균열

떠나는 문장들

by 달콤한하루

저녁은 이미 식어 있었다.
식탁 위에는 반쯤 남은 미역국과, 서로 다른 방향을 향한 젓가락이 있었다.
우린 그 앞에서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난… 그때 그렇게 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어."
그가 말을 꺼냈다.
"결과가 이렇게 될 줄은 몰랐지만."

나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물컵 속에서 빛이 일렁였다.
그는 늘 이렇게 시작했다.
자신이 옳았다는 전제.
그리고 부드러운 변명.

그동안 불똥이 내 쪽으로만 튀었다는 걸 그는 모를까.
아니, 모른 척하는 걸까.

‘그동안 힘들었겠다.’
그 말 한마디면 됐는데.
다친 데에 붙이는 거즈 같은 말.
하지만 그는 그런 말에는 서툴렀다.
아니, 관심이 없었다.

"네가 그때 그 말을 안 했더라면…"
그의 목소리는 단정했다.
끝까지 내가 잘못한 부분만 나열하는 목소리.

창밖에서 바람이 불어와 커튼이 흔들렸다.
그 순간, 내 안에서 무언가 부러지는 소리가 났다.
아주 작은, 그러나 되돌릴 수 없는 소리였다.

문득, 오래 전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여름 한낮, 찬물에 담근 복숭아를 함께 먹던 날.
그가 웃으며 말했었다.
"너 덕분에 살 것 같다."
그 말은 그 여름을 환하게 만들었었다.

이제, 복숭아 대신 식어버린 국이 있고
웃음 대신 결론이 있다.

나는 더 이상 그의 목소리를 따라가지 않았다.
그저 커튼 너머로 번져드는 가로등 불빛을 바라봤다.
그 빛은 고요했고, 오래전부터 거기에 있었던 것처럼 흔들리지 않았다.

오늘, 이 작은 균열은 끝까지 벌어질 것이다.

밤이 깊어가도 불빛은 꺼지지 않았다.
그 빛이 내 방 안쪽까지 스며들었다.
나는 베개 위에 머리를 두고 눈을 감았다.
그가 말하지 않은 모든 문장이,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내 마음을 떠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