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테로 안방극장에 퀴어들의 등장이라?

by 자치언론 파란

글 랭보 디자인 웨이브



우리에게 드라마란?

어릴 적 (MBC)를 보고 의사를 꿈꿨다. (SBS)를 보며 변호사를 동경했고, (SBS)를 본 후 직 업에 선한 영향력과 악한 영향력이 공존할 수 있음을 배웠다. 드라마 는 누군가를 꿈꾸게 하고 더 나은 삶의 방향을 귀띔해 준다. 최근 현직 의사들이 (tvN)을 리뷰하는 콘텐츠를 유투브에 서 쉽게 찾아볼 수 있었는데, 이처럼 직업인의 경우 자신이 종사하는 분야를 다룬 드라마를 보며 공감하는 모습도 곳곳에서 발견된다. 또는 부모 자식 간 서로 애증하는 모습, 연인이 썸 타거나 다투는 모습 등 등장인물의 일상 속 순간을 바라보며, 비슷한 경험을 떠올리고 공감하는 모습도 흔하다. 성별, 연령, 직업, 처한 상황과 조건 등에 따라 우리 는 드라마 속 특정 인물에 크게 몰입한다. 어쩌면 이것이 드라마가 가 진 가장 큰 매력 아닐까?


그런데 나와 유사한 처지에 놓인 인물이 매번 실패하고, 절망하고, 최악의 경우 자의 혹은 타의로 생을 마감하는 모습만을 드라마에서 비춰준다면 이걸 지켜보는 ‘나’의 마음은 어떨까? “설마 저게 나의 현실 이자 미래?”라며 불안에 빠지진 않을까? 필자는 이 글을 통해 미디어가 퀴어(성소수자) 캐릭터를 재현하는 방식에 의견을 제기하려 한다.


퀴어 캐릭터와 퀴어 사이의 거리

퀴어 당사자에게 퀴어 캐릭터는 무의식적으로 스스로를 투영하게 되는 거울과도 같다. 혐오세력에게 평생에 걸쳐 집단적 괴롭힘을 당하는 모습, 사랑의 결실을 이루지 못하고 상심한 모습, 주변인들과 가족들에게 ‘미친놈’ 취급받다 스스로를 비관하며 자살하는 모습. 이런 모습만이 미디어에 노출된다면 받아들이는 퀴어의 입장에선 미디어가의도했든, 하지 않았든 상처를 받을 수밖에 없다.


물론 한국에서 퀴어로 사는 것은 실제로 팍팍하다. 차별금지법, 생활동반자법 등 제도가 미비하므로 시스템의 보호를 기대할 수 없다. 언제, 어디에 혐오세력이 있을지 모르고 어떤 방식으로 ‘미친놈’ ‘별 종’ 취급받을지도 모르기 때문에 자신이 동성에게 끌린다는 사실, 혹은 스스로를 다른 성별로 정의한다는 사실을 함구하는 데서 오는 스트레스도 크다. 하지만 드라마가 꼭 이런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반영해야 한다는 법이라도 있나? 그렇다면 장르는 드라마가 아닌 리얼 다큐일 것이다. 또한 현실에는 분명 주변인의 지지를 받으며 사랑하는 사람과 행복하게 살고 있는 퀴어 당사자도 있다. 그런데 어째서 이런 현실은 반영하지 않는 것일까?



퀴어의 희화화

드라마에 퀴어가 등장해도 혐오세력의 반발을 사지 않으려면 방 법은 하나뿐이다. 퀴어를 우스꽝스럽게 만드는 것. 퀴어를 조롱거리로 만들고 철저히 시청자를 위한 웃음의 도구로 만들면 된다. 2017년 작 (JTBC)에는 게이 캐릭터 ‘오돌뼈(김원해)’가 등장한다. 오돌뼈는 남자 주인공을 짝사랑해서 여자 주인공을 괴롭히는(...) 인물이다. 하이톤의 목소리에 화려하고 튀는 옷을 입고, 어딘가 과장된 모습을 보여주는 오돌뼈는 게이의 스테레오타입을 부정적으로 재현하며 편견을 강화한다.







어렵게 도착한 시대가 헛되이 흘러가지 않길 바라는 건 퀴어 캐릭터의 등장을 반기는 시청자로서 과한 욕심은 아닐 것이다. 죽거나 불행 속에 살지 않으며, 행복하고 단단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써내려가는 퀴어 캐릭터를 더 자주 볼 수 있길 기대하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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