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에도 비용이 든다

by 자치언론 파란

노불, 지구 디자인 노불


모든 도전에는 자원이 소모된다. 그리고 자원은 한정적이며, 사람마다 사용할 수 있는 양이 다르다. 즉 도전의 기회는 공평하지 않다. 그리고 우리는 자원이 없을수록, 또 도전할 기회가 적을수록 실패를 두려워하게 된다. 다시 시도할 수 없기 때문이다. 모든 성공담이 자랑거리가 되는 것에 반해 실패담은 불문율 취급을 받는다. 그러나 세상에는 실패 후 다시 도전할 수 없는 사람이 훨씬 많다. 실패에도 돈이 드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왜 도전하지 못하는가?

청년 빈곤 문제는 늘 있었다. 경제적 문제는 도전의 기회를 제한하므로 더 빈곤한 청년이 더 적은 성공 가능성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단순히 ‘청년 빈곤’이라는 단어로 최근 대한민국의 성공 격차를 설명할 수 있을까?


부모의 지원, 혹은 원래 가지고 있던 부를 활용할 수 있다면 상대적으로 쉽게 도전하고 쉽게 실패할 수 있다. 이렇게 달성한 성공은 대단한 성과로서 사회에 전시된다. 이 성공이 나쁘거나 의미 없다는 얘기

는 아니다. 그러나 소위 ‘있는 집’ 사람은 쉽게 성공한 결과로 더 많은 부와 기회를 다시 얻는 반면, ‘없는 집’ 사람은 실패해도 괜찮은 도전만을 찾아다녀야 한다. 돈이 부족할수록 잡을 기회가 적어지는 것이다. 성공 격차는 이렇게 생긴다. 자원이 많은 사람은 더 많은 성공을 얻고, 자원이 적은 사람은 더 소극적으로 도전하게 된다. 그리고 열정과 도전 정신을 강조하면서도 여유로운 모습을 원하는 사회적 풍조가

실패에도 돈이 드는 현실을 가린다.


이런 태생적인 격차를 줄이기 위해 필요한 것이 정책이다. 정부의 지원은 안전망의 역할을 한다.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건 아니지만, 경제적 부담으로 망설이는 청년들에게 도전할 용기를 불어넣는다. 정책으로 구제받을 수 있다는 믿음이 생기면 실패의 위협을 줄이는 것도 가능하다. 그러나 현재 대한민국 사회에서는 이런 믿음을 찾을 수 없다.


이것은 구제 정책이 존재하는 것과는 다른 문제이다. 대한민국 청년 중 내가 모든 자원을 써서 도전한 후 실패했을 때 경제적•사회적으로 도움받을 수 있다고 확신하는 비율이 몇 퍼센트나 될까? 실패 후 다시 도전하기 위해서 자원을 모으려면 돈을 벌어야 하는데, 요즘엔 괜찮은 아르바이트 자리 하나 찾기도 힘들다. 물가는 연일 고공행진 중이다. 자원을 벌기도 쉽지 않고 모으기도 쉽지 않은 환경에서 누가 정부의 지원 하나만을 믿고 도전할 수 있을까. 도전보다 적당히 살기를 택하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실패의 두려움 : 중고신입

통계청이 지난 2월에 발표한 ‘2025년 1월 고용동향’에 의하면 청년층(15~29세)의 취업자 수는 전년 동기보다 21만 8,000명 줄며 4년만에 최대 감소 폭을 기록했고, 고용률 기준으로도 44.8%로 1.5%p

감소했다. 청년층 ‘쉬었음’은 전년 대비 3만 명 증가한 43.4만 명으로, 20대 초반을 중심으로 증가했다. 수시‧경력 채용 증가로 인해 구직‧이/전직 과정에서 ‘취업준비‧실업 응답비율’이 하락했고, 일시적 쉬었음 편입이 증가한 데서 기인했다는 분석이 있다. 하지만 청년층 인구가 감소함에도 불구하고 ‘쉬었음’이 3만 명이나 증가했다는 점은 주시할 만하다.


인턴이나 아르바이트 모집에서조차 경력직을 선호하는 요즘이다. 얼마 전에는 한 대기업 생산기술직의 ‘경력기반 신입사원 모집’ 채용 공고가 여론의 뭇매를 맞기도 했다. 이처럼 사회초년생이 취직할 기회를 얻지 못하는 이유는, 기업과 기성세대 차원에서 ‘실패’하기를 꺼리는 경향이 갈수록 뚜렷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많은 기업이 직무 경험이 없는 ‘쌩신입’보다는 다른 기업에서 다듬어진 ‘중고신입’ 인재를 채용하고자 한다. 이에 청년들은 열심히 스펙을 쌓을 만한 곳을 찾아 헤매고, 청년 이용자가 많은 커뮤니티 등지에서는 얼어붙은 취업시장에 대한 한탄이 오간다.


실패의 두려움 : 나이강박

한국 사회의 전반적인 분위기도 실패를 용납하지 않는다. 공고한 생애주기별 정상성은 ‘나이강박’이라는 현상을 만들어냈다. 사람들은 몇몇 요소로 나이에 따른 성취 정도를 가늠하고 서열화해서 성공한 인생인지, 실패한 인생인지를 판가름한다.


경력의 유무나 나이에 따른 삶의 방식 외에도 성공과 실패의 급을 나누는 기준은 세밀하고 촘촘하다. 마치 게임 속 과업을 수행하는 듯하지만, 보상은 없고 달성하지 못하면 사회에서 실패자로 간주한다. 청년들은 보이지 않는 과업에 얽매여 살아가면서 실패하기를, 실패해서 기회비용을 잃고 빈곤해지기를 두려워한다. 이는 작년 전문직 자격증 시험 응시자가 역대 최다를 기록한 사실과도 맞닿아 있는 듯하다.












우리에게 실패를 달라

오늘도 우리는 실패할 수 없다. 모든 실패에는 비용이 들기 때문이다. 사회는 “누가 협박한 것도 아니고, 다 네가 한 선택이다”라며 개인이 모든 선택을 책임져야 한다고 주장하기 일쑤다. 그리고 점점 그 말에 힘이 실리고 있다. 그래서 누군가는 학생회 대신 스펙을 쌓는 데 도움이 되는 학회나 동아리에 가입하고 시위 대신 학점을, 학문 연구 대신 취업을 택한다. 시간 투입 대비 보상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늘 실패할 경우를 대비해서 하고 싶은 것보다 해야 하는 것을 정한다. 성숙한 사회는 개인의 도전과 실패를 지원하고, 실패와 좌절을 겪은 개인이 다시 일어서기까지 보듬어줄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풍조가 사회에 정착

되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할지 고민해야 할 때다.


김아사. (2024). 직장인도 전문직 도전... 노무사 응시 3배·감정평가사 4배 늘어. 조선

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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