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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의 영국 Oct 30. 2022

가을이 즐거운 이유 - 프리즈 런던

그림 읽는 혼자만의 시간 

           


올해 프리즈 런던은 2003년 시작 후 20년이 되는 나름 기념적인 해였다. 

올해 처음 한국에서 프리즈 페어가 열려 한국에서도 익숙한 이름이 된 프리즈는 생각보다 짧은 역사를 가진 

현대미술 전문 매체이자 세계적인 파워를 자랑하는 아트페어가 되었다. 


그 시작은 옥스퍼드 대학 동문인 두 친구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획기적인 동시대 미술을 발굴하는 장이 되자는 취지에서 시작한 프리즈 매거진 (1991)을 시작으로, 1993년 런던 리젠트 파크에 차린 천막 페어가 지금의 프리즈 아트페어가 되었다. 고작 20회를 넘겼을 뿐인데 어마어마한 경제적 효과는 물론, 아직은(?) 건재하다는 런던의 현대미술 저력을 보여주는 10월 메이저 행사가 되었다. 




9월 프리즈 매거진에 실린 한국 민중미술 칼럼. 

굉장히 정성 들여 소개한 글이라 읽으며 감탄했는데, 글쓴이를 확인해보니 미국 대학에서 

한국미술을 가르치는 분이었다. 역시!! 


프리즈가 한국에 진출 후 확실히 9월 매거진엔 죄다 한국 미술과 갤러리, 작가 소개가 주를 이루었다. 

진짜 신기하면서 뿌듯하고 한국미술에 대한 세계적 인식이 참 많이 바뀌었구나... 이런 올드한 생각까지. 








리젠트 공원에 마련된 프리즈 조각전시. 가을 느낌이 가득한 공원에 설치된 조각품은 실로 감동이 배가 된다.


아이를 낳고 한 번도 참석 못한 아트페어. 

그저 현대 미술을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서 매해 아트 바젤이나 프리즈를 손꼽아 기다리며 다니곤 했는데, 이게 이렇게 어려운 일이 될 줄이야... 


올해는 무조건 프리즈를 보리라 다짐하고 두 달 전에 이미 표를 예매했다. 아이와 남편을 두고 혼자 기차를 타본 게 처음이었다. 뭔가 놔두고 온 느낌이 하루 종일 날 괴롭혔지만 이 어색함이 나쁘지만은 않았다. 

그래도 코로나 시국에 전혀 다니지 못한 갤러리 방문을 한 번에 몰아서 다 한 느낌이라 체력적으론 조금 힘들긴 했지만 하루 만에 큰 숙제를 끝낸 거 마냥 속이 후련하긴 했다. 



참고로 프리즈 멤버십에 가입하면 1년에 출간되는 8권의 프리즈 매거진 구독은 물론 프리즈 페어 1회 이용권이 주어진다. 프리뷰를 포함해 어느 장소든 어느 날이든 1회 입장이 가능하다. 

티켓이 워낙 비싸 (요일과 시간에 따라 다르지만 20만 원이 훌쩍 넘는 티켓도 있다) 차라리 멤버십에 가입하는 게 훨씬 이득인 거 같다. 아쉽게도 한국에선 프리즈 멤버십에 가입해도 프리즈 매거진 배송이 안된다고 한다. 






Decolonization (탈식민지화) 

서구 박물관의 핫이슈인 탈식민지화가 프리즈 아트페어에서도 눈에 띄었다. 


특히 Stephen Friedman 갤러리가 소개한 제프리 깁슨의 디스플레이는 지나가던 사람들의 발길을 붙잡기에 부족함이 없는 강렬함 그 자체였다. 미국 원주민(인디언) 부족인 촉토와 체로키 후손인 작가가 현대미술로 재탄생시킨 토착 미술은 인디언 부족의 문화와 역사를 보여줌은 물론 토착 미술의 매력을 알리는데 부족함이 없었다. 개인적으론, 갤러리 부스를 작품화시킨 것도 신의 한 수가 아니었나 싶다. 저런 패턴을 보고 어떻게 그냥 지나칠 수 있을까?


탈식민지화와 더불어 인종, 성별, 성소수자 이슈까지 페어 한 번으로 지금 가장 뜨겁게 거론되는 사회문제들을 모두 체감할 수 있었다. 이게 바로 현대미술의 진짜 매력!





프리즈 매거진에서 보고 꼭 확인해보고 싶었던 이란 출신 작가 Homa Delvaray  설치작품


이국적인 느낌이 물씬 나는 이런 작품을 보면 작가와 작가의 국적 및 문화, 언어, 종교가 궁금해진다. 

예술품은 자신을 표현하는 제일 좋은 도구가 분명한 거 같다. 







평소 눈이 너무 약한 나는 사람이 많은 실내에 가면 금세 눈이 따갑고 충혈이 된다. 

그런 내가 복잡한 아트페어장을 3-4시간 돌아다니면 사실 절반은 내 정신이 아닌 상태다. 

그런 내 눈을 사로잡는 작품은 정말 마음에 든다는 뜻. 


위 두 그림은 이번 프리즈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작품이다. 미국 LA에서 온 갤러리였는데 갤러리가 너무 바빠 가격을 물어보진 못했으나 연락처를 가져왔으니 곧 이메일로 문의를 해 볼 계획이다. 

물론 가격이 어떻든 그림의 구매 여부 문제가 아니라 그냥 이 그림을 그린 작가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싶을 뿐이다. 그림을 감상하는 내내 참 평화롭고 따뜻하고 묘한 기분마저 들었다. 


행복했다. 



확연히 다른 두 인물화는 각자의 매력으로 아름다웠다. 
나 인물화 좋아하는 구나... 



과연 팔릴까 싶은 이런 실험적인 설치미술은 보는 것만으로도 눈호강이라 생각한다. 

끝없는 도전과 연구가 필요할 텐데... 작가님들이 새삼 대단해 보인다. 물론 이런 예술가를 발굴하고 지지하는 

갤러리도 매우 중요한 존재인 건 당연하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만지고 사진 찍고 감탄했던 호박 조형물.  사진출처 @artnews




몇 년 만의 아트페어, 그것도 프리즈 런던을 영국서 보게 되어 정말 기뻤다. 

작품을 봐서 기쁜 건지, 드디어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며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하나하나 다시 시작해보는 잊혔던 '자아 찾기'에 행복한 건지는 모르겠다. 


한때 미술을 했고, 미술과 관련된 공부를 했고 일을 했고 그림을 구매도 판매도 해본 내가 그리웠던 건지도 모른다. 


내가 미술을 좋아하는 건 정말 많은 추억이 담겨 있어서가 아닐까 짐작한다. 

누군가에겐 추억이 담긴 사진처럼 내겐 미술작품이 그러하다. 기억하려 하지 않아도, 기억하기 싫어도 숨어있는 기억을 꺼내 주는 그런 불편하지만 끊을 수 없는 애증의 존재. 

물론 좋아하는 마음이 더 커 미운 내 모습이 눈감아지는 그런 존재다. 


앞으로 내가 어떤 작품과 작가를 좋아하게 될지 모르지만, 분명한 건 미술은 나를 들여다 보기 매우 좋은 도구라는 것이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도 잊고 지낸 몇 년의 시간을 뒤로하고 새로이 시작할 내 여정에 어떤 작품과 작가가 함께할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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