어린이 프로그램이라도 가족 모두가 (모든 연령대) 즐길 수 있고 배울 수 있다는 점이다. 아이들은 영상으로, 책으로만 알게 된 정보를 직접 체험하고 눈으로 보고 만지며 훨씬 더 깊숙이 한 문화에 스며들게 된다. 이게 바로 체험 학습의 힘이리라. 





영국 박물관은 익히 알려져 있듯이 모든 곳이 무료다. 특별전은 유로지만 박물관 입장이나 영구 전시는 모두 무료다. 

다양한 이벤트들도 전부 무료니 영국에 거주하거나 영국을 방문하는 이들은 박물관 이벤트를 찾아보고 한 번쯤은 꼭 체험해보길 바란다. 영국을 알 수 있는 아주 좋은 문화체험이니까. 


영국의 육아/교육은 박물관처럼 공공 교육기관이 절반은 한다고 보는 게 내 개인적인 생각이다. 모두에게 열려있고 누구나 교육을 받고 즐길 수 있는 최소한의 권리를 제공하는 고마운 곳. 


이것이 영국 박물관의 힘이 아닐까 생각한다. 


 



https://prm.ox.ac.u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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