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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어떤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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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멀스멀 Aug 10. 2018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여행일까?

여행의 정의

 우리는 흔히 집이 있는 도시를 떠나 멀리 다녀오는 것을 여행이라고 한다. 이 '멀리'가 조금 애매한 부분이다. 예를 들어 서울 영등포구에 사는 사람 X가 있다고 하자. X가 강원도나 제주도 등지로 1박 이상 다녀오면 보통 X는 여행 간다고 말할 것이다. 1박을 하지 않는다고 해도 당일치기 여행이라고 할 만하다. 그런데 만약 경기도 고양시 꽃박람회에 다녀왔다면 이것은 여행이라고 얘기할까? 혹은 강동구에 사는 친구 집에 방문해 1박 했다면 이건 또 어떨까?


여행 (旅行)
[명사] 일이나 유람을 목적으로 다른 고장이나 외국에 가는 일.


 국어사전의 여행은 다른 고장이나 외국에 가는 일이다. X가 고장을 어디까지로 보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교통의 발달로 고장 간 서로 가까워진 요즘 꽃박람회 방문도 여행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국민학교 저학년의 나는 작고 낮은 아파트 단지와 그 앞이 자전거를 타고 누비던 세계의 전부였다. 초등학교 고학년생이 되었을 땐 철길 위로 놓인 다리를 건너 신도시 공원을 가로질러 호수공원까지 넓어졌다. 산 너머 시골길로 향한 적도 있고 아래 동네로 향한 적도 있었다. 매번 다른 날씨, 다른 풍경과 사건에 즐거웠다. 친구들과 함께한 적도 있고 홀로 나서면 또 그 나름의 매력이 있었다. 나이를 먹고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 친구들과 어울려 훅 땡땡이친 야자. 대학생 때 자체 공강을 선언하고 벤치에 앉아 사람 구경에 시시콜콜한 얘기를 안주 삼던 맥주 한 잔. 날 좋은 저녁 지인들과 한강변에 모여 바람 쐬던 날 들. 이런 것들도 모두 여행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집 나서면 여행이라고 생각하던 때가 있었다. 루틴 해 보이는 등하교나 출퇴근도 매일 같은 듯 다르니까. 오가는 길과 날씨도 매일 매 순간 다르다. 학교나 직장에서도 비슷해 보여도 매일 같을 수는 없으니까. 사전에서 말하는 '일이나 유람을 목적으로 다른 고장으로 가는 일' 그대로다. 서울 서대문구의 대학에 다닐 때 집은 고양시 북쪽에 있었다. 왕복 세 시간 정도는 걸리는 거리였다. 신당동에 있는 첫 직장에 다닐 때도 집은 같은 동네에 있어 역시나 왕복 세 시간 이상 걸리는 거리다. 퇴근시간에 버스라도 잘못 타는 날엔 집까지 2시간 반은 걸리곤 했다. 이게 어찌 여행이 아니겠나. 주로 유쾌하지 않은 때가 많은 여행이라서 서글플 뿐이다.

광역버스 앞문 계단에 겨우 몸을 끼워넣고 집으로 여행하는 서글픈 밤들


 좁게 본 여행이 멀리 다녀오는 것이라면 멀리서 보면 우리 인생 아닐까. 일이나 유람을 포함한 많은 것을 목적으로 우리는 살아가고 있지 않을까. 어렸을 땐 놀기 위해, 조금 크면 진학을 위해 혹은 구직을 위해. 그 틈틈이 유람을 위해. 모두가 각자의 이유와 목적으로 여행을 한다. 몇 년 전의 나와 연초의 나는 달랐을 것이다. 그리고 오늘의 나와 한 달 후의 내가 다를 것이다. 우리 삶이 긴 선과 선에서 확장된 면으로 되어있고 면이 모여 입체가 될 수 있도록 하루하루 점을 찍고 있으니까. 그러니 집 나서면 여행인 게 아니라 우리는 계속 여행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매 순간 어디서든.


이 나라에서 사는 일은 극지에서 적도 부근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극지로 되돌아가는 여행과 비슷했다.
김연수, <언젠가, 아마도>, 컬처그라퍼, 2018, 작가 소개 중에서
우리나라는 계절의 변화를 느끼기 아주 좋다. 요새는 두 계절만 있는 기분도 들지만서도.


 물론 그렇다고 일반적인 의미의 여행이란 말을 부정할 순 없겠지. 하루하루가 여행이고 삶이 여행인 건 일면 낭만이지만 항상 이런 뜻으로 말하면 소통에 문제가 생긴다. 내 여행 중 처음으로 해외여행을 다녀와 직장 여행 중인데 퇴근길엔 장보기 여행을 간 다처 럼 얘기할 순 없으니까. 삶이 여행이고 삶이 여행인 건 마음속에 항상 담아두되 말할 땐 일반적인 의미의 여행이란 말을-평범해서 조금 싫지만-써야겠다.


 불현듯 인사동 복판에서 마주친 여행가와 나눴던 대화가 생각난다. 그는 솥단지 같이 생긴 처음 보는 악기를 앞에 두고 손가락으로 튕기며 연주를 하고 있었다. 풍경 소리 같기도 한 맑게 울리는 소리가 매력 있었다. 가만히 앉아 한참을 듣다가 그가 쉬기에 잠시 말을 걸었다. 악기 이름을 물으니 스위스에서 만들어진 악기로 핸드팬 Handpan이라고 한다고. 그냥 두드려도 소리가 나지만 시끄러운 곳에선 작은 앰프를 쓰는 게 더 좋다고 했다. 몇 마디 나누다 한 곡 촬영을 해도 될지 물으니 흔쾌히 허락했다. 마지막 인사를 나눌 때 그가 한 말. 


"집에 앉아있어도 여행이라 마음먹으면 여행 중이지 않을까요."




여행하는 예술가 하주원 님의 핸드팬 연주 영상

https://youtu.be/9hHiYSB_qv4?t=10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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