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의 인생을 대변하는 노래은 무엇인가요?
내 인생에 주제곡을 있다면, 그 노래는 분명 선우정아의 ‘구애’일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던 때가 있었다. 그럴 필요가 없었는데도, 꽤 오랜 시간 동안 세상을 짝사랑한다고 생각해왔다. 누군가를 곁에 두려면 늘 내가 먼저 손을 내밀고, 더 많은 마음을 쏟아야 한다는 사실을 실감하는 일은 언제나 씁쓸했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내가 원해서 준 마음들인데도 불구하고, 그 대상이 친구든 연인이든 간에 평생을 이렇게 구애하며 살아갈 팔자라는 것이 서글프게 느껴지곤 했다. 그런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서도 그런 스스로가 싫지는 않았는지, 언젠가 상처가 될 것임을 직감적으로 알고 있던 관계들에 있어서도 망설임 없이 진심을 꺼내 보이고는, 그만큼의 마음을 돌려받지 못하게 될까 전전긍긍했다.
다음은 2021년 8월에 작성했던 글들: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런 불만과 섭섭함을 품었던 것은 그저 불안했기 때문인 것 같다. 당장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넘치게 풍족한 인간관계를 이루고 있는 것 같아 보여도, 내가 손을 놓으면 영영 멀어질 인연들이 대부분일 거라는 막연한 불안함이 있었기 때문에. 근거 없는 두려움인데도 불구하고, ‘돌려받지 못할 사랑을 베푸는 나’에 취해 있지도 않은 불안함의 실체를 구체화했다. 그럴수록 더 많은 사람들에게, 더 간절히 구애했다. 나는 네가 좋으니 나와 친구가 되어달라고. 그리고 내가 쏟는 만큼의 정성을 내게 보여달라고. 그래놓고는 원하는 정도의 애정이 돌아오지 않을 때면 나는 역시나 세상을 짝사랑할 운명이라며 징징댔다.
내 성격이 많이 바뀌었으며 이제는 예전만큼 사람이 좋지 않다고 하면 많이들 코웃음치지만, 그럼에도 나는 스스로의 변화를 분명하게 인지하고 있다. 사람을 좋아하지 않게 되었다기보다는 ‘상처입을 것을 감수하고도 대가 없이 사랑을 베푸는 나’의 프레임으로부터 자유로워졌다고 해야 하나. 그 프레임은 대체 누가 만들었냐 하면,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만들었다. 그때의 심리를 아주 솔직하게 들여다 보자. 과거의 나는 단순히 많은 친구를 갖고 싶었던 게 아니라, 스스로가 모두와 친구가 될 수 있을 정도로 다수에게 호감을 사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증명해내고 싶었던 것 같다. 그래서 그 많은 사람들이 나를 좋아하게끔 최선을 다하고는(가식을 떨었다는 말이 아니다) 원했던 만큼의 반응 ―지속적인 만남이나 깊어진 우정 등― 이 보이지 않으면 상처를 사서 받곤 했던 것이다.
그랬던 내가 인간관계를 넓히는 일에 더 이상 미련을 갖지 않게 된 것은, 필요 이상으로 애쓰지 않아도 일정 수준 이상으로 유지되는 관계가 생각보다 많고, 각각의 인연이 꽤나 공고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이후부터인 것 같다. 거의 매일 새로운 사람을 만나며 그들 모두의 호감을 사려고 노력하는 일은 필연적으로 많은 에너지를 요구한다. 그렇게 몇 년을 살다 보면 지칠 수밖에 없지. 그러한 삶에 회의감을 느끼던 차에 교환학생을 가게 됐다. 의도했든 아니든 간에 교환 전후로 지속적인 교류가 이루어질 관계와 그러지 못할 소모적인 관계의 구분이 명확해졌다. 세상을 향한 짝사랑이라는 자조적인 표현 뒤에 가려졌던 상호 호혜적이고 안정적인 관계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몇 개월이 지난 지금 내 곁에 남은 사람들이 누구인지 일일이 나열하지는 않겠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관계들이 원래의 자리를 지키거나 오히려 더 단단해져 있었다. 상황 때문에 인간관계 관리(연락 빈도나 만남 횟수 등)에 조금 소홀해질지라도 내가 쌓아온 인연들이 수포로 돌아가지 않더라는 사실을 알아차리는 경험은 나를 크게 변화시켰다. 무엇보다도, 불필요한 관계들에 쏟던 에너지를 스스로에게 쓰기 시작하니 삶의 피로도가 확 낮아졌다. 조금만 내려놓으면 이렇게나 편하고 생산적인 삶을 살 수 있는데 그걸 못해 여태 고통받았다니. 물론 사람들의 호감을 사려고 노력했던 시기가 있었기에 그때 나를 알아봐 준 몇몇 사람들과 아직까지도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해 과거의 선택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다만, 앞으로는 전과 같은 태도를 고수하느라 정작 신경써야 할 것들을 제대로 돌보지 못하는 실수를 범하지 않을 것이라 다짐할 뿐.
그리하여 인생의 주제곡을 새롭게 설정하고자 한다. 예전에는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일이 인생의 어떠한 일보다도 크게 느껴져 ‘구애’를 주제곡으로 꼽았다면, 이제는 타인의 마음에 지나치게 기대지 않고 혼자 씩씩하게 살아가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그런 의미에서 어차피 인생은 혼자 살아가는 것이며, 지금까지 잘 해왔고 앞으로도 잘 해낼 것이니 두려워할 것 없다고 말해주는 노래, ‘You’re On Your Own, Kid’를 인생의 이정표 삼기로 했다. 작년 가을 영국에서 이 노래를 처음 들었을 때부터 ‘구애’의 시대는 지나갔음이 느껴졌는데, 그로부터 두어 개의 계절이 지난 뒤 그 사실이 확실해져 이곳에 적는다. 사랑에 목매던 청소년기부터 커리어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불사했던 20대를 지나 인생의 불문율을 깨달은 30대가 되어 지난 날의 자신에게 전하는 위로와 같은 이 노래를 적절한 시기에 만나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아직 스물다섯밖에 안 됐으니 앞으로 인생의 주제곡이 몇 번 더 바뀔지도 모른다. 또한 예전보다 집착을 덜 하게 되었을 뿐, 사람들의 애정과 응원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라는 점은 여전하다. 그래도 ‘구애’를 들을 때마다 공감의 눈물을 흘리던 과거의 한 시절은 분명 지나갔음을 기념하며. 직접 작성한 가사 해석본 발췌를 끝으로 글을 맺는다.
'Cause there were pages turned with the bridges burned
몇몇 관계가 틀어져도 인생은 계속되고
Everything you lose is a step you take
네가 잃은 것들은 미래를 위한 자양분이 되잖니
So make the friendship bracelets,
그러니 친구들과 우정팔찌를 나눠끼고선
Take the moment and taste it
지금 이 순간을 충분히 즐기렴
You've got no reason to be afraid
두려워할 이유가 전혀 없단다
You're on your own, kid
인생은 결국 혼자 살아가는 거야
Yeah, you can face this
그래, 너는 뭐든 이겨낼 수 있어
You're on your own, kid
혼자서도 잘 해낼 거야
You always have been
언제나 그래왔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