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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은채 Apr 18. 2023

별 볼 일 없는 인생도 드라마처럼 사는 법 공유합니다

휴학을 하고 3월과 4월 두 달간 드라마를 다섯 편이나 정주행했다. 또 오해영을 시작으로, 쌈 마이웨이, 이번 생은 처음이라, 멜로가 체질, 연애의 발견까지. 원래도 드라마 보는 걸 좋아하긴 했지만, 짧은 시간 동안 다양한 인물들의 인생을 훔쳐보며 깨달은 것이 있다. 바로 내 인생을 드라마처럼 사는 법! 드라마에서 그려지는 것만큼 파란만장한 삶을 사는 법이 아니라, 사소한 일상도 매체 속 주인공이 된 것마냥 크게 느끼며 사는 법을 알게 되었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것은 인생을 사는 데 있어 아주 중요한 태도를 일깨워줬다.


드라마 속 화려하고 재미난 인생을 사는 주인공들을 마냥 동경하고 부러워했던 때가 있었고, 내 인생이 드라마 못지않게 버라이어티하다고 느끼던 때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 드는 생각은, 인생에서 일어나는 사건들과는 별개로, 모두의 인생이 결국 각자의 드라마가 아닌가 하는 것이다. 여러 드라마를 몰아 보다 보니, 매체 속 주인공들의 공통점이 보였다. 드라마 주인공이 되는 일은 생각보다 간단하더라. 일상에서 쉽게 마주할 수 있는 순간들, 예컨대 잔뜩 지친 모습으로 출퇴근을 하거나, 마음 맞는 친구들과 수다를 떨거나, 사랑을 맞닥뜨리고는 혼란스러워하는 보통의 순간들을 마치 다시는 오지 않을 순간인 양 특별하게 받아들이면 된다. 힘든 하루를 마치고 터덜터덜 늘어지는 발걸음으로 귀가하는 내 모습에 적절한 배경음악을 깔고, 서늘한 밤공기를 한껏 들이마시면 그 순간 내 일상은 드라마가 된다.


얼마 전 아이유의 팔레트에 유인나가 초대되어 이야기를 나누다, 아이유의 조각집 앨범에 실린 <드라마>라는 노래의 주인공이 유인나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사실을 소개하며 작곡 배경을 설명하던 아이유의 말에 따르면, 실연을 하고 슬픈 톤으로 사랑을 비관하던 유인나의 모습도 자신의 눈에는 여전히 예뻐 보이더라는 것이다. 인생은 원래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지만 가까이에서 지켜볼 수밖에 없는 내 인생을 희곡처럼 보려는 의지만 있다면 어떻게든 긍정적인 태도를 유지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 인생을 꼭 제삼자만이 바라보라는 법은 없으니. 남들이 내 인생을 드라마 보듯 관전하는 것처럼, 나도 내 인생을 그렇게 바라보려 한다.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빨리 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건, 인생에 꽂히는 갈피의 수가 점차 줄어들기 때문이라고 한다. 모든 게 새롭고 신기하던 어린 시절에는 손에 쥐어지는 솜사탕 하나에도 한껏 기뻐할 만큼 ‘특별한 순간’으로 인식하는 어떠한 지점이 많았겠지만, 나이를 먹어가고 예측 가능한 하루들이 비슷하게 반복되다 보면 그에 따라 무료해진 인생은 멈춰 서서 돌아보는 순간 없이 빠르게 흘러간다는 것이다. 나도 최근 들어 시간이 무서울 정도로 빠르게 흐른다는 사실을 실감했기에, 사소할지라도 기억에 남을 만한 지점들을 의식적으로 늘려가려는 노력을 들이고 있다.


다소 유치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내 인생을 하나의 드라마라 생각하고 매 순간을 특별하게 살아내려는 것 또한 그 노력의 일종일지 모르겠다. 아무리 지친 하루를 보내고 흔들리는 버스에 몸을 기대고 있어도, 좋아하는 노래를 한 곡 재생하고는 그러한 장면 또한 드라마의 일부라 생각하면 지금 이 순간을 이겨낸 주인공이 맞이하게 될 찬란한 결말을 기대하게 된다. 아직까지 내가 본 드라마들은 해피엔딩인 경우가 압도적이었기에, 내 인생 또한 그렇게 마무리될 것이라는 막연한 희망이 드는 건 ‘드라마처럼 사는 법’이 가진 순기능 중 하나다. 그렇지 않을 수도 있지만, 결말을 써낼 수 있는 권한은 오직 나에게만 있으므로.


남들 눈에 비친 내 인생이 어떻든 간에, 내가 내 인생을 특별하고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으면 이 드라마는 누구의 박수도 받지 못한 채 소리소문없이 종영하고 말 것이다. 반대로 아무리 시청률이 잘 나와 흥행에 성공한다 해도 제작자나 배우 스스로가 만족하지 못한다면 그보다 슬픈 일이 어디 있겠는가? 내가 살아갈 이 드라마의 최대 장점은, 어떠한 줄거리를 가지고 어떤 배경음악과 함께 어떤 연기를 펼칠 것인지를 멋대로 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에 대한 유의미한 평가는 오로지 나만이 내릴 수 있으며 시청률 따위의 다른 지표는 어떠한 영향도 미칠 수 없다는 점까지.


내가 감독이자 작가, 그리고 배우인 단 한 편의 드라마를 성황리에 종영할 것인가 편성조차 포기한 채 쓰다 만 시나리오를 쓰레기통에 처박을 것인가. 나는 이 드라마에 가능한 많은 웃음과 눈물을 담아낼 생각이다. 그리고 결말은 무조건 꽉 막힌 해피엔딩이 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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