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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혜주 May 04. 2021

무엇이 버스기사의 마음을 움직였을까?

“죄송합니다”

버스의 내리는 문이 닫히고 막 출발할 때, 벨이 울렸다. 어르신 한 분이 내려야 하는데 못 내렸으니 다시 문을 열어 달라고 한다. 정거장을 착각하거나 다른 생각을 하다 미처 내리지 못한 것 같았다. 버스가 멈칫한다. 

나는 마음이 불안했다. 안 내려주면 어떡하지, 싸움이 날 텐데, 최소 욕설이 버스 안을 가득 채울 텐데, 기분 상한 기사는 분명 난폭 운전을 할 텐데. 아니나 다를까 기사가 볼멘소리를 한다. “미리미리 벨을 눌렀어야죠” 그래도 문은 열렸다. 그 어르신도 정중하게 미안하다고 하며 내렸다. 


“저도 힘들어요. 아침 출근 시간이라 차도 막히고, 다시 2차선에 끼어드는 것 힘들어요. 미리미리 부탁드려요” 이미 어르신은 내렸는데, 들을 사람은 정작 없는데 기사는 앞으로 조심해 달라는 의미인지 한마디 한다. 그래도 다행이다. 아침부터 강아지와 숫자가 난무하는 소리를 듣지 않아도 되었으니. 그러나 운전이 거칠어졌다. 노란불도 무시한다. 아, 시내버스라 안전벨트도 없는데, 짐짝처럼 평택역까지 가겠구나. 


다음 정거장에서 중학생들이 우르르 탄다. 버스기사의 마음이 지금 꽤 불편한 건 전혀 모를 것이다. ‘얘들아, 빨리 타렴, 아저씨 기분 별로야. 너희들이 다 타기도 전에 문이 닫힐까 봐 아줌마 마음이 불안해’. 불안함이 전해졌는지, 염려하지 말라는 뜻인지 마지막에 타는 한 친구가 기사에게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한다. 어머나, 이쁜 녀석. 나는 맨 앞자리에 앉았기에 기사의 표정을 다 볼 수 있었다. 마스크 때문에 다 보이지 않아도, 눈썹이 분명 올라갔다. 요즘 세상에 버스기사에게 공손하게 인사하는 중학생이라니. 우리 아들도 저리 키워야겠다고 다짐했다. 


두 정거장 지났을 때 한 아주머니가 탔다. “안녕하세요” 기사에게 인사한다. 물론 기사는 아직 마음이 다 풀리

지 않았기에 화답은 없다. 그러나 이번에도 눈썹은 올라가 있다. 오늘, 다들 기사 빼고는 즐거운 아침이라 마음의 여유가 있는 것인지, 아니면 버스 안의 어색한 기운을 내가 다 몰아가겠어 다짐들을 한 것인지 안녕하냐는 인사가 그렇게 다정할 수 없다. 드디어 버스는 정지선을 지키고, 노란불도 지키기 시작했다. 


그 후로 세 정거장을 더 갔다. 승객이 모두 타고 문이 닫히려는 순간, 저기 30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서 이 버스를 놓치면 안 될 것 같은 청년이 뛰어온다. '아, 제발, 빨리요. 다리에 모터를 달아요. 어서, 어서'. 기사도 분명 그 청년을 보았다. 기분이 아직 완전히 풀리지 않은 것 같으니 그냥 출발할 것 같다. 그렇다고 해도 할 말이 없다. 바쁜 출근시간이니까. 그런데 문을 열고 기다린다. 허겁지겁 버스를 탄 청년이 “안녕하세요” 인사를 한다. 대박. 오늘 승객들 진짜 약속했나 보다. 


기사의 얼굴에 이제 여유가 보인다. 잠시 정차할 때, 핸드폰에서 멋진 팝송이 계속 나오도록 누른다. 아, 라디오헤드의 ‘creep’ 이라니. 내가 좋아하는 노래이다. 이 노래 외에도 제목과 가수는 모르지만 들으면, ‘아 이 팝송 너무 좋지’ 하는 노래들이 연달아 나온다. 기사는 이렇게 여유와 낭만이 있었던 사람이다. 평택대학교 정거장에서 한 승객이 결정타를 날린다. “안녕하세요” 


이제 나는 이 버스의 종착지인 평택역까지 마음 편하게 갈 수 있겠다. 왜 시내버스에는 안전벨트가 없냐고 불평하지 않아도 된다. 급정거를 하면 맨 앞에 앉은 내가 기사의 옆으로 튀어갈까 조마조마하지 않아도 된다. 급출발에 머리가 뒤로 휘어질 걱정도 필요 없다. 불안을 잠재워준 기사에게 나도 마음을 전해야겠다. 내리면서 큰 소리로 말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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