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대가 나타났다!: 공포 영화 속의 타자

by 자치언론 파란

글 이유 디자인 이채



늑대가 나타났다!1 : 공포영화 속의 타자

※ 이 글에는 <사바하>, <겟 아웃>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나는 자타가 공인하는 ‘쫄보’다. 혼자서는 범죄 영화도 보지 못하니 언감생심 공포영화는 꿈도 못 꾼다. 내가 ‘쫄보’라는 증거를 굳이 늘어 놓자면 다음과 같다. <월드 워 Z>를 4D로 관람한 날, 담을 타고 오르다 눈앞에 떨어지던 좀비의 생생한 이미지가 머릿속에 맴돌아 밤을 꼬박 새웠다. <검은 사제들>을 볼 때는-이걸 ‘봤다’고 말해도 될지는 모르겠 지만- 악마에 씐 학생을 구마하는 중후반부 내내 눈을 감고 귀를 막아야 했다. 언젠가는 새벽에 불을 꺼두고 유튜브 알고리즘에 무아지경으로 몸을 맡기다가 공포영화 예고편을 광고로 맞닥뜨리고 속으로 비명을 지른 적도 있었다. 벌렁거리는 심장을 붙들고 유튜브 프리미엄 결 제를 유도하기 위한 고도의 마케팅 전략일지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다.  


봤다 하면 잠을 설치니 고등학생이 된 이후로는 공포영화와 담을 쌓 고 지냈다. 안 본 지 오래됐다고 근거 없는 자신감이 치밀어오를 때마 다 과거의 경험을 되새기며 이유 모를 관람 욕구를 억누르길 몇 번, 드디어 호기심이 기억을 이기는 순간이 찾아왔다. 당시 충동적으로 시청했던 영화는 장재현 감독의 로, ‘사슴동산’이라는 종교 단체와 강원도 영월에서 태어난 ‘귀신’을 둘러싼 미스터리한 사건의 진상을 쫓는 내용의 오컬트물이다. 그러나 스산한 분위기로 전개되는 122분의 러닝타임이 끝난 뒤 남은 것은 뜻밖에도 공포감이 아닌 의문이었 다. 그러고 보면 공포영화 속의 귀신·괴물·초월적 존재는 자주 사회적 타자의 모습을 하고 있지 않은가? 에서는 남들과 다른 모습으로 태어난 여자아이를 ‘귀신’이라고 부르며 두려움의 대상으로 묘사 한다. 이 아이는 결국 미륵으로 각성하지만, 계기가 되는 것은 초경이다. 극 중 ‘사슴동산’의 경전에 “뱀이 피를 흘리는 날, 그것이 뱀을 등에 업고 나타날 것이다”라고 적혀있는데, 여기서 ‘피를 흘리는 날’이 초경의 은유인 셈이다. 뿐만이 아니다. 687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공포영화로서는 드물게 흥행에 성공한 에서는 타국에서 온 외지인을 공포의 대상으로 다룬다. 정신 장애인, 처녀 귀신이 등장하는 영화 역시 셀 수 없이 많다.


여성 공포영화.png 영화 장르별 여성의 등장시간과 말하는 시간 비중(%) ©한국일보



지난 2017년 12월, 구글과 지나데이비스재단이 2014년부터 2016 년까지 3년간 미국에서 개봉한 영화 중 박스오피스 상위 100위에 오른 작품의 여성 인물 노출 시간을 분석한 결과를 발표했다. 조사에 따르면 공포영화는 상영시간 중 여성이 말하는 시간과 등장시간이 가장 많은 영화 장르다. 인구통계학적 다양성 측면에서, 공포영화는 가장 성평등한 장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막상 ‘가장 성평등한 영화 장르’라는 감투를 씌우기엔 개운치 않은 구석이 있다. 유독 공포영화에 여성이 자주 등장하는 데는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묻지 않을 수 없다. 공포영화는 어째서 고소득층 이성애자 백인 남성이 아닌 여성, 이방인, 정신 장 애인 등의 타자화된 소수자들을 공포의 대상으로 그릴까?








이처럼 공포영화는 ‘정의로운 주체’가 공포의 대상으로 수단화된 타자를 처단하는 엔딩을 통해 기존의 안정적인 체제로의 귀환을 꿈꾸고 스크린 바깥의 혐오를 부추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공포’라는 말초적인 감정을 이용해 관객들에게 타자의 목소리를 가장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터전이 되기도 한다. 공포영화는 타자를 위한 공론장이자 놀이터가 되어야 한다. 그 첫걸음은 작품 속의 타자에게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마이크를 쥐여주는 데서 시작된다. 그들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미지의 존재를 향한 공포는 흐려지고, 우리 사회 역시 현 시 스템의 문제점에 대해 스스로 질문을 던지며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을 쓰는 나는 여전히 자타가 공인하는 ‘쫄보’지만, 대항적 상상력을 보여줄 놀라운 공포영화의 등장을 언제나 기대 하고 응원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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