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e you Mr. Schadenfreude?

by 자치언론 파란

가온, 함박 디자인 함박


‘쌤통, ‘남의 불행은 나의 행복’ 등의 감정은 살면서 한 번쯤 느껴본 적이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일본어 속어 중에서도 이런 심리를 가리키는 메시우마(メシウマ) 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남의 불행을 봐서 밥맛이 좋다. 즉 꼴좋다라는 뉘앙스를 지닌 표현입니다. 다른 언어로 된 단어가 있을 정도로 이 감정은 보편적인 감정처럼 느껴집니다. 남의 불행은 나의 행복의 감정을 나타나는 정확한 용어가 있습니다. 바로 샤덴프로이데 입니다. 샤덴프로이데(Schadenfreude)는 독일어로 ‘남의 불행을 보았을 때 기쁨을 느끼는 심리’라는 뜻의 단어입니다. ‘Schaden’은 손해, 손실 등을 의미하고 ‘Freude’는 기쁨, 환희 등을 의미한다. 직역하면 ‘손실로 인한 기쁨’ 정도를 나타냅니다.


남의 고통에 기뻐하는 우리는 왜 이런 감정을 느끼는 걸까요?


뇌과학자 나카노 노부코가 샤덴프로이데는 사랑과 행복의 호르몬이라고 불리는 옥시토신과 관련이 있다고 밝혔습니다. 옥시토신 호르몬은 인간관계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어주지만 이것이 심화되면 시기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습니다. 옥시토신 분비량이 늘어나면 외부 집단에 대한 편견이 강해지기 때문에 집단의 목적과 규범에 부합하지 않는 자를 색출하고 공격하는 일련의 현상과 샤덴프로이데를 연관지어 생각할 수 있습니다.


다른 논문에서는 심리적 원인 3가지에 의해 샤덴프로이데가 발생한다고 설명했습니다. 공격성, 경쟁성 그리고 공정성입니다.


그렇다면 샤덴프로이데는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느끼는 자연스러운 감정일까요? 1월 18일부터 26일까지 샤덴프로이데 설문을 진행하였으며, 총 24분이 답변해 주셨습니다.


첫 번째 질문으로 ‘샤덴프로이데’라는 단어의 뜻을 아는지 물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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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명의 응답자 중 정확한 뜻을 알고 있는 사람은 없었고, 대략적인 의미를 아는 사람은 2명에 불과했습니다. 샤덴프로이데의 뜻(남의 불행을 보았을 때 기쁨을 느끼는 심리)을 설명한 후, 자신이 샤덴프로이데를 겪은 상황에 대해 질문했습니다.


‘아니꼽게 생각하고 있던 사람이 망신을 당했을 때(- 논니)’, ‘지인이 오랫동안 준비한 시험에서 떨어졌을 때(- 송덴프로이데)’, ‘가게에서 새치기 하던 사람을 종업원이 뒤로 보냈을 때(- 이진)’ 등 다양한 상황이 답

변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다른 사람의 불행이나 고통에서 느끼는 기쁨’은 구체적으로 어떤 감정일까요? 투표 결과, 통쾌감 1순위, 안도감 2순위, 우월감이 3순위를 차지하였습니다. 이외에도 양심의 가책(- 차가운 눈사람), 동정심을 얻는 데 대한 질투(- 햄볶한 하루 되세요), ‘나도 언젠간 저렇게 비웃음거리가 될 것 같다’는 복잡한 감정(- 니나노니주스) 등 기쁨에서 거리가 먼 감정 또한 샤덴프로이데에서 느껴진다고 답변해 주셨습니다.


이렇게 복잡한 이 감정은 자연스러운 감정인지에 대해 물었을 때, 24명 중 22명이 ‘그렇다’라고 답해 주셨습니다.


서론에 잠깐 언급되었듯이, 뇌과학자 나카노 노부코는 샤덴프로이데가 호르몬의 분비와 밀접한 연관이 있는, 자연스러운 감정이라고 말했습니다. 일반적으로 *옥시토신*은 ‘사랑의 호르몬’이라고 불립니다. 하지만 도쿄대학 뇌신경의학 박사 나카노 노부코는 자신의 저서에서 옥시토신이 시기심을 강화하고, 이것이 샤덴프로이데로 이어질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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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렇게까지 너를 사랑하는데, 너는 왜 그렇지 않을까?”

균형이 맞지 않는 사랑, 보답받지 못하는 애정이 오히려 불행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입니다. 사랑은 관계를 만들고, 집단을 형성하며, 사회를 이루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하지만 그 감정이 지나치면 배타적인 태도로 변할 수 있습니다. 집단의 결속을 지키기 위해 '불순분자’를 찾아내려는 경향이 생길 수도 있죠. 여기서 말하는 ‘불순분자’란 나보다 더 뛰어난 사람, 나에게 시기와 질투를 불러일으키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이들은 집단 내부에서 두 가지 방식으로 결속을 흔들 수 있습니다.


이런 샤덴프로이데를 다룬 매체는 아주 다양합니다. 그 중에서도 ‘헝거게임’은 논문에 설명되어있을 정도로 대표적인 사례인데요.


‘헝거게임’은 십대의 아이들이 서로 살육 전쟁을 벌인다는 점에서 잔인하고 자극적이지만 캐피톨 시민들은 열광한다. 독자와 관객들도 ‘헝거게임’에 열광했다. 여기서 우리는 캐피톨 시민들과 우리들의 모습에서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타인의 고통스런 게임을 즐겁게 지켜보았다는 점이다. 이 감정을 바로 ‘샤덴프로이데(Schadenfreude)’ 라고 한다.


김시은, 이효원. (2019). 대중문화의 병리적 측면과 샤덴프로이데 -영화 <헝거게임: 판엠의 불꽃>을 중심으로. 글로컬 창의 문화연구, 8(2), 32-49.












다른 사람의 실패를 보고 기뻐하는 샤덴프로이데는 뒤에서 은밀히 이루어지는 것이 특징입니다. 그렇다면 샤덴프로이데는 나쁘기만 한 감정일까요? 샤덴프로이데는 항상 부정적인 감정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타인의 실패에서 기운을 얻는 것은 나만 낙담하고 실패하는 것이 아니라는 위안을 줍니다. 또한, 누군가가 나에게 샤덴프로이데를 느낀다면, 나는 그만큼 잘했다는 것을 알게 되어 자신감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런 감정은 사회적 경쟁에서도 동기 부여가 되어, 나의 성장을 자극할 수 있습니다. 결국, 샤덴프로이데는 자기 성찰과 발전을 위한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언젠가 여러분의 샤덴프로이데를 느끼는 순간이 온다면, 이를 현명하게 다루어 성장의 길로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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