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개여신(2006)은 그렇게 그냥저냥 살면서 감정에 솔직하지 못했던 주인공의 후회에 관한 이야기이다. 어디에나 있을 것 같은 평범한 남녀의 모습이지만 또 그렇기 때문에 그 속에 담긴 감성의 전달이 결코 가볍지 않고, 넋을 잃을 만큼 아름다운 영상미가 담긴 장면 하나하나가 더해져 가슴속을 적잖이 어지럽힌다.
꿈도 열정도 없고 우유부단한 성격 탓에 항상 손해만 보고 사는 청년 토모야는 어느 날 아오이의 사망 소식을 듣는다. 아오이는 토모야의 대학시절 친구로, 토모야에게 자신의 직장 자리를 넘겨주고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 뒤 사고를 당한 것. 정신없이 살면서 연락도 뜸해진 상태라 갑작스럽게 접한 비보에도 토모야에게는 슬픔보다 놀라움이 크다. 아오이를 아꼈던 직장 선배와 함께 조문을 가서 오랜만에 옛 친구들과 아오이의 동생 카나를 만난 뒤, 토모야는 비로소 대학시절부터 이어진 아오이와의 추억을 하나씩 끄집어낸다.
두 사람의 만남은 시작부터 삐걱거렸다. 아오이의 아르바이트 동료에게 접근하기 위해서 아오이를 포섭하려 했던 것에서 시작해, 아오이가 영화 동아리에서 만들던 작품의 여주인공에게 갑자기 반하거나 우연히 굴러들어 온 행운인 줄 알았던 미인 여자 친구가 사실은 10살 연상의 이혼녀였다든지. 토모야의 연애 사업은 무엇 하나 제대로 풀리는 일이 없었다. 일이 안 풀리기는 아오이도 마찬가지다. 첫 키스는 영화 촬영 중 주연배우가 키스신을 거부하는 바람에 대타로 들어가서 헌납해버렸고, 취재를 빌미로 방문한 소개팅 카페에서는 아무도 자신을 지목해주지 않았다.
두 사람의 공통점은 자신감이 없다는 점이다. 자신의 감정을 표현했을 때 벌어질 일들, 상대방의 반응, 그로 인해 잃게 될 것에 대한 불안감이 너무 크기 때문에 결국 마지막 순간까지 두 사람의 평행선은 좁혀지지 않았다. 토모야는 쉽게 사랑에 빠지고, 마음에 드는 이성에 스토킹 수준까지 따라붙으면서도 사실은 결정적인 한 방을 날리지 못하는 우유부단한 인물로 그 성격처럼 마지막까지 아오이의 진심을 어렴풋이 눈치채고 있으면서도 애써 외면했다. 아오이는 목표하는 바를 향해 누구보다 열정을 보이는 여걸이지만 감정에 있어서만큼은 끝내 두려움을 이기지 못했다.
"가장 소중한 사람과 함께라면 죽는 것도 두렵지 않다. 가장 소중한 사람이 곁에 없으니까 죽는 게 무서워... 이대로 죽고 싶지 않아... 같이 살고 싶어... "
극 중 아오이가 제작한 영화 '지구 최후의 날'에서 아오이가 오열하는 마지막 장면과, "끝난 건 나뿐이었다"라는 대사는 아오이가 사고를 당하는 마지막 순간에 그녀가 떠올린 본심을 암시함과 동시에, 좀 더 적극적으로 표현하지 못했던 토모야와의 어중간한 관계에 대한 후회를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장면이다.
"두 사람 다 정말 바보야..." 최후에 가서야 직접적으로 아오이의 진심을 확인하고 뒤늦게 울음을 터뜨리는 토모야에게 원망하듯 던지는 카나의 마지막 대사가 작품 전반을 관통하는 핵심 주제이자 영화를 보는 관객에게 던지는 메시지이다. 두 눈을 똑바로 뜨고 항상 같은 것을 바라보면서도 알지 못했던 두 사람 관계의 해답은 앞을 보지 못하는 카나만이 알고 있었다. 어쩐지 감정을 표현하는 것은 이제까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대상 앞에서 처음 눈을 뜨는 행위와 닮았다. 내 눈 앞에 있는 것이 아름다운 무지개인지 우중충한 먹구름인지는 눈을 뜨고 보기 전까지는 모르는 것이다.
유품으로 남은 아오이의 휴대폰이 배터리가 다 되어 꺼지고 말았던 것처럼, 감정 표현에는 기한이 있을 수 있다. 눈 앞에 보이는 것이 아름다운 것이어야 한다는 '정답'은 세상에 없다. 휴대폰이 꺼진 후에는, 그 속에 담긴 메시지가 무엇이었는지 결코 알 수 없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