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좋은날 Jul 06. 2020

[독서일기] 외로움을 씁니다, 김석현

(서평) 이제는 외로움을 즐길 나이

조용하지만 친절하고 언제나 여유로워 보여서 핀란드사람들은 다 그런 줄 알았어요. 슬픈 사람도 있네요. 어디에 가든 슬픈 사람도 있고 외로운 사람은 외로운 거 아니겠어요? - 영화 <카모메 식당> 중에서, 245p


1년의 시간을 펼쳐놓고 보면, 나의 일상 속에는 분명 루틴이 있다. 그 날도 여느 날과 다르지 않았다. 다만 나는 회사가 아닌 인사관리자 세미나에 참석하기 위해 여유있게 집을 나섰고, 기차 역 앞에 있는 스타벅스에 들러 좋아하는 라떼도 한 잔 샀다. 그렇게 서울로 가는 KTX에 올랐고, 가방에서 책도 한 권 꺼냈다. 이어폰을 귀에 꽂고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며, 나의 시선은 가끔은 창 밖으로, 또 가끔은 책으로 향했다.


창 밖에 펼쳐진 풍경은 별 것 없었지만, 기차가 천천히 출발역을 떠나고, 몇 개의 역을 빠르게 스쳐지나가면서 순간 울컥하는 감정이 들었다. 좋아서, 혼자인 것이 좋아서, 누구와도 아무말도 하지 않아도 되는 그 시간이 좋아서,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해도 되는 그 시간이 좋아서, 그게 그냥 좋아서 그랬다. 혼자만의 시간이 이렇게 좋을 수 있다는 것을 그때 처음 간절하게 느꼈다. 아무도 나에게 말 걸어주지 않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창 밖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행복감을 느낄 수 있다는 걸 나는 그제서야 알았다. 매일의 일상에서 살짝 비켜섰을 뿐인데, 나는 혼자의 시간을 가져다 준 기차 안에서의 그 시간이 그냥 좋았다.

  

책 <외로움을 씁니다>를 읽으면서 나를 들여다본다. 작가는 외로움을 라이프스타일의 밸런스가 깨지면서 발생하는 감정의 균열이라고 표현했다. 개인마다 그 균형점이 다르고, 자신만의 균형점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문득 느끼는 감정이 외로움일지도 모른다고. 겨울이 오면 추워지고 여름이 오면 더워지듯, 외로움은 주기적이고 반복적으로 찾아오는 감정의 하나라고 말이다. 나는 외로움이 감정의 균열이라기 보다는 감정의 하나라는 이야기에 더 공감이 갔다. 외로움이 누군가에게는 부정적인 감정일 수 있으나, 또 누군가에게는 설레임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적어도 육아에 지친 엄마들에게 외로움의 시간은 오아시스 같은 희망이지 않을까. 어쩌면 나처럼 바쁜 루틴을 즐기는 사람에게도 외로움은 혼자만을 위한 소중한 시간으로 기억될지도 모르겠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고요함이 좋고, 복잡함에서 벗어나 자연의 변화에 귀 기울이게 되는 것도 나에게 외로움의 시간이 필요한 신호라는 생각을 해 본다. 그리고 혼자만의 시간은 일상을 더 잘 살아내게 하는 에너지가 될 수 있다는 걸 알았다. 나에게도, 남편에게도, 아이에게도 각자 혼자만의 시간을 선물하고 싶은 건 외로움의 시간도 자연스러운 감정임을, 그 외로움의 시간도 견뎌낼 줄 알아야 우리가 같이 잘 살아갈 수 있으리라. 작가의 외로움에 대한 단상은 새롭기도 하고, 익숙하기도 하다. 외로움을 느껴도 괜찮다고, 다 괜찮다고 말해주는 것 같다. 어쩌면 나에게 외로움의 시간은 산소호흡기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살다가 문득 문득 만나게 될 외로움에 낯가리지 않는 나이기를, 혼자의 시간도 가만히 잘 즐길 수 있는 나이기를, 마음의 근육을 키울 수 있는 기술을 가진 나이기를, 나는 그렇게 어른이 되어간다.


2020.07.03. 어른이 되어가는 S

매거진의 이전글 [독서일기] 타인은 나를 모른다, 소노아야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