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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좋은날 Apr 16. 2021

[독서일기] 어떤 죽음이 삶에게 말했다, 김범석

당신의 남은 시간을 무엇으로 채우겠습니까.


사람은 누구나 "주어진 삶을 얼마나 의미 있게 살아낼 것인가"라는 질문을 안고 태어난다. 63p


‘암’이라는 단어는 공포스럽다. 겪어보지는 않았지만 치료 과정이 꽤나 힘들기도 하고, 암을 진단받았다는 사실만으로도 충격에서 벗어나기 쉽지 않을 것 같다. 주변에 암으로 투병하는 분도, 안타깝게 결국 생을 마감한 분도 여럿 보았다. 나이를 불문하고 찾아오는암이라는 병은 아무리 초기라고 해도 그 무게가 절대 가볍지가 않다. 나도 40줄에 접어들면서 몸 속에서 이런저런 경고의 신호들이 계속 생겨났다. 다행히생명에 지장을 주는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6개월마다 정기검진을 하러 갈 때면 진료실 밖에서 내 이름이불릴 때까지 그 잠깐의 시간 동안 나를 엄습하는 두려움의 크기는 작지 않다.


서울대병원 종양내과 전문의 김범석 교수가 만난암 환자와 그 가족의 이야기는 읽는 내내 큰 돌 덩어리를 안고 있는 것 같이 답답했고, 또 먹먹했다. 김범석 의사가 만나는 환자들은 대부분 4기 암환자들이고, 완치가 아닌 생명 연장 목적의 항암치료를 받는다고 한다. 항암치료가 완치 목적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과, 환자 개인의 기대여명이라는 것이 비슷한 환자의 일반적인 케이스라는 것, 그래서그 기대여명이 정확하지 않다는 것도 이제야 알았다. 


나는 일찌감치 사후 장기기증 신청을 했고, 가족들에게 혹여 내가 잘못되면 연명치료는하지 말고 내가 가진 장기 중 쓸만한 것이 있으면 필요한 사람들에게 꼭 나누어달라고 이야기를 해두었다. 물론나는 아직 젊고, 특별히 아픈 곳도 없다. 하지만 인생이라는 것이 언제나 예측한 데로 흘러가지는 않는 법이니까. 나는여전히 혹여 그런 시간과 마주하게 된다면 그렇게 내 삶을 마무리하고 싶다. 암을, 그리고 죽음을 경험한 가족들의 이야기는 의료 윤리와 더불어 우리의 인생은 맞고 틀리다의 O, X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했다. 치료가효용이 없는 상태에서 평소 연명치료를 원치 않았던 환자, 하지만 의식이 없는 환자 대신적극적인 치료를 요구하는 가족, 내가 그 가족이었어도아무것도 해 보지 않고,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해 보지도 않고 가족을 떠나 보냈다는 죄책감에서 자유롭고 싶어 모든 걸 다 해보고싶어했을 것 같다. 하지만 환자 개인에게는 인생의 마지막 시간이 고통스러웠을뿐만 아니라 살아온 시간을 정리할 짧은 시간조차 빼앗겨 버린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야, 어느 정도 살아보니 세상에는 정말 겪어봐야만 이해할 수 있는 일이 있음을 안다. 이제는 진료하면서 환자에게 '당신을 이해한다'는 말을 차마 하지 못한다. 세상에는 겪어보지 않고는 이해한다고 말할 수 없는 일이 있다는 것을, 나는 눈앞의 환자와 같은 경험을 해보지 않았다는 것을, 그러므로 완벽히 그를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이제는 너무도 잘 알기 때문이다. 163p


나이가 들어가면서 자연스럽게 겪게 되는 경험들이있다. 한 아이의 부모가되고 나서야 부모의 마음을 아주 조금 이해하게 되고, 가족의죽음을 맞닥뜨리면서 고인에게 진심을 더 하지 못했음을 후회하게 되고, 나의 시계가 죽음에 더 가까워진다는것을 받아들이면서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하게 된다. 전혀 생각해보지 않았던 죽음이라는 단어는어쩌면 이제 더 이상 낯설지 않은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죽음만 잊고 사는 것이 아니다. 삶도 잊어버린 채 살아간다.
지금 이 순간 내가 살아 있다는 것, 이 삶을 느끼지 않고 산다.
잘 들어보라. 삶을 잊은 당신에게 누군가는 계속 말을 걸어오고 있다. 
우리보다 먼저 종착역에 당도한 이들은 지금 이 순간의 삶을,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살아낼 것인지 묻는다. 
이제는 남아 있는 우리가 우리의 삶으로서 대답할 차례다. 261p


2021.04.16. 어른이 되어가는 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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