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반찬통

by dwpark

이제는 내가 반찬통을 싸드린다. 85세가 된 어머니께 일주일에 두 번씩, 정성스럽게 만든 밑반찬들을 가져간다. 역할이 바뀐 지 벌써 5년째다.


어릴 때는 당연하게 생각했다. 냉장고를 열면 늘 있던 엄마의 반찬들. 김치, 멸치볶음, 시금치나물, 콩나물무침. 그때는 몰랐다. 그 하나하나에 얼마나 많은 정성이 들어가는지를.


20대에 첫 직장을 다닐 때, 자취방 냉장고는 늘 비어있었다. 컵라면과 김밥으로 끼니를 때우던 나를 보다 못한 엄마가 일주일에 한 번씩 반찬을 해다 주셨다. "제대로 먹어야 몸이 성한다"며 작은 용기에 이것저것 담아서.


30대 결혼 초기에도 마찬가지였다. 아내가 요리에 서툴다는 걸 아신 엄마는 "며느리 고생시키지 말고"라며 여전히 반찬을 싸주셨다. 그때는 고마우면서도 조금 부담스럽기도 했다. 독립한 가정인데 계속 신세를 지는 것 같아서.


40대가 되어서야 깨달았다. 엄마의 반찬통이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는 걸. 멀리 사는 아들을 매일 생각하는 마음이라는 걸. 직접 챙겨줄 수 없으니 대신 정성을 담아 보내는 편지 같은 것이라는 걸.


그런 엄마가 80을 넘기시면서 달라지기 시작했다. 예전처럼 요리하시기 힘들어하셨다. 가스레인지 앞에 서 있기가 버거우시고, 무거운 재료들을 손질하는 것도 어려워하셨다. 혼자 사시는 엄마의 냉장고는 점점 비어갔다.


그때 아내가 말했다. "이제 우리가 어머니께 드려야 할 때 아닐까?" 맞는 말이었다. 50이 넘은 아들이 85세 어머니에게 계속 받기만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처음에는 서툴렀다. 김치 담그는 법부터 배웠다. 엄마에게 전화로 물어가며 "배추는 어떻게 절이는지, 양념은 어떻게 만드는지" 하나하나 배웠다. 엄마는 전화 너머로 웃으시며 "우리 아들이 이런 것도 할 줄 아네" 하셨다.


멸치볶음 하나 제대로 만들기까지도 여러 번 실패했다. 너무 짜거나, 너무 달거나, 타버리거나. 그제야 알았다. 엄마가 40년 넘게 해 주신 그 반찬들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었는지.


요즘은 주말마다 장을 보러 간다. 엄마가 좋아하시는 나물류 위주로, 소화하기 좋은 것들로. 시장에서 상인들이 "아들이 참 효자네요" 하면 괜히 뿌듯하다. 50이 넘어서야 처음 들어보는 칭찬이다.


엄마는 내가 가져다 드리는 반찬을 드시며 늘 하시는 말씀이 있다. "맛있게 잘해놨네. 근데 너무 많이 하지 마. 혼자 다 못 먹어." 예전에 내가 엄마께 했던 말과 똑같다. 세월이 흘러 역할이 바뀌었지만, 주고받는 마음은 같다.


가끔 엄마와 함께 요리를 할 때가 있다. 내가 재료를 손질하면 엄마가 옆에서 지켜보시며 조언해 주신다. "소금을 좀 더 넣어라", "불을 조금 줄여라". 그런 시간들이 참 좋다. 엄마도 여전히 필요한 존재라는 걸 느끼시는 것 같아서.


얼마 전에는 손자가 왔다. 아직 어린 손자가 증조할머니와 함께 김치를 담그는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이렇게 사랑은 대를 이어 흘러가는구나. 받은 사랑을 다시 돌려주고, 그것을 또 다음 세대에게 전해주고.


어제는 엄마와 함께 시장에 갔다. 엄마가 직접 장을 보고 싶다고 하셔서 모시고 나간 것이다. 예전처럼 쌈짓돈 챙겨서 혼자 다니시던 때가 그리우시다고 하셨다.


시장에서 엄마는 달라져 있었다. 예전에는 가격부터 깎으시던 분이 이제는 "얼마나 하냐"라고 물으시기만 한다. 상인들도 엄마를 기억하고 있었다. "어머니, 오랜만이네요. 아들이 효자시네" 하며 반갑게 인사했다.


나물가게 앞에서 엄마는 한참 동안 시금치를 만져보셨다. 어떤 게 좋은 것인지 나에게 알려 주려고 하셨다. "잎이 두껍고 색이 진한 게 좋다. 뿌리가 붉은 것도 골라야 하고." 80이 넘으셨지만 여전히 나에게는 스승이다.


집에 와서 함께 나물을 다듬었다. 엄마는 의자에 앉아서, 나는 바닥에 앉아서. "옛날에는 네가 거기 앉아서 구경만 했는데, 이제는 네가 다 하는구나" 하시며 웃으셨다. 그 웃음에 아련함이 묻어있었다.


시금치를 데치는 것도 하나의 기술이었다. 너무 오래 삶으면 영양소가 빠져나가고, 짧으면 질기다. 엄마는 젓가락으로 줄기를 눌러보면 "이제 됐다" 하신다. 50년 경험의 손맛이다.


무침을 할 때는 더욱 세심하다. 참기름 몇 방울, 소금 한 꼬집, 마늘 반 톨. "많이 넣으면 나물 맛이 죽는다. 나물 자체의 맛을 살려야 해." 엄마의 요리 철학이다.


내가 만든 나물을 맛보시고는 "많이 늘었다"라고 하신다. 처음에는 짜기만 했던 내 손맛이 이제는 제법 봐줄 만하다고. 그 한마디에 50넘은 아들이 기뻐한다.


아내도 가끔 함께한다.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함께 반찬을 만드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따뜻해진다. 처음에는 어색해했던 둘이 이제는 자연스럽게 대화하며 요리한다. "어머니, 이렇게 하는 거 맞나요?" "응, 잘하네. 그런데 소금을 조금 더..."


아이들도 가끔 도우러 온다. 이제 30대가 된 아들과 딸이 할머니에게서 요리를 배운다. "할머니, 김치는 어떻게 담그는 거예요?" "콩나물무침은 어떻게 해요?" 4대가 함께하는 요리 수업이다.


특히 명절 때가 그렇다. 엄마를 중심으로 온 가족이 모여 앉아 전을 부치고 나물을 무친다. 예전에는 엄마 혼자 하셨던 일을 이제는 모두가 함께한다. 엄마는 "이제는 감독만 하면 되니까 편한다"라고 하시지만, 여전히 마지막에는 직접 간을 보신다.


얼마 전에는 큰 결심을 하고 엄마의 김치 레시피를 노트에 정리했다. 배추 몇 포기에 소금 얼마, 고춧가루는 어느 것을 쓸지, 젓갈은 언제 넣을지. 하나하나 물어보면 적었다."왜 이런 걸 적어?" "나중에 엄마가 못 해주시면 제가 해야죠."


그 말에는 엄마는 잠시 말없이 나를 바라보셨다. 그리고는 "그래, 적어둬라. 나도 이제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셨다. 그 순간 가슴이 먹먹했다.


요즘은 냉동실도 활용한다. 엄마가 좋아하시는 미역국을 많이 끓여서 소분해서 얼려둔다. 혼자 계실 때 간편하게 드시라고. 엄마는 "이런 것도 다 해주고, 우리 아들 참 기특하다" 하신다.


가끔은 실수도 한다. 간이 너무 세거나, 너무 싱겁거나. 그럴 때마다 엄마는 "괜찮다", 다음에 조금 조절하면 돼" 하시며 격려해 주신다. 50년 전 내가 엄마 심부름을 잘못했을 때도 그렇게 말씀하셨다.


지난주에는 엄마가 "요즘 입맛이 없다"라고 하셨다. 그래서 엄마가 젊었을 때 자주 해주셨던 콩나물국을 끓여드렸다. 한 수저 떠드시더니 "이 맛이야, 이 맛" 하시면 한 그릇을 다 드셨다. 그 모습을 보며 얼마나 뿌듯했는지.


냉장고를 정리하며 오늘도 생각한다. 50년 넘게 받기만 했던 사랑을, 이제는 조금씩이라도 돌려드릴 수 있어서 다행이다. 그리고 언젠가 내 아이들도, 손자들도 이런 마음을 알게 될 것이다.


동네 마트에서 장을 볼 때면 가끔 젊은 엄마들을 본다. 아이 손을 잡고 이것저것 고르는 모습이 30년 전 우리 아내 같다. 그때는 몰랐다. 가족을 위해 장을 보고 요리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사랑인지.


마트 계산대에서 만난 60대 아주머니가 말했다. "아들이 장 봐주니 좋으시겠어요." 그럴 때면 대답한다. "제가 더 고맙죠. 이제라도 이런 걸 할 수 있게 되어서."


엄마께 전화를 드린다. "엄마, 반찬 떨어져 가시죠? 내일 또 해갖고 갈게요." 전화 너머로 들리는 엄마의 "그래, 고맙다" 하시는 목소리. 그 한마디가 오늘 하루를 마무리하는 가장 따뜻한 선물이다.


받기만 하던 50년을 지나, 이제는 드릴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그것이 50대가 된 나에게 주어진 가장 큰 축복이 아닐까 싶다. 작은 반찬통 하나에도 이렇게 큰 의미가 담길 수 있다는 것을, 나이 들어서야 비로소 깨달았다.


그리고 이제는 안다. 진짜 효도는 특별한 무언가가 아니라 이런 일상의 작은 정성 들이라는 것을. 함께 장 보고, 함께 요리하고, 함께 나누어 먹는 그 평범함 시간들이 가장 소중한 선물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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