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에세이

스물다섯 취준생, 회사가 아닌 영화제로 향하다

부산국제영화제는 핑계고: 조금 더 마음 가는 대로 살아보겠습니다

by 천은채

스물다섯, 한국 사회가 요구하는 ‘정상적인’ 속도 대로라면 졸업을 하고 취업을 준비해야 할 시기에, 아무 대책 없이 부산행 ktx를 예매했다. 언젠가 꼭 참여해 보고 싶었던 부산국제영화제에 자원봉사자로서 일조하기 위해서였다. 서울에 거주 중이니 2주간의 숙박비를 지출해야 하는 것은 물론, 한 끼를 간신히 사 먹을까 말까 한 식대만을 제공받으며 무급으로 일하기로 한 것이다. 사실 영화제는 핑계고, 합법적으로 취업을 미룰 핑계가 필요했다. 나 아직 스물다섯밖에 안 됐는데. 그냥 이렇게 취업하고 평생을 회사원으로 살기엔 내가 너무 어린데? 그런 마음들이 나로 하여금 망설임 없이 지원서를 접수하고 기차표를 끊어 부산으로 향하게 했다. 그곳에서 얼마나 많은 깨달음과 소중한 인연들을 얻게 될지는 아직 모른 채.


교환학생 여정의 마지막 여행지였던 부다페스트에서도 졸업여행으로 갔던 베트남에서도, 집에 돌아갈 생각만 하면 앞으로 닥칠 일들에 대한 부담 때문에 한없이 울적해지곤 했다. 그래서 영화제가 끝나가는 것을 하루하루 실감하며 이 여정이 끝나지 않기를, 서울로 돌아가기까지 남은 시간이 조금만 더 천천히 가기를 바랐었다. 그런데 서울역 에스컬레이터에 올라서서 부산에서부터 타고 온 기차를 내려다보는데, 신기하게도 그런 마음이 들지 않더라. 오히려 서울에서 펼쳐질 날들을 씩씩하게 살아낼 원동력을 얻은 기분이었달까. 아무래도 그동안의 걱정과 불안을 전부 파도에 실어 보낸 덕분인가 보다. 오로지 후련하기만 한 마음으로 집에 돌아오자마자 일기를 쓴다.


2주 동안의 부산 생활은 일종의 워킹 홀리데이 같았다. 타지로 일하러 떠나긴 하는데, 일반 직장을 다니는 것만큼은 돈을 벌지 못하는 대신 잊지 못할 추억과 소중한 인연들을 얻어오는 국내 워홀. 물론 워홀을 가본 적은 없기에 터무니없는 비유로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워홀을 가보고 싶다고 생각했던 내게는 그 축소판으로서의 역할을 다했다는 생각이다. 교통비와 식대 일부를 지원받았으니 많은 금액은 아니더라도 나름대로는 돈을 벌었고, 열흘간 동고동락하며 그 어디에서도 만나지 못했을 비슷한 관심사와 다정한 성격의 친구들을 만났기 때문에. 지원서의 첫 문장을 작성하던 순간부터 이 선택을 후회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었지만, 기대했던 목적 그 이상을 달성한 시간이었다. 모든 일정이 마무리된 지금, 당연하게도 후회는 조금도 남지 않는다.


집에 돌아오니 책상 위에 친구들이 보내놓은 생일 택배들이 쌓여 있었다. 마침 영화제 개막 하루 전날인 10월 1일이 내 생일이었기 때문이다. 일단은 땀과 피로를 씻고 나와 선물을 하나씩 열어보며 그들과의 인연을 곱씹는 시간을 가졌다. 나는 오랜 시간 동안 ‘원하는 삶을 사는 것’만큼이나 남들에게 ‘멋진 삶을 사는 사람으로 인식되는 것’이 중요한 사람이었다. 여기서 말하는 ‘멋진 삶’이란 객관적인 성공의 지표로 통용되는 것들, 예컨대 성적이나 학벌, 취미, (미래까지 생각한다면) 직함이나 연봉 등이 대부분이었다. 아닌 척하지만 결국 사회가 정해둔 이상적인 삶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스물다섯 생일을 맞아 친구들이 써준 편지를 읽는데, 나 자신뿐 아니라 나를 잘 알고 아끼는 사람들이라면 내가 정형화된 삶이 아니라 진정으로 원하는 삶을 살기를 바랄 테고, 그렇게 살아가는 내 인생을 멋지게 봐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자원봉사자로서 일했던 p!tt 그라운드 뱃지샵

영화제 기간 동안 대학교 1, 2학년밖에 되지 않은 어린 친구들을 많이 만났다. 그들에게 영화제 자원봉사에 지원한 이유를 물으니 대다수가 영화에 대한 관심보다는 대외활동을 해보고 싶은 마음 때문이라고 대답하더라. 그 말을 들으며 ‘나도 저학년 때부터 이런저런 대외활동 많이 해볼걸’ 하고 아쉬워하다가, 내 경우에 있어서는 이번 자원봉사를 별생각 없던 20대 초반이 아닌 지금 하게 된 게 다행인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사실 정신승리일지도 모르겠만, 원래 인생은 억까와 정신승리의 연속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열심히 의미를 부여해 보려 한다. 부산 땅을 밟기 전까지만 해도 하루빨리 안정적인 직장에 취업하는 것과 하고 싶은 것들에 도전해보는 것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했었고, 제대로 된 직업을 갖게 되기 전까지는 이 고민이 해결되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지금의 상태가 며칠이나 지속될지는 모르겠지만 현재의 나는 이 문제에서 조금 자유로워진 기분이다.​


해야 하는 것과 하고 싶은 것 중 무엇이 더 중요한지는 명확히 정의할 수 없지만, 한 가지 분명한 건 내가 스스로를 아주 많이 사랑하는 사람이며 그런 자신에 대한 확신과 믿음이 있다는 점이다. 다양한 사람과 상황들로 가득한 사회가 내게 어떤 것을 요구하든 간에, 잘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이 분명한 나는 무엇이든 잘 헤쳐 나갈 수 있을 것이라는 근거를 적립해 나갔던 보름이었다. 부산에 있는 동안 이뤄낸 것이라곤 떠나기 전 쳤던 오픽의 AL 성적표를 받은 것이 유일하지만, 그보다 훨씬 중요하고 강력한 것들을 잔뜩 얻어왔으니 아무렴 상관없다. 부국제 이후로는 또 어떤 행보를 보일지 나도 나의 선택이 궁금하다. 아직 정해진 것은 없다. 다만 스스로가 기꺼이 사랑할 수 있을 만한 인생을 꾸려갈 것이다. 그리고 나는 반드시 해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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