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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원산책 Aug 18. 2022

다람쥐 문방구

“아저씨, 스케치북 하나 주세요.” “응, 잠깐만.” 사장님이 스케치북을 가지러 잠시 안쪽으로 들어가신 사이, 나는 문방구에 진열된 물건들을 황홀하게 바라본다. 높이 있는 선반에는 꽤 비싸게 보이는 조립식 장난감 상자들이 잔뜩 쌓여있다. 그 아래쪽에는 일이천 원 정도면 살 수 있는 자그마한 보드게임류도 보인다. 비닐 포장된 축구공이나 농구공, 훌라후프, 빨간 돼지 저금통들은 천장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입구문에는 뽑기 판이 걸려있다. 그 옆으로는 뽑기 1등 상으로 줄 물고기 모양의 커다란 엿이 매달려 있다. 사장님이 스케치북을 꺼내 오는 그 잠깐 동안에도 나는 신기하고 재미있어 보이는 각종 물건들이 가득한 그 공간을 설레며 구경한다.


우리 집은 내가 나온 초등학교에서 1-2분 거리에 있었다. 다람쥐 문방구는 초등학교 앞에 있는 세 곳의 문방구들 중 하나였다. 그중 딱따구리 문방구와는 바로 붙어있어서 서로 경쟁 했는데, 나는 다람쥐 문방구 단골이었다. 딱따구리 문방구 사장님은 과묵하시고 웃음기가 별로 없어서인지 어린 내게는 조금 무섭게 느껴졌었다. 반면 다람쥐 문방구 사장님은 ‘다람쥐’라는 상호에 걸맞게 자그마한 체구였고 늘 얼굴에 웃음을 머금고 계셨다. 아이들에게 늘 친절하셨다. 충청도 사투리가 섞인 말투도 뭔가 푸근했다. 나는 다람쥐 문방구 아저씨가 좋았다. 


여름이 되면 다람쥐 문방구에서는 콘 아이스크림을 팔았다. 문방구 앞에 큰 아이스크림 통이 등장했다. 바닐라, 딸기, 초코, 이렇게 세 가지 맛의 아이스크림을 200원에 한 스쿱, 300원이면 두 스쿱을 퍼서 콘 위에 올려주셨다. 뜨거운 날씨에 맛보는 아이스크림콘이 그리도 꿀맛이어서, 다람쥐 문방구 앞에는 마치 방앗간에 모여든 참새들처럼 동전을 손에 꼭 쥔 아이들로 넘쳐나곤 했다. 나도 그 사이에 끼어서 아이스크림콘을 먹으며 여름을 보냈다. 여름이 지나고 가을바람이 불면 쥐포와 쫀디기, 떡꼬치가 등장했다. 사장님이 구워주시는 쥐포와 쫀디기가 입안에서 사르르 녹았다. 떡꼬치는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돌았다. 다람쥐 문방구는 늘 아이들로 북적였다. 


여섯 살 때부터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내가 다람쥐 문방구를 들락거린 횟수를 합치면 아마 수백 번은 족히 넘을 것이다. 설날이나 추석에 용돈을 받으면 곧바로 생각나는 곳도 바로 다람쥐 문방구였다. 물건을 사고 판다는 경제관념을 깨치게 된 것도 다람쥐 문방구를 들락거리면서부터였을 것이다. 그러던 내가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다람쥐 문방구에 가는 것이 왠지 모르게 부끄럽게 느껴졌다. 초등학생들이 가는 문방구보다는 여중, 여고 앞에 있는 팬시점을 주로 찾게 되었다. 십 대 소녀 감성의 예쁜 일러스트가 그려진 학용품을 고르며, 내가 컸다고 느꼈던 것 같다. 그러면서 다람쥐 문방구에는 자연히 발 길이 뜸해졌다.

   

한참 시간이 흐른 후 직장인으로 살던 어느 날, 난 급하게 필요한 필기구가 있어 다람쥐 문방구를 찾았다. ‘드르륵’하고 투명 미닫이문을 열었다. 내부는 변한 게 별로 없었는데, 사장님이 많이 나이 들어 계셨다. 계산을 하고 인사를 하는데, 사장님께서 “감사합니다.” 하고 내게 존댓말을 쓰셨다. 아주 생경한 기분이었다. 다람쥐 문방구에서만큼은 내가 그 어린 시절로 돌아가는 느낌이어서랄까, 문방구 사장님께 어른 대우를 받는 것이 낯설고 왠지 아쉽기도 했다. 나는 가끔 그 후로도 사장님을 길에서 만나면 웃으며 목례를 드렸다. 그러면 사장님도 특유의 장난기 어린 미소로 받아 주셨다.


그러던 다람쥐 문방구가 2015년에 폐업을 했다. 다른 문방구들은 그 이전에 먼저 없어졌던 것으로 기억한다. 내가 삼십 대 중반이 되던 즈음이었다. 회사에서 야근을 밥 먹듯이 하던 시절이라 다람쥐 문방구가 없어진 것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마음이 허했다. 내 어린 시절의 소중한 한 부분이 떨어져 나가는 느낌이었다. 문방구가 있던 자리에는 빌라가 들어섰다. 초등학교는 그대로지만, 삼십여 년 전 아이들로 북적이던 문방구들은 모두 사라졌다. 그리고 그 후로는 다람쥐 문방구 사장님을 길에서도 뵙지 못했다. 


일곱 살이 된 내 딸아이는 동전을 몇 개 모으면 다이소에 가자고 나를 졸라댄다. 다이소에서 스티커나 펜, 필통 같은 물건들을 바라보는 아이의 표정에서 그 옛날 다람쥐 문방구에서 넋을 놓고 구경하던 내 모습이 스친다. 분명 아이도 어린 시절의 나처럼 황홀한 기분일 것이다. 조명이 환하게 빛나고 구획이 딱딱 각 잡힌 다이소 매장에 비하면 그 시절의 다람쥐 문방구는 아담한 공간에 다소 어두침침하고, 구획이랄 것 없이 물건들이 놓여있어 초라하게 보일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나에겐 그곳이야말로 그 어떤 곳과도 비할 데 없이 큰 설렘과 행복감을 안겨준 천국 그 자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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