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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좋은날 Apr 24. 2020

[독서일기] 여행의 이유, 김영하

내 안의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엄마가 직장을 다닌다는 이유로 아이는 7년을 외가에서 자랐다. 아이는 금요일 저녁이면 기차를 타고 집으로 떠나는 여행길에 올랐다. 아이와 함께 보내는 물리적인 시간이 많지 않은 우리 가족에게 여행은 함께 하는 시간이다. 아이가 초등학생이 되고 우리 가족은 해외로 함께 여행을 다니기 시작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넓다는 것, 넓은 세상 안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아이에게 직접 보여주고 싶었다. 생활자가 아닌 여행자의 시각으로 시시때때로 변하는 프레임 안에 아이와 함께 들어가보고 싶었다. 그렇게 초등학생이 된 아이와 3년동안 대만, 일본,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베트남, 중국,  스페인, 독일, 체코, 오스트리아를 함께 뚜벅뚜벅 걸으면서 여행했다.


책 <여행의 이유>를 읽으면서 가족이 생각하는 '여행의 이유'가 궁금해졌다. 아이에게 여행은 오롯이 엄마, 아빠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다. 그리고 호기심 천국 같은 재미를 준다. 일상에선 쉽게 허락되지 않는 소소한 이벤트도 즐겨볼 수 있다. 낯선 여행지에서 잘 통하지 않는 언어때문에 엄마, 아빠는 긴장의 연속이지만 아이는 하루종일 엄마, 아빠와 시간을 보낼 수 있어 그저 좋았다고 한다. 직장생활에 많은 시간을 제공하고 있는 남편과 나에게는 일상을 잠시 떠날 수 있는 그 시간이 그저 좋았다. 새로운 환경에서 다름을 관찰하고, 여행자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일상의 여유를 가져볼 수 있음이 더 없이 좋았다. 그렇게 우리 가족은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살아온 스스로를 꼭 안아줄 수 있는 시간을 선물하는 여행을 떠난다. 

"인간은 왜 여행을 꿈꾸는가. 그것은 독자가 왜 매번 새로운 소설을 찾아 읽는가와 비슷할 것이다. 여행은 고되고, 위험하며, 비용도 든다. 가만히 자기 집 소파에 드러누워 감자칩을 먹으며 텔레비전을 보는 게 돈도 안 들고 안전하다. 그러나 우리는 이 안전하고 지루한 일상을 벗어나 여행을 떠나고 싶어한다. 거기서 우리 몸은 세상을 다시 느끼기 시작하고 경험들은 연결되고 통합되며, 우리의 정신은 한껏 고양된다. 그렇게 고양된 정신으로 다시 어지러운 일상으로 복귀한다. 아니, 일상을 여행할 힘을 얻게 된다, 라고도 말할 수 있다." 205~206p


TV 채널마다 여행을 매개로 한 프로그램이 넘쳐난다. 특히 나영석 PD의 프로그램이 그렇다. 꽃보다 할배,삼시세끼, 윤식당, 알쓸신잡, 신서유기, 스페인 하숙, 이서진의 뉴욕뉴욕까지 그가 만드는 프로그램은 대부분 장소의 변화라는 특징이 있다. 번 아웃이라고 부르는 정신적 소진 상태를 자주 경험하는시대에 살고 있는 요즘의 사람들, 여행은 이런 보통 사람들로 하여금 일상에서 잠시 떠나고 싶은 동경을 만들어 낸다.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는 건 어쩌면 지금을 더 잘 살아내고 싶은 또 다른 마음일지도 모른다. 사람들이 여행을 꿈꾸는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을까.


예능 프로그램 '스페인 하숙'을 보면서 다양한 국적, 다양한 계층, 다양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것을 보았다. 프랑스 작가 파울로 코엘료는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다가 영감을 받아 <순례자>라는 책을 썼고, 덕분에 산티아고는 전 세계인의 순례길로 자리매김했다고 한다. 무작정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어보고 싶은 생각을 갖고 있었던 나는 방송을 보면서 '저 사람들은 왜 저렇게 힘든 길을 걷는 걸까', '나는 언제쯤 800km가 넘는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어볼 수 있을까', '나는 순례길이 왜 걷고 싶은 걸까', '과연 나는 순례길을 걸을 수는 있을까'라는 질문을 떠올려본다. 세상과 단절되어 지금 현재를 벗어나고 싶은 마음, 오롯이 한 길만 바라보고 걷고 걸으면서 길 위에 혼자 서 있는 진짜 나를 만나고 싶은 마음, 땀과 눈물로 힘든 순간을 마주하며 내 안의 무언가를 치유하고 위로하고 싶은 마음, 그렇게 내 안의 나를 안아주고 싶은 마음, 그래서 나는 가끔 산티아고 순례길을 힘들게 걷고 있는 나 자신을 상상해본다.


여행은 각자의 이유에 맞게 다른 형태로 그 모습이 나타난다. 여행, 낯선 곳이어서 좋고, 일상과의 차이를 느낄 수 있어 좋다. 내 마음에 한 발짝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내 마음의 여유가 좋다. 따뜻한 햇살이 가만히 나를 안아주는 것 같아 그저 좋다. 내가 여행을 떠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2020.01.03. 일상의 여행을 꿈꾸는 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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