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이면 '조두순 사건'의 조두순이 만기출소를 하게 된다. 아직까지도 어린 소녀가 입은 상상하기 어려운 고통의 크기에 치를 떨었던 기억이 생생한데, 그 범인이 다시 사회에 나와 자유로운 삶을 얻는다고 생각하면 공분을 불러일으킬 이유는 충분하다. 벌써부터 흉악범의 사회 복귀를 막아야 한다며 법 개정과 재심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크다. 이 사건은 판결 당시에도 형량이 지나치게 가볍다며 시끌시끌했었다. 그러나 이미 확정된 판결을 받고 복역을 했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그의 출소를 막기는 어려워 보인다.
이렇게 전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극악무도한 흉악범이 곧 죗값을 치르고 출소한다고 하면 사회적 논란의 대상이 된다. 사람들이 분노하는 포인트는 '죗값을 치렀다'는 부분이다. 수년 교도소에 갇힌 정도로 치르기에는 그의 죗값이 너무 싸게 책정되었다는 공감대가 쉽게 형성된다. 거기에 최근 '선진형 교도소'로 죄수들이 안락한 환경에서 호의호식하며 지내는 모습이 언론을 타면 국민들의 분노는 허탈함에 이르기까지 한다. 피해자는 평생 지워지지 않는 정신적, 육체적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데 비해 언론에 비치는 교도소 생활은 사실상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특별한 상처를 남기지 않기 때문이다.
너무 극단적인 예를 들었지만, '죗값을 치른다'는 표현에 대해서는 좀 더 심도 깊은 논의가 필요하다. 장발장은 분명 도둑이지만 동정의 여지가 있는 죄인이다.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소설을 읽는 우리는 장발장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그의 사정을 읽었기 때문에 동정심을 보일 수 있지만, 현실에서 우리가 죄인을 대하는 태도는 그저 '죄인'에서 한 발도 더 나아가지 않는다. 모두가 1인칭 시점으로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과연 어떻게 조두순과 장발장을 구별할 수 있을까?
징역형의 목적이 처벌이냐, 교화냐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은 저마다 다르다. 그렇지만 이 논의 이전에, '과연 모든 사람은 교화의 가능성이 있는가?'에 대한 과학적인 탐구와 '아무리 흉악한 죄라도 교화만 된다면 다시 사회 구성원으로 받아들여야 하는가?'에 대한 논의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이 두 가지 질문에 대해 장발장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Yes'의 답을 들을 수 있는 반면, 조두순은 거의 모두로부터 'No'를 얻게 될 것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두 명의 죄인을 구분할 때에 죄의 크기를 기준 삼는다. 기본적으로 사람들은 극악무도한 흉악범은 교화의 여지가 없다고 인식한다. 특히 살인이나 강간과 같은 인륜적인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라고 한다면, 이미 죗값을 치른다는 개념 자체에 대해 거부하는 인식이 있다.
그렇다면 논의의 초점을 죄나 죄인이 아니라, 그를 받아들이는 '정상적인'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우리 스스로의 모습으로 돌려보자. 어차피 우리가 사회의 일원으로 받아주지 않을 것이라면 재판을 하고, 교도소에 가두고, 노역을 시키는 행위들 전체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이 아닌가? '평생 고립시켜야 한다'고 모두가 주장할 것이라면 국선 변호사를 선임시키고 수개월 동안 재판을 진행하고 교도소에서 죄수의 생활을 유지시키기 위해 들이는 모든 사회적 비용들이 쓸데없이 낭비되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법원과 재판의 필요성 자체를 부정하는 사람은 없다. 왜냐하면 우리는 아직도 마음속에 장발장과 조두순을 구별하려는 인식이 있기 때문이다.
위에도 언급했듯이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장발장과 조두순의 표면적으로 드러난 죄의 크기일 뿐이다. 폭행을 저질러 감옥에 간 사람을 두고 이 사람이 교화의 여지가 있는지는 누구도 판단할 수 없다. 그래서 재판을 하고, 적당한 기간 복역을 한 후에는 '죗값을 치렀다'고 사회적으로 인정해주기 위해서다. 그런데 문제는 죄의 크기와 상관없이 사람들이 '죄인이었던' 이를 바라보는 시각은 죗값을 치른 이전이나 이후가 별로 다르지 않다는 점이다. 개중에는 분명히 장발장이 섞여있는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모두를 조두순과 같이 취급한다.
그렇지만 이를 잘못이라고 할 수는 없다. 한 번 죄인이었던 사람을 경계하는 것은 자신에게 닥칠 위험의 가능성을 줄이려는 당연한 방어적 행동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분명 우리는 사회 구성원으로서, 그런 방어기제 속에서도 인간다움을 최소한의 수준으로는 발휘해야 할 책임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