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장의 크리스마스(1983) / 오시마 나기사 (2)

당당하게 Merry, Christmas!

by 잌쿤
Merry Christmas Mr. Lawrence (1983)


고전영화인 1983년작 '전장의 크리스마스'는 그리 널리 알려진 영화는 아니다. 원제 'Merry Christmas Mr. Lawrence'는 영화의 주연배우이자 OST 작곡가인 일본의 피아니스트 사카모토 류이치의 곡으로 더욱 유명하다. OST는 크리스마스를 테마로 하고 있지만 신나는 축제나 로맨틱한 분위기가 아니라 영화의 메시지처럼 평화를 표현하는 듯한 경건한 선율이 인상적인 명곡이다. 조용한 가운데 가만히 곡을 듣고 있으면, 영화 속 요노이 대위와 샐리어스 소령의 화합, 그리고 로렌스의 미소가 번지는 이색적인 크리스마스 풍경이 떠오른다.


제2차 대전이 한창인 1942년, 일본군 포로수용소에서는 연합군의 포로들에게 강제 노동을 시키면서도 포로들 중에서 리더를 임명하여 통솔권을 일정 부분 보장하는 등, 때로는 폭력을 사용하기도 하지만 나름의 인격적인 존중을 해주는 편이었다. 하지만 포로가 아니라 평화적인 이주민이라 하더라도 황백의 차이를 극복하기는 힘든 법이라 크고 작은 마찰이 끊임없이 일어난다. 그리고 샐리어스 소령이 포로로 잡혀오면서 포로수용소장 요노이 대위와 서양인 포로들 사이의 갈등은 점점 극으로 치닫는다.


영화는 로렌스 중령의 중립적인 입장에서 요노이 대위와 셀리어스 소령의 갈등에 대한 관찰자적 시점으로 진행된다. 생명보다도 신념과 명예를 중요하게 여기는 전형적인 일본의 군인 요노이와 전장이지만 인간적인 면을 중요시하는 서양인 셀리어스의 갈등은 곧 동서양의 가치관을 상징하는 측면도 있다. 요노이 대위는 누구보다도 제국에 대한 충성이 앞서고 제국을 위해 철저히 헌신하는 전형적인 군인이며 오로지 자신의 길 밖에는 모르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는 셀리어스를 보고 알 수 없는 감정을 느낀다. 그것은 거부감일까? 호감일까?


어느 쪽이든 자신과 너무나 다른 방향의 신념을 품고 있는 그에게 요노이 대위는 점점 빠져들어간다.(요노이와 셀리어스의 호감을 동성애적 코드로 해석하는 시각도 있다. 분명 서로 다른 가치관을 가진 두 남자가 서로의 신념을 이해하고 매료되는 감정의 변화가 얼핏 애정의 표현으로 비칠 수 있도록 연출된 것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죽고 죽이는 전장에서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 것인지에 대해서는 누구나 자신이 옳다고 대답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는 누구도 자신만이 옳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요노이는 셀리어스가 마음에 들고, 셀리어스도 요노이를 미워하지 않는다. 그러나 둘의 갈등은 깊어가기만 한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갈등의 핵심이 되는 것은 바로 일본인의 '할복'으로 상징되는 그들의 전체주의였다. 수치를 죽음보다도 싫어하는 일본인의 행동은 서양인들에게는 미친 짓이었다. 그러나 일본인에게는 죽지 않고 수치를 감당하며 사는 서양인들의 삶이 또한 미친 것으로 보였다. 요노이는 점점 포로들에게 일본인의 사고를 강요하기 시작했고, 포로장 척크리스를 포함한 포로들은 더욱 반항했다. 셀리어스는 어땠는가? 그는 단지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다. 셀리어스는 일본인을 이해하려 하지 않았다. 반항하지도 않았다. 단지 자신의 것을 지킬 뿐이었다. 당당하게 죽은 사람을 애도하고, 성가를 불렀다. 그리고 요노이에게도, 서양의 삶이라는 것을 가르쳐주었다. 그리고 상황은 점점 악화되어 갔다.


오로지 로렌스만이 중간에서 모든 이를 이해하려 하였다. 그는 서양인이지만 일본어를 할 줄 알고, 일본의 문화를 알고 있으며 일본군들과 친분을 유지하고 있다. 등장인물이 모두 로렌스와 같았다면 이곳은 더 이상 전장이 아닐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로렌스의 태도에 대한 일본의 대답은 하라 상사이다. 영화의 제목인 'Merry christmas. Mr.Lawrence'는 로렌스의 말이 아니라 로렌스에게 던지는 하라의 말이다. 그는 로렌스를 만나기 전에 일본인이었지만, 훗날에는 영어도 배우고 서양인의 문화도 받아들였다. 비록 패전 후에 처형을 당하게 되었지만, 하라는 전혀 불행하지 않았다. 평화의 날인 크리스마스가 전장에 나타나기 위해서는, 일본인들이 서양을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한다는 영화의 메시지를 충분히 전했으니까.


영화는 입장의 차이로 인한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어떠한 방법론적인 정답을 규정짓지는 않는다. 단지 로렌스라는 유형의 인물을 통해, 나와 다른 부분을 가진 사람에 대한 거부감을 호기심으로 바꾸어 그 사람에 대해 '학습'한다는 하나의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어떠한 방법에서건 '잘 보이기 위한 노력'을 통해, 상대방에게 'Merry Christmas!' 한 마디 던질 수 있으면 어느 정도 성공한 이해심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