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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멀스멀 Jul 17. 2018

내 생애 세 번째 덕질 '만화'

덕후는 덕질의 대상이 달라질 뿐

 네 살 터울의 누나가 만화도, 음악도 먼저 즐겼고 나는 답습하며 따라간 취미가 많았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누나도 취미를 얕게 즐기지 않았으니 나에겐 좋은 덕질 선배였다. 국민학교 3학년 때 일산으로 이사하고 보니 집 앞 단지 상가에 비디오테이프와 만화, 소설, 잡지 등을 대여해주는 책방이 있었다. 내 동창과 누나의 동창 자매를 자녀로 둔 아주머니께서 하셨다. 초창기부터 드나들기 시작해 끊임없이 만화책을 섭렵하다 보니 더 이상 볼 만화가 없을 정도로 다녔다. 몇 년 후부터는 알바도 아닌데 주인아주머니가 비우는 날은 나가서 가게를 봐주고 책을 공짜로 보는 일이 많아져서 가족 휴가를 떠나면 내가 아침저녁으로 문을 열고 닫은 적도 있다.

쿵후보이 친미 개정판 표지. 리디북스 캡처

 90년대 초중반만 해도 해적판이라 불리는 만화책들이 진짜 해적같이 판치던 시대였다. 문방구 한편에는 손바닥만 한 만화책을 몇백 원에 팔고 있었고 책방에서도 정체불명의 불법복제 만화가 버젓이 대여되곤 했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 김연수 씨의 수필 <청춘의 문장들>을 보면 1990년 스물 하나였던 작가가 새벽 만화방 한편에서 <도라에몽> 윤문을 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일본 대중문화 개방이 1998년부터 2004년까지 6년에 걸쳐 이루어졌으니 그 이전엔 불법 저작물이 더 많을 수밖에 없었으리라. 까지 적고 보니 요즘 20대 초반의 친구들은 일본 대중문화 개방이라는 말 자체를 알지도 이해하지도 못할 듯싶다.


 기억 속 가장 먼저 빠져든 시리즈는 <쿵후보이 친미>다. 원제는 <철권친미>에 우리나라에는 <권법소년 용소야> 따위의 해적판으로 먼저 소개되었다. 작품에 심취한 나는 보통 아이들이 그러하듯 허무맹랑한 기술들의 모션을 따라 하곤 했다. 그때 생각할 때도 통배권 같은 온갖 기술들이 아무리 그럴싸하게 설명돼 있어도 말이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좋아하고 따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작품이 너무 재밌어서 나이가 들어가면서도 계속 다시 보고 다시보다 후에 이 책방이 문을 닫을 때 전권을 다 사 왔다. 국민학교 3학년 즈음 보던 만화책을 20대가 되어 직접 매입했으니 굉장히 소소하게 성공한 덕후 아닌가. 

신세기 에반게리온 포스터. 위키피디아 캡처

  친미 이후에 만화 덕질의 큰 부분을 차지한 건 <신세기 에반게리온>이다. 일본 애니메이션 최고의 걸작 중 하나로 꼽히는 작품이 아닐까. 특이하게 TV판 애니메이션 26화가 먼저 나오고 만화책으로 나왔다. 지금은 의절한 사촌 형이 명절에 불법 복제한 CD를 넘겨줘서 접하고 충격에 빠졌다. 대학에서 철학이나 종교를 다루는 교양과목에 아직까지 단골 소재로 나오는 작품일 만큼 심오하다. 구약성서에서 많이 가져온 설정부터 세계관도 남달라 어린이가 단박에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엄청난 매력을 갖고 있는 <신세기 에반게리온>에 빠졌을 때 본격적으로 덕질에 의한 소비가 시작되었다. 이 시절에는 팬시점이라는 게 유행했다. 동네 구석구석에 있었지만 조금 규모가 있는 서점 한편에도 자리 잡곤 했다. 유행하던 다이어리나 관련 액세서리, 문구류, 인형, 인테리어 소품, 지포 라이터 등 다양한 물건을 취급해 생일선물 사러 많이 가던 곳이다. 팬시점들의 캐시카우는 단연 덕질 용품이었다. 3x5 사이즈나 4x6 사이즈로 인화된 만화와 애니메이션 캐릭터, 포스터 상품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더불어 H.O.T. 같은 아이돌 사진이나 관련 굿즈도 많이 팔았다. 심지어 DNA 목걸이라는 그때 생각해도 괴상했고 지금 생각하면 괴랄한 아이템도 있었는데 엄청난 히트를 쳤다고 한다. 역시 코 묻은 돈 벌어들이는 게 참 쉽고 좋은 것이 또래에 비해 경제관념이 꽤 투철했던 나도 몇 없는 코 묻은 돈을 팬시점에 갖다 받쳤다. 저작권자들은 누구도 득을 보지 못했을 수많은 사진과 포스터, 스티커 등을 사모으며 본격적인 만화, 애니메이션 덕후로 성장했다.

뉴타입 창간호이 1999년 7월호와 이어지는 8, 9, 10월호 표지. 대원씨아이 홈페이지 캡처

 만화책과 애니메이션 모두를 씹어먹을 듯이 흡수하던 세기말 1999년 7월 월간 뉴타입 한국판이 창간한다. 이시절만 해도 잡지 시장은 꽤 호황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컴퓨터나 게임에 관련된 잡지를 사면 게임 타이틀을 제공한다던지 뉴타입은 브로마이드를 제공한다던지 파격적인 프로모션에 덕후들은 계속 지를 수밖에 없었다. 결국에는 그러한 경쟁들 때문에 잡지들이 줄줄이 폐간하곤 하였지만. 어쨌든 창간호부터 뉴타입을 사모으기 시작했다. 글을 쓰기 위해 검색해본 지금도 표지들이 하나같이 다 기억난다. 99년 10월호 표지의 <카우보이 비밥>은 너무 재밌게 봐서 몇 번을 봤는지도 모르겠다. 용산 선인상가 앞 골목에 가면 애니메이션과 영화 CD, DVD 등을 팔곤 했는데 거기서 구매해 수년간 봤다. 만약 비디오테이프였다면 늘어졌을 정도인데 아직도 OST 'Tank'를 어디선가 마주치면 기분이 좋다.


 나란 사람은 '이름'과 '얼굴' 두 가지를 병적으로 기억하지 못한다. 흔히 안면인식 장애라고 얘기하는 그런 수준이라 수많은 작품을 봤는데 이름이 거의 기억나지 않아 슬프다. 얼마나 많이 봤냐면 소년만화는 더 이상 볼 게 없어서 순정만화를 보기 시작했고 좋아하는 순정만화 작품도 많이 생겼을 정도였다. 애니메이션도 <아키라>, <인랑> 등의 매니악한 대작부터 지브리 스튜디오의 말랑말랑한 작품들이나 <그 남자, 그 여자> 같은 순정만화 장르까지 참 많이도 봤다. 만화책이 볼 게 없어 판타지 소설이나 무협지를 읽기 시작하며 덕질의 영역을 넓혀갔다.

만화 몬스터의 한 컷

 가장 좋아했던 작품은 우라사와 나오키의 <몬스터>다. <야와라>, <마스터 키튼>, <플루토>, <해피>, <20세기 소년> 등 그의 작품을 두루 좋아했으니 작가와 작화가 좋았다고 할 수도 있지만 그래도 최고를 꼽으라면 단연 <몬스터>다. 1권을 읽었을 때의 충격이 아직도 생생한데 영화나 TV시리즈로 만든다면 아무리 잘 만들어도 종이에 흑백으로 그려낸 원작만큼의 서스펜스를 잘 전달할 수 없으리라 생각했다. 용돈 아껴가며 한 권, 한 권 사모아서 참 아껴 봤던 기억이 있다. 출판사들은 꼭 이렇게 사 모으고 보면 또 개정판이니 하면서 크기도 좀 키우고 표지 디자인도 멋있게 해서 덕후를 울리곤 했다. 가장 재미있게 봤던 순정만화로는 영국 메이드와 귀족의 사랑... 같은 클리셰를 담았는데 스토리와 작화가 참 예뻤던 <엠마>, 어른들의 사랑을 그렸던 <사과와 벌꿀> 등이 기억에 남는다. 호주에 갈 때 딱 4권 골라서 갖고 갔던 만화책은 4컷 만화의 전설 <아즈망가 대왕>이었다.


 세월은 흘러 점점 종이책 출간은 줄어가고 책방들도 문을 닫기 시작했다. 대세는 웹툰으로 옮겨가 나도 웹툰을 보기 시작했다. 종이책을 보던 시간만큼 웹툰을 봤지만 종이책이 그리운 건 어쩔 수 없었다. 문 닫는 단골 책방, 동네 책방에서 중고로 참 많이도 샀다. 몇 백 권이 되는지도 모를 정도로 쟁여두고 많이 읽었는데 빌려줬다 돌아오지 않은 책들도 많고 아예 줘버린 책들도 많았다. 그러다 집에 안 좋은 일이 생겨 많은 짐을 처분할 때 남김없이 전부 다 처분했다. 아쉬웠지만 뭐 어쩔 수 있나. 그래도 <쿵후보이 친미> 포함 아끼는 일부는 골라서 친한 분의 작업실로 보내 아직도 책장에 꽂혀있다. 요새는 웹툰도 잘 보지 않는 사람이 되었으니 만화 덕후라고 하기 힘들지만 지금도 일본 거리에서 점프 스토어를 마주치든 구석구석에서 만화의 조각들을 발견하면 그렇게 반갑고 좋을 수가 없다. 덕후는 덕질의 대상이 달라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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