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잔했던 템플스테이

영랑사에서

by Soo

여명은 피로로 바뀐 지 오래였다. 황혼은 피로의 끝이며, 다시 시작하는 여명이었다.


단조롭지만 소음으로 가득한 곳에서 잠시만이라도 벗어나고 싶었다. 일상 속에서 자라는 미래에 대한 불안함. 기숙사 복도에서 들려오는 신발 소리. 창문을 흔들며 들어오는 배달 오토바이의 엔진 소리. 그 소음들을 잠재우기 위해 이어폰을 꽂았지만, 귀는 쉬지 않았다. 더 힘든 건 마음속에서 끊이지 않는 소음이었다. 외부의 소리보다 내부의 소리가 더 시끄러웠다.


그래서 11월. 추위가 시작된 날, 나는 조용한 시작을 찾고 싶어 템플스테이를 선택했다. 친구의 추천으로 마음속에만 간직했던 당진에 위치한 영랑사. 영랑사는 당진버스터미널에서 차로 15분 떨어진 작은 시골 마을과 산의 경계에 자리한 절이다. 택시에서 내리자 풍등 소리가 우리를 가장 먼저 맞아주었다. 그리고 조금 뒤, 멀리서 니모라는 시골 강아지가 달려왔다. “니 이름이 뭐니?”라는 말에서 ‘니모’라는 이름이 생겼다고 했다. 시골 절의 평화로움은 그 이름부터 담백했다.


나는 1박 2일 휴식형 템플스테이를 선택했다. 굳이 무엇인가 할 필요가 없었다. 정해진 일정도 없었다. 정해진 것은 저녁, 아침, 점심 공양 시간이었다. 절 속에서의 자유가 주어졌다. 니모 쓰다듬기, 풍등소리 들으며 절 둘러보기, 근처에 위치한 수목원에서 가을과 겨울의 경계를 즐겼다. 수목원과 절 사이는 족히 나보다 오래 산 나무들로 가득해 절에서 들렸던 풍등소리조차 닿지 않았다. 새소리도 벌레 울음도 들리지 않았다. 그저 가파른 산을 오르는 숨소리와 친구와 나의 대화소리만 있었을 뿐이었다. 그 고요가 참 마음에 들었다.


첫날은 그렇게 흘러갔다. 단순한 힐링의 하루였다.


이튿날 아침 7시, 아침 공양을 마치고 쭈그려 앉아 니모를 쓰다듬으며 고요와 자연 속에 살고 있는 니모를 부러워하고 있었다. 이런 모습이 마치 어리석은 중생처럼 보였는지 한 스님께서 우리에게 다가와 차담을 해보지 않겠냐고 권하셨다. 사실 누구보다 이 순간을 마음속으로 기대했다. 외부의 소음은 잠재웠지만, 내부의 소음으로부터는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침 공양과 점심 공양 사이, 네 시간 동안 여러 종류의 보이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눴다. 뜨거운 물로 작고 투박한 주전자를 데우고, 첫 번째 우린 차는 비워내고 두 번째 우린 차부터 잔을 채워주셨다. 그 과정 하나하나가 하나의 수행처럼 보였다.


차를 마시며 궁금한 것이 있으면 무엇이든지 물어보라고 하셨다. 개인의 고민도 좋다고 하셨다. 그리고 대부분 많은 사람들이 개인의 고민과 함께 이미 답을 가지고 온다고 하셨다. 그 말씀을 듣고 나는 '아차' 싶었다. 이미 내 마음속의 소음의 원인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해결책도 알고 있었다. 그저 앞에 놓인 일에 몰입하고, 계산하지 않으며, 내가 책임질 수 있는 일까지 하며 묵묵히 나아가는 것. 그거면 되는 거였다.


스님의 단 한 말씀이 차담 내내 풍등 소리처럼 잔잔하게 울렸다. 템플스테이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도 그 여운이 사라지지 않았다. 답을 앞에 두고 답을 찾고 있었으니 스님 눈에는 내가 얼마나 어리석어 보였을까.


스님은 마지막으로 우리에게 고해라는 바닷속에서 낭만을 찾아보라고 하셨다. 인생이 충분히 재미있을 수 있을 것이라고.


앞으로의 인생은 불교에서 표현하듯이 고통의 과정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무너질 때마다 스님과의 차담하는 순간을 떠올려야겠다. 템플스테이의 가장 큰 묘미는 자연, 맛있는 밥, 고요도 아니었다. 스님의 시각에서 다시 바라보게 된 나 자신이었다. 내부의 소음이 커질 때마다, 다시 그 작은 절의 고요를 떠올려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