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에는 작은 빵집이 있다. 치아바타와 시골빵 같은 식사빵이 아주 맛있어서 자주 빵을 사러 간다. 출근을 하지 않는 토요일 아침이면 빵이 가장 맛있는 시간에 빵집에 갈 수 있다. 오픈은 10시지만, 늘 조금 일찍 갓 구운 빵이 준비되어 있어 나는 오픈 시간 전에 빼꼼히 빵집 문을 연다. 오늘은 따뜻한 커피에 호두크랜베리시골빵과 블루베리스콘을 주문했다. 빵을 기다리는 시간, 늘 그렇듯 아직 오픈 전인 가게엔 우리 밖에 없다. 작은 빵집에는 사장님이 읽다가 꽂아둔 책이 여러권 있었는데, 작가들이 좋아하는 작가 황정은의 에세이 <일기>와 최승자 시인의 <한 게으른 시인의 이야기>, 신형철 작가의 <인생의 역사>까지 빵집 사장님이 책을 꾸준히 읽는다는 사실과, 독서 취향도 자연스럽게 짐잠해볼 수 있었다.
사장님께서 노오란 작은 시집을 건네주셨다.
"친형이 시집을 냈는데, 선물하고 싶어서요. 한번 읽어보세요." 1년 전 쯤이었나. 동네 책방에서 진행한 김혼비 작가의 북토크에서 빵집 사장님을 만난 적이 있었다. 내가 그랬듯이, 빵집을 자주 찾는 내가 책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눈치 채셨으리라. 시인의 짧은 글귀와 내 이름까지 적은 귀한 시집을 선물해주셨다. 그렇게 고명재 시인의 <우리가 키스할 때 눈을 감는 건>이라는 시집을 만났다.
어느 여름날, 나를 키우던 아픈 사람이 앞머리를 쓸어주며 이렇게 말했다.
온 세상이 멸하고 다 무너져내려도 풀 한 포기 서 있으면 있는 거란다.
있는 거란다. 사랑과 마음과 진리의 열차가 변치 않고 그대로 있는 거란다.
2022년 12월 고명재
시인의 첫 말을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소리내어 읽어본다. 어떤 의미로 이 문장을 쓰셨는지는 모르지만 왠지 나를 응원해주는 것 같은 힘이 느껴졌다. 단번에 고개가 끄덕여지는 시는 아니지만 문장을 읽고, 또 읽고 곱씹어보게 된다. 가족에 대한 진한 마음이 느껴져서 노오란 표지처럼 따듯한 봄날을 만나는 것 같았고, 이른 아침에 소복이 내린 하얀 눈을 뽀드득 뽀드득 하고 조심스럽게 한 발, 또 한 발 내딛는 그런 순수함을 만나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