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크(1991) / 스티븐 스필버그 (2)

수염 난 피터팬으로 살아가기

by 잌쿤
Hook(1991)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 후크(1991)는 '어른이 되어버린 피터팬'을 주제로 하는, 어른을 위한 동화다. 웬디의 손녀를 보고 반하여 인간세상에 눌러앉은 지 30년이 지나, 이제는 네버랜드에 대한 기억을 완전히 잊어버린 어른 피터팬의 이야기이다. 배 나온 아저씨의 모습과 천진난만한 어린이의 눈빛을 동시에 지닌 로빈 윌리엄스가 완벽한 중년의 피터팬을 연기해냈다.


완전히 '어른이 되어버린' 피터팬은 일중독에 빠져있으며 자녀들에게 항상 'Grow up'을 외치는 아빠다. 한때는 네버랜드에서 가장 상상력이 풍부했던, 모든 아이들의 리더였으나 이제는 가장 아이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어른들의 표본이 되어버렸다. 10년 만에 영국을 방문한 그는 후크에게 납치된 아이들을 구하기 위해 네버랜드로 돌아가 팅커벨과 친구들을 만난다. 네버랜드의 친구들은 후크를 물리치기 위해 행복한 상상을 해서 피터팬으로서의 모습을 되찾아야 한다고 하지만 이미 상상력을 잃어버린 채 무기력할 뿐이다. 마침내 기억 속 잊고 있었던 가장 행복한 기억을 꺼내는 데 성공한 뒤, 그는 다시 피터팬으로서 하늘을 날고 멋진 검술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후크를 물리치고 아이들을 구해 현실세계로 돌아온다.


네버랜드는 유년시절을 상징한다. 그때는 '어른들은 나쁘다'라고 생각했으며, 상상하는 모든 것은 가능한 일이라고 굳게 믿었다. 네버랜드(유년시절)와 현실세계를 구분짓는 핵심 키워드는 '행복한 상상'이다. 아이들은 현실적 제약 따위 고려하지 않고 자유롭게 생각한다. 작품의 세계관인 네버랜드와 현실세계는 어린 시절과 어른이 된 모습의 극명한 대비다. 어린 시절에는 더 깊은 상상력을 가지고 초능력도 사용하지만, 어른이 된 후에는 어린 시절의 모습을 기억하지 못하며 초능력이나 순수한 마음을 가지지 못한다. 그런데 우리는 어려서부터 익숙했던 이 작품이 강조하는 '동심'의 중요성에 대해 수긍하면서도, 정작 현실세계에서는 어린아이의 마음을 가진 어른들을 미성숙하다고 조롱하고, 이러한 심리 상태를 정신 질환으로 분류하며 '피터팬 증후군'이라는 이름을 붙인다. 이 모순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과연 '수염 난 피터팬'은 나쁜 것일까.


그러나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남아있는 것'이 결코 아니다. 아이는 언젠가 어른이 된다는 것을 피할 수 없다는 점, 그렇지만 네버랜드는 결코 한때 지나쳐왔던 허황된 꿈에 불과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네버랜드를 지키기 위해 반드시 필요했던 무기는 어린아이와 같은 행복한 상상이다. 여기서 어린아이의 모습이 아니라, 어린아이와 '같은' 모습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어린아이 같이 좋아한다'는 표현이 있는 것처럼, 행복한 상상에 대해서는 현실적인 조건을 고려하지 않고 순수한 마음으로 행복감을 한껏 느끼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피터팬을 다시 날게 해 준 '행복한 상상'은 어린 시절 네버랜드에서 걱정 없이 뛰어놀았던 시절의 기억이 아니다. 바로 현실세계에서, 어른의 모습으로서 얻었던 자녀에 대한 기억이 피터팬에게 행복의 원천이었다는 점이 가장 중요하다. 피터팬의 역할은 다시 네버랜드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행복한 상상'인 아이들이 네버랜드에 머무는 '또 다른 피터팬'으로 남을 수 있도록 지켜주는 것이다. 동심을 되찾는다는 것은 어른으로서의 모습을 잃는다는 것이 결코 아니다. 오히려 어른으로서의 모습도 지켜야만 진정한 '수염 난 피터팬'이 완성된다.


추억을 회상하는 일은 아름답다. 그러나 현실에서의 자신을 인정하고 현실에서 행복을 찾을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진정 아름답게 과거를 추억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우리가 열심히 살아가는 것은 모두 행복하기 위함이지만, 바로 지금 자신이 행복한지를 가끔은 돌아볼 수 있는 여유는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나는 지금 후크에게 내 행복의 원천인 무언가를 납치당하지 않았나? 나만의 네버랜드를 지키기 위한 무기는 무엇일까?


'수염 난 피터팬'으로서 살아가기 위해, 매일 아침의 나는 그리움을 잠시 접어두고 그날의 출근길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