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숲 디자인 함박
한국 TV 드라마 속 레즈비언 서사
최근 한국의 TV 드라마에서는 여성 간의 친밀성과 연대를 소재로 하여 관계를 그려내고자 하는 시도가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여성 간의 관계는 주로 ‘워맨스’라 불리게 되는데 이는 단순히 친밀성에 국한되는 게 아닌 동성 간의 성애적 사랑을 간접적으로 묘사하는 것에도 활용되곤 한다. 그러나 한국의 TV 드라마에서 성소수자 개인의 서사 및 동성 간의 사랑은 주체로서 표현되기보다는 시련을 표현하기 위한 요소로 쓰이거나 주연 서사에 대한 조력 혹은 서브플롯에 그치게 되며, 부정적·비극적 시련으로 다뤄지기도 한다. 무엇보다 여성 성소수자에 해당하는 레즈비언의 서사는 그 사례가 극히 적을 뿐만 아니라 드라마 속 퀴어적 암시는 ‘워맨스’로 간주되어 퀴어베이팅(Qeerbating)으로 수단화되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퀴어베이팅이란 성소수자를 뜻하는 퀴어(Queer)와 미끼를 뜻하는 베이팅(Bating)의 합성어이며, 창작자가 서브 텍스트를 이용하여 동성애나 기타 퀴어적 표현을 재현 및 암시하지만, 실제적 묘사를 피하며 퀴어 당사자들을 교묘히 낚는 마케팅 기법을 뜻한다. 퀴어베이팅은 동성 간의 관계가 로맨스에 준할 만큼 각별할 수는 있으나, 그 이상의 성애적 관계, 로맨스로서 기능할 수 없음을 단정 짓고 있다는 점에서 동성애 배제적이며, 이러한 시선 속에서 성소수자는 쉽게 타자화 되거나 아예 그 서사가 지워지기도 한다.
이문우(2022), 「워맨스에서 레즈비언 로맨스로 -<마마>-<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 >-<마인>에 이르기까지」
한국 TV 드라마 속 퀴어 서사는 90년대 초반, 성소수자 인권 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전 지구적 퀴어 문화의 흐름이 인터넷을 통해 전파됨에 따라 등장하게 되었으나, 초창기 미디어 속 퀴어 서사는 대부분 이성애적 시각 속에서 철저히 대상화된 ‘비주류 인생’의 영상화에 불과했으며, 희화화된 퀴어성은 사람들에게 오히려 반감과 편견을 심어 주기도 하였다. 그러나 2010년대를 전후로 하여 한국문학에 나타난 퀴어 문학 열풍 및 해외 퀴어 영화의 흥행세를 기점으로 미디어에서 그려지는 성소수자는 이전에 비해 긍정적인 모습으로 변화하기 시작했으며, 이전과 다른 시각에서의 재현을 도모하게 됨에 따라 드라마 속 성소수자에 관한 긍정적 묘사는 확연히 증가하게 되었다. 또한 최근 들어서는 퀴어 서사가 하나의 흥행 포인트가 되어 퀴어 당
사자를 비롯한 시청자들의 이목을 끄는 요소로 작용하기도 한다.
그러나 빈번한 퀴어베이팅은 드라마의 창작자와 시청자 대다수가 여전히 이성애 중심 서사를 유지하기를 원하며, 성소수자의 가시화에 있어 무심한 태도를 보이고 있음을 시사한다. 특히 ‘워맨스’는 남성 간의 친밀한 관계를 나타내는 ‘브로맨스’에 비해서도 비교적 최근에 부상하였으며, 드라마에 등장하는 직·간접적 레즈비언 캐릭터는 고유의 서사를 갖춘 생동적 존재가 아닌 구색 갖추기, 혹은 보조 서사의 도구적 역할로만 존재하는 서사적 한계에 부딪치게 된다.
정두나, 「수면 위로 드러난 ‘퀴어’」, 「CHANNEL PNU」, 2018
년 12월 8일, “https://channelpnu.pusan.ac.kr/news/articleView.
html?idxno=9110”
김예린, 「늘어나는 퀴어 콘텐츠, 자연스럽게 여겨지는 그날까지」,
「이대학보」, 2023년 3월 12일, “https://inews.ewha.ac.kr/news/
articleView.html?idxno=70868”
(중략) <검블유>의 세 주연 여성에게는 각자의 남성 연인이 존재하며, 세 여성의 삼각관계는 끝내 ‘워맨스’ 이상으로 발전하지 못한다. 드라마는 이성애 로맨스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그동안 한국 TV 드라마에서 환영받지 못했던 여성 간의 관계를 보다 다층적이고 복잡하게 해석하며, 일과 경쟁, 우정과 사랑 속 여성의 주체적 서사를 그려내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지점을 갖는다. 그러나 남녀 간의 관계였다면 단번에 로맨스로 해석되었을, 이른바 ‘설렘 주의’ 장면조차 ‘워맨스’라는 이름 아래 그 관계가 모호하게 뭉뚱그려지며, 때문에 이를 시청하는 퀴어 당사자들은 마치 기만당한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웹툰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 <정년이>에도 작품 전반에 걸쳐 퀴어 베이팅과 서사 지우기가 나타난다. 드라마<정년이>는 원작과 달리 기존 캐릭터인 부용을 완전히 삭제하였는데, 부용은 작품 내 주인공인 정년이와 러브라인을 형성하는 캐릭터이자 정년이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는 주요한 여성 인물이다. 드라마는 부용이라는 인물을 배제함으로써 여성 간의 사랑을 직접적으로 드러내기를 거부하였으며, 작품의 주요한 정체성 중 하나인 레즈비언 캐릭터로서 겪는 부용의 성장 서사 또한 생략할 수 있는 요소로 치부했으나, 마치 부부와도 같은 관계성을 띠는 혜랑-옥경, 정년이와 주란의 애틋한 감정과 같은 퀴어적 요소는 수용하는 모습을 보인다. 또한 부용의 서사 중 일부를 주란에게 녹여내어 퀴어성을 간접적으로 드러내는데, 이는 드라마<정년이>가 퀴어 정체성을 전면적으로 드러내는 것을 회피하면서도, 퀴어적인 정서를 대중이 수용할 수 있는 감정선으로 전유함과 동시에 퀴어 팬덤의 반발을 사지 않을 만큼 드러냄의 전략을 취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와 같은 선택적 수용은 레즈비언 서사의 지움과 은폐를 동반하며, 모호한 가능성만을 남긴 채 뚜렷한 정체성의 표명을 피하는
모습으로 해석할 수 있다. 드라마<정년이>는 레즈비언 서사를 배제함으로써 보편적이고 대중적인 이야기로 포장하며, 이를 통해 대중성을 확보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전략은 어쩌면 수용 가능성을 높임으로써 보다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는데 도움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동시에 성소수자의 정체성과 그 서사를 주변화하는 결과를 낳게 되며, 동성애 배제적인 한국 드라마의 민낯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
로 자리 잡게 된다.
민주은, 「tvN 드라마 <정년이> 퀴어베이팅 논란, ‘정년이’는 어디에?」,「한국예술종합학교신문」, 2024년 11월 10일, “http://news.karts.ac.kr/?p=12896”
보다 의미 있는 재현으로 나아가기 위한 첫걸음
이와 달리 드라마 <알고있지만,>과 <마인:MINE>은 진전된 레즈비언 서사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드라마 <알고있지만,>에서 여성 조연 캐릭터인 윤솔과 지완은 학창시절부터 우정을 이어오다 연인으로 발전하게 된다. 이들의 관계는 이성애 중심 서사의 곁가지로 기능하지 않으며, 기존의 퀴어 서사에서 익숙하게 반복되던 정체성의 부정, 사회적 갈등, 비극적 결말의 전형에서도 벗어난 모습을 보인다. 두 인물은 상대가 여성이기 때문이 아닌 소중한 친구를 잃을까 하는 걱정으로 관계의 변화에 망설이며, 서사의 흐름 속에서 자연스레 서로의 마음을 확인, 관계를 이어 나가게 된다. 이는 두 인물이 성소수자이기에 응당 부여되었던 고통의 서사 도식에서 벗어나, 보편적인 로맨스물 주인공의 서사처럼 다뤄졌다는 점에서 의미있는 재현으로 평가할 수 있다.
드라마 <마인>은 성소수자 서사가 주로 과거형으로 정리되거나 규범에 순응하는 방식으로 마무리되었던 기존 흐름과 달리,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긍정하며 감추지 않겠다는 선언을 담고 있다. 다만 여전히 동성 연
인과의 서사는 과거형의 회상 속에서, 혹은 암묵적인 뉘앙스로만 제시되는 것에 그쳤다는 점에서, 드라마<마인> 또한 여전히 수용자의 반응을 의식한 제한된 서사라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드라마는 정
서현-최수지의 관계를 직접적으로 보여주기보다는, 애틋한 눈빛 연기와 절제된 감정선으로 구성함으로써, 퀴어 서사를 전면에 내세우는 것에는 여전히 망설이는 모습으로 보인다. 이러한 방식은 성소수자의 정체성을 은유나 상징의 영역으로 축소하고 그 존재를 온전히 드러내지 않음으로써 안전하게 소비되고자 하는 태도에 가깝다.
이와 같이 일부 한국 TV 드라마에서는 여성 간의 사랑을 보다 자연스럽고 진정성 있게 그리려는 움직임이 포착되기도 한다. 더 이상 성소수자 캐릭터가 일탈이나 비극의 도식에만 머물지 않고, 자신의 감정을 숨기지 않으며 사랑을 선택하는 주체로 등장하거나, 동성 간의 사랑이 단지 추억이나 일탈과 같이 소비되지 않는, 존재의 한 부분으로 온전히 인정하는 서사가 조심스럽게 시도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퀴어 인물이 단순히 장치나 상징으로 기능하지 않고, 서사의 일원으로 살아 숨쉬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진전이다. 그러나 여전히 한국 TV 드라마 속 여성 간의 사랑은 입체적 서사를 갖추지 못한 채 타자화되거나 주변화되는 경우가 대다수다. 이는 퀴어 인물의 정체성과 관계성을 뚜렷하게 조명하기보다는, 이를 감정적 서브플롯이나 은유적 장치로 소비하는 방식에서 기인한다. 이러한 레즈비언 서사의 재현 한계는 단순히 창작자의 문제에 그치지 않으며, 보다 구조적인 원인에서 비롯된다고 볼 수 있다.
동일성의 인지를 통한 사랑의 실현
국내의 방송 매체 산업은 무엇보다 상업적 수익의 최대화에 중점을 두고 있으며, 심의 기준과 규제 또한 기존 보수적 수용자 정서에 맞춰져 있다. 이로 인해 성소수자 캐릭터의 정체성을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서사는 쉽게 ‘논란’의 대상이 되거나 ‘대중성 없는 콘텐츠’로 간주되기 쉽다. 또한 사회 전반에 뿌리내린 이성애 중심주의와 성소수자에 대한 무지와 혐오 정서 역시 이러한 서사적 배제를 고착하는 문화적 기반이 된다. 현실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시청자의 수요와 긍정적 반응, 사회적 가치관의 변화가 선행되어야 한다. 드라마 속 성소수자 캐릭터를 자연스럽게 소비하는 시청자가 늘어나고 그에 대한 지지와 수용의 물결이 성소수자 당사자뿐만이 아닌 다양한 시청자층으로 확장되어야만 한다. 언론과 예술, 문화의 전반에서도 성소수자에 대한인식 전환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며, 이와 같은 다층적 변화가 결국 한국 드라마 속 레즈비언 서사의 존재적 가치를 확보하는 단단한 기반이 되어줄 것이다.
이성애 중심의 사회에서 여성 간의 사랑은 여전히 받아들여지기 어렵다. 레즈비언 서사가 주목받지 못하는 이유는 여성 간 관계가 남성화된 사회에서, 남성의 개입 없이 완결되는 사랑으로 인식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게이 서사가 남성의 참여 아래에서 여성 관객의 감정이입이나 미화의 대상으로 비교적 다수에게 소비되는 것과 달리, 레즈비언 서사는 남성의 참여와 욕망의 표현, 통제가 철저히 배제된 관계라는 점에서 남성과 여성 소비자 모두에게 불편한 감정을 유발하거나 무관심, 회피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이는 퀴어 서사에 대한 인식의 문제를 넘어서, 기존의 남성 중심적 서사 구조에 길든 대중문화 속에서 여성의 주체적 관계 맺음이 배제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남성의 시선이 필요치 않으며, 여성이 남성의 존재에 기대지 않고 온전히 존재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여성 간의 서사는 이성애 규범이 지배하는 우리 사회에 있어 더욱 불편하고 위협적인 존재가 된다. 따라서 한국 TV 드라마 속에서 레즈비언 서사의 재현은 ‘성소수자 서사’의 확장일 뿐만 아니라,이성애 규범 바깥에서 여성의 욕망과 사랑을 드러내고자 하는 시도가 되며, 단순히 드라마 속 장르에 한정되
는 문제가 아닌 앞으로의 한국 사회가 여성의 욕망과 사랑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재현할 것인지에 대한 페미니즘적 과제를 제기한다.
우리는 미완의 서사에서 변화와 성장을 통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한다. 규범과 편견에서 벗어나 사랑의 동일성을 인지할 때, 비로소 함께 써 내려갈 변화의 실현장이 열리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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