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말라야 트레킹 3일 차, 4일 차
3일 차
셋째 날, 그 전날에 비해 비교적 간단한 일정이었다. 더 올라갈 수 있어도 안전하게 올라가기 위해서는 고도에 적응할 필요가 있었다. 하루에 500m 정도 올라가는 것이 고산병을 예방할 수 있다. 그렇지만 대부분 800m 정도씩 올라가는 듯했다. 아침 출발을 늠름한 개와 함께 했다. 비록 나이가 있어 보였지만 온몸이 근육 같았다. 날렵한 몸으로 꼭대기에 먼저 올라가 우리를 못마땅하듯이 쳐다봤다. 나중에는 우리 일행이 답답했는지 결국 다른 일행을 따라 올라갔다. 나한테도 버겁기는 했다. 페이스 메이커라고 하기에는 나의 능력으로는 도저히 따라갈 수 없었다.
날씨는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좋아졌다. 전날과 다르게 하늘은 푸르기만 했다. 구름 위에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하늘과 가까워져서 그런지 햇빛도 더 뜨겁게 느껴졌다. 중간에 휴식할 겸 히말라야라는 마을에 도착했다. 이미 그 개는 마을에 위치한 야외 카페 한가운데에 태연하게 누워있었다. 그 카페는 히말라야에서 재배한 커피로 유명했다. 가이드의 말에 따르면 우유는 히말라야에 사는 버펄로부터 나온다고 했다. 히말라야에서 재배한 커피와 거기서 살고 있는 버펄로의 우유, 참기 힘든 조합이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만 마시던 나는 자연스럽게 카페 라테를 시켰다. 우유를 잘 소화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까먹은 채 말이다. 히말라야 라테는 일반적인 라테보다 고소한 맛이 더 강했다. 그리고 핫초콜릿처럼 달았다. 까라멜 마키야토와 비슷한 맛이 났다. 따뜻한 커피 한 잔은 고산병으로 머리가 어지러운 것을 잠시 잠재우기에는 충분했다.
약간의 휴식을 취하고 바로 다음 마을로 향했다. 개는 우리 앞에서 간식을 주는 행인을 따라 올라가고 있었다. 역시 간식은 최고의 동료이다. 한 발짝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고산병이 가까이 다가오고 있는 게 느껴졌다. 계단 3개만 올라가도 숨이 찼다. 10분에서 15분 사이에 한 번씩은 꼭 쉬어야 했다.
카페 라테를 마시고 한 1시간 30분 지났을 때였다. 배가 슬슬 아파왔다. 우유의 효과는 대단했다. 그 후 10분이 지나니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3일 동안 먹었던 모든 것들이 한 번에 나오려는 것 같았다. 가이드의 말에 따르면 15분에서 20분 정도 남은 거리였다. 머리가 어지럽고 숨이 차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일단 살아야 했다. 뛰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들이 보면 저 애는 왜 뛰어 올라갈까라고 의문을 가질 정도로 빠르게 올라갔다. 8분 만에 최종 목적지에 도착했다. 마을에 위치한 아무 롯지에 들어가 화장실을 찾았다. 겨우 살았다. 아무리 달고 맛있어 보여도 결과는 썼다. 특히 버펄로 우유의 결과는 맛과는 다르게 고통스러웠다.
숙소에 도착했을 때는 12시 전이었다. 배가 아픈 것이 해결되니 머리 아픈 것이 슬슬 돌아왔다. 일단 고산병 약부터 먹었다.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 되었지만 샤워는 하지 않았다. 샤워를 하면 열이 빼앗기고 이로 인해 고산병이 더 악화될 수 있었다. 같이 오신 일행 중 한 분은 가볍게 머리만 감았다가 온몸에 벌레가 기어 다니는 듯한 느낌과 두통으로 내려가시기 전까지 고통받으셨다. 롯지의 카페에 앉아 경치를 바라보면 약간의 고산병이 괜찮아지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밖은 추워졌고 나 또한 열을 빼앗겼다. 두통이 끊이지 않았다. 3일간의 일정으로 몸은 피곤했지만 자지도 못했다. 그저 카페에 앉아 밤이 빠르게 오기를 기다렸다.
4일 차.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든 생각은 하나였다. ‘오늘만 올라가면 된다.’ 온몸이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점은 좋은 신발을 대여받아서 물집 생기지 않았다는 것이다. 단지 허벅지 앞이 프런트 스쾃를 한 것 마냥 느낌이 없었다. 저 멀리 보이는 안나푸르나 봉우리와 마르드히말 봉우리만이 나의 유일한 동력원이었다. 여기까지 왔는데 온몸이 아프더라도 올라가야만 할 것 같았다.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ABC) 전 마르디히말 베이스캠프(MBC)에 도착했다. 이곳도 3700m로 낮지만은 않은 고도였다. MBC의 한 카페에 앉아 여유롭게 설산을 바라봤다. 나무들은 거의 보이지 않았고 3700m에 위치한 광활한 평야 같았다. 사람들만이 그 광활한 평야를 15kg 정도 되는 가방을 메고 등산 스틱에 의존해 오를 뿐이었다. 마치 반지의 원정대 같았다. 휴식을 취하고 다시 오르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모든 것이 믿기지 않았다.
‘내가 여길 진짜 오다니…’
오전 11시가 지나니 점점 날씨가 안 좋아지기 시작했다. 구름들이 우리를 감쌌다. 멀리서 우리에게 인사해주고 있던 산봉우리와 마을은 구름 속에 자취를 감추었다. 그래도 기분은 좋았다. 올라왔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했다. 4130m 지점에 도착하니 ‘나마스테’라고 쓰인 간판이 우리를 맞이해주고 있었다. 4일 만에 올라왔다. 그냥 뻗어서 잠만 자고 싶었다.
저녁 6시가 되니 갑자기 구름들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속에서 붉은 태양이 안나푸르나를 붉게 만들어주었다. 안나푸르나의 여신이 인간들의 간절한 마음을 알아차렸던 것일까? 4일 동안 가방 저 아래 숨겨놓았던 카메라를 꺼내 안나푸르나의 부름에 대답했다. 무작정 찍었다. 산맥은 점점 붉어져만 갔다. 아름다웠다. 이걸 보기 위해 4일에 걸쳐 올라왔다. 저 아름다운 풍경을 볼 수 있음에 감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