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별 거 없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나이에 관심이 참 많다. 얼마 전 옆 부서 직원들과 점심 식사를 하면서 겪은 일이다.
A 과장 : (뜬금없이) "B 사원은 올해 몇 살이야?"
B 사원 : (수줍게) "올해 서른하나요."
A 과장 : "좋을때네." (부러움의 탄식을 뱉어냄) "나는 벌써 마흔인데..."
B 사원 : "과장님, 벌써 마흔이세요? 기분이 어떠세요?"
같은 테이블에서 식사를 하던 나, 순간 웃음이 났다. 1년 먼저 마흔을 넘긴 나, 어떻긴 똑같지 뭐.
책 <마흔에 관하여>를 읽고 있으니 아이가 묻는다.
딸 : "엄마, 나이는 왜 드는 거야?”
나 : "그러게, 나이는 왜 드는 걸까?"
(뭔가 대답을 해야 할 것 같다)
나 : "글쎄, 시간의 개념이 있으니까 우리가 보내는 시간이 모여서 나이가 더해지는 게 아닐까?
언제부턴가(아마 내 나이가 30대 중반을 넘어서면서부터) 나는 나이에 별로 의미를 두어야 하는 이유를 찾지 못했고, 나이를 잊고 살다가 짝궁의 장난스러운 놀림에 계산해보니 진짜 마흔이 되어 있었다. 나는 어쩌면 매년 커지는 나이를 숫자에 불과하다며 잊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내 인생을 80년의 생으로 본다면 나는 벌써 절반의 시간을 보낸 것이고, 청년이라는 단어가 아닌 중년이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나이가 된 것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마흔, 좀 두렵기도 하고, 쓸쓸하기도 하고 그렇다.
"삶이 어떤 대단한 선물을 주기 때문이 아니라, 지금 내게 던져진 이 삶, 아니 내가 투쟁하여 이루어낸 이 삶이 그 자체로 아름답다는 것을, 마흔 즈음에 나는 비로소 받아들이게 되었다. 145p
지난 나의 시간을 빠르게 돌이켜보니 분명 열심히는 살았다. 제대로 띵까띵까 놀아본 기억이 별로 없다. 학생증을 목에 걸었을 때는 학생의 본분을, 사원증을 목에 걸었을 때는 내가 속한 조직에서 밥값을 하려고 무던히도 애썼다. 나의 인생 바퀴는 한시도 쉬지 않고 때로는 빠르게, 때로는 천천히, 그렇게 쉬지 않고 움직여왔다. 아직까지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아빠를 보면서, 나의 사회생활을 지원하기 위해 내 아이의 양육을 하고 있는 엄마를 보면서 열심히 살아내지 않을 수가 없다. 하지만 요즘 들어 일에 대한 의욕은 떨어지고, 관계에 대한 두려움과 상처는 커지고, 내가 살아내고 있는 지금 이 시간이 올바른가 돌아보게 된다. 마음에서는 비움이라는 여유를 원하지만, 나의 시간은 여전히 조급하다. 나의 마흔은 몸으로, 마음으로 쉼표가 필요함을 간절히 느끼는 시간이다.
"마흔의 문턱이란 이렇다. 예전보다 더 섬세하게, 예전보다 더 폭넓게 타인의 인생이 보이기 시작한다. 나에게 매정하거나 야속했던 사람들의 편협함조차 이해가 되기 시작하고, 나는 그런 편협함을 물려받지 않으리라 다짐하기도 한다. 오해 받는 일이 두려워 아예 새로운 일을 시작하지 않기보다는 ‘항상 오해 받을 준비’를 하고 새로운 도전을 꿈꾸는 용기도 생겼다. 미움 받고 오해 받고 지탄받는 것보다 더 두려운 것은 ‘내가 진정한 나로 살 수 있는 기회’를 놓쳐버리는 것임을 이제는 알기에, 지독한 예민함을 사려 깊은 섬세함으로 바꿀 수 있는 나이, 오래 전 누군가에게 상처 입었던 기억 뒤로 숨기 바빴던 소심함을 딛고 일어나 상처와 맨몸으로 대면하는 용기를 낼 줄 아는 나이, 그것이 나에겐 마흔의 축복이니까, 이런 마흔이 좋다. 이런 나이 듦이 아름답고 고맙고 애틋하다. 194p
책 <마흔에 관하여>는 작가 정여울이 마흔 즈음에 쓴 글이다. 그녀는 마흔 즈음에서야 세상을 향해 용기를(해야 할 말을 하기 시작했고) 내기 시작했고, 세상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사람들을 보듬을 줄 아는 능력)을 가지게 되었고, 비로소 자신의 삶을 스스로 운전할 자유를 얻었다고 이야기 한다. ‘비로소 가능한 그 모든 시작들’이라는 부제는 마치 나의 마흔을 응원하는 것 같다. 여전히 무언가를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고, 바람에 흔들리지 않고 나 자신을 지켜낼 수 있다고,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을 사랑할 수 있는 나이라고 말해준다. 그 동안 한국 사회의 눈치 보기 문화에 길들어 자신의 목소리를 숨겨왔다면, 이제는 괜찮은 척 그만 하고 스스로에게 좀 더 정직해지라고, 진짜 괜찮은 나를 발견하라고 이야기한다.
퇴근 길 라디오에서 이문세의 노래 ‘알 수 없는 인생’이 나온다. “언제쯤 세상을 다 알까요. 얼마나 살아봐야 알까요. 정말 그런 날이 올까요…” 모든 사람들에게 인생 나이 마흔의 시간은 다르겠지만, 나도 이제 오해 받을 수도 있음을, 미움 받을 수도 있음을, 상처 받을 수도 있음을, 그것 또한 나의 인생임을 받아들여야겠다. 문득 내 나이 오십은 어떤 모습일까 궁금해진다.
2019.02.22. 어른이 되어가는 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