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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은채 Nov 04. 2023

여행이 싫은 당신께,

혼자 하는 해외여행 강력히 권하는 글

교환학생 생활을 시작한 지 한 달 하고도 보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빠르게 흘러간 시간 속에서 북유럽 4개국을 비롯해 파견국 영국의 수도인 런던, 그리고 이탈리아의 몇 도시들에 부지런히 발자취를 남겼다. 한번 살아보고 싶은 나라가 영국이었다면 가장 여행하고 싶은 나라는 이탈리아였는데, 오랜 환상이 이루어진 덕분일까? 설렘보다는 부담과 스트레스로 다가오던 여행이 언젠가부터 좋아졌다. 처음으로 여행 그자체가 아니라, 여행이 ‘끝나는 게’ 싫었다. 세 번째 여행이 끝나고서야 비로소, 여행에는 예쁜 풍경을 보고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 이상의 가치가 있다는 사실을 알 것 같다.


9월 중순에 북유럽을 쭉 돌고 나서, 나는 여행과 맞지 않는 사람인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여행 자체가 오랜만이기도 했고 유럽은 처음이기에 설렐 법도 한데, 여행이 주는 환희보다는 계획을 세워야 한다는 부담감과 짐 때문에 소모되는 체력으로 인한 피로가 컸기 때문이다. 북유럽 여행은 교환학생 생활을 시작하는 첫 일정이었기에 학기 중에는 물론 종강 이후로도 남아있는 여행 계획이 많았는데, 그 계획을 전부 갈아엎어야 할 정도로 여행 스트레스는 내게 심각한 고민거리였다. 우연한 기회로 이탈리아 동행이 생겨 여행 계획을 세우기 시작하던 시점에도 (힘들기만 할 것 같은데) 갈까 말까 하는 갈등이 끊이질 않았다.


그래도 이탈리아는 교환 일정에서 뺄 수 없는 주요 여행지였고, 학기 중이 아니면 종강 이후에는 들를 시간이 없을 것 같아 방문을 확정한 뒤 마음이 바뀌기 전에 항공권을 구매했다. 10월 28일 토요일에 떠나 11월 1일 수요일에 돌아오는 4박 5일 일정이었고, 처음 이틀은 파리에 파견 중인 교환학생 친구들 둘과 함께 다니다가 남은 2.5일은 피렌체에 남아 혼자 여행하기로 대략적인 계획을 세웠다. 대담하다면 대담하고, 막연하다면 막연한 계획이었다. ‘내가 혼자 할 수 있을까? 이번 여행에서는 과연 즐거움이 더 클까?’ 하는 물음이 여행 당일 오전까지 머릿속에 맴돌았다.


그동안은 여행을 다녀왔다고 해서 내 세계가 넓어졌다거나 한층 성장했다거나 하는 느낌이 없었다. 원래 성장은 나도 모르는 사이 이루어진다지만, 이 나라 저 나라를 돌아다닌다는 이유만으로 쌓이는 내공 같은 게 과연 존재하는지가 궁금했다. 물론 좋은 날씨를 만끽하며 예쁜 풍경을 보고 각 나라의 맛있는 음식을 먹는 건 좋았지만, ‘다들 왜 그렇게까지 젊을 때 여행을 해보라는 거지? 정말 이것만을 위해서?’ 하는 의문이 가시지를 않았다. 그런데 이번 여행은 정말 뭔가 달랐다. 이탈리아 혼자 여행 전과 후는 절대 같을 수 없을 것이라는 직감이 왔다.


일단 눈에 띄는 변화들이 있다. 더 이상 공항이나 기차역에서 탑승 수속 밟는 과정을 두려워하지 않게 됐다. 이제 체크인 후 보딩패스를 받고, 게이트나 플랫폼을 확인해 제 시간에 비행기나 기차에 탑승하는 일련의 절차에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더불어 플랫폼을 헷갈려 기차를 놓친 경험을 한 이후에는 조금이라도 이상한 게 있으면 모르는 사람을 붙잡고 물어보는 일을 망설이지 않게 되었다. 또한 무조건 돈을 아끼는 것보다 (비록 당장은 낭비처럼 느껴질지 몰라도) 여행지에서의 적절한 지출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깨달았다. 돈이야 뭐 또 벌면 되지만 그 나라, 그 도시로의 여행은 또 언제 오게 될지 모르니까.


영국에서의 개강 이후, 함께 파견 온 한국인 친구의 방에서 앞으로의 여행에 대한 기대와 걱정을 늘어놓은 적이 있다. 그때 친구가 꼭 한 번은 혼자서 여행해보라고 강력히 권했었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여행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함이 정말 컸을 때라, 둘이 해도 힘든 여행을 대체 어떻게 혼자 감내해낼지(한 달 전만 해도 나에게 여행은 견뎌야 할 대상이었다) 상상만으로 피로해지곤 했다. 그러나 혼자 하는 여행을 생각보다 빨리 떠나게 됐고, 결국엔 여행을 너무나도 성공적으로 마친 뒤 안도하며 주절주절 감상을 적어두는 순간이 찾아왔다.


혼자 비행기를 타는 것도, 혼자 기차를 타려다 몇 분 차이로 열차를 놓쳐 교통비를 이중으로 지불하는 것도, 한인 민박에서 모르는 사람들과 한 방을 쓰며 알게 모르게 서로 의지하는 것도, 버스 소매치기가 무서워 5일 치 짐이 든 배낭을 메고 2시간을 내리 걷는 것도 막상 해보니 별거 아니더라. 해보지 않아서 두려운 것들은 계속해서 참고 해 나감으로써 그 가치를 확인할 수 있다. 정신적인 성숙은 가만히 앉아서 사색이나 독서를 함으로써도 이룰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 인생은 실전이니까!


이번 여행을 통해 인생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지혜와 베짱을 기른 것 같다. 여행이 무섭게만 느껴진다면, 역설적으로 혼자 여행을 떠나보시길. 낯선 곳은 당연히 무섭고, 해보지 않은 것은 당연히 두려울 수밖에 없다. 그러니 계속해 봐야 한다. 싫은(줄 알았던) 걸 꾹 참고 계속하다 보니 그동안 ‘낯섦’을 ‘불호’로 착각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혼자 비행하기, 혼자 민박에서 며칠 밤 묵기, 혼자 해외 돌아다니기. 시작은 두려움이었지만 결국엔 해낸 것들이 잔뜩 늘었다. 여행이 싫은 당신께, 혼자 하는 해외여행을 강력히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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