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당신의 하루는 안전하신가요

by 자치언론 파란

글 이채 디자인 이채



‘살충제’는 벌레를 제거하려는 용도로 만들어진 화학물질이다. 직관적으로 인체에도 유해할 것이라는 판단이 선다. 그렇다면 최근 홈인테리어로 자주 사용되는 ‘인센스 스틱’은 어떤가. 우리는 심리적 안정과 기분 전환을 위해 인센스 스틱을 피운다. 하지만 인센스 스틱이 타들어 갈 때 나오는 연기는 미세먼지를 비롯한 입자상 물질, 벤젠 같은 휘발성 유기 화합물 등을 포함하고 있어 장시간 흡입하면 발암물질로 작용할 위험이 있다. 사용법을 제대로 명시해 놓지 않으면 위험하다는 자각조차 하지 못한 채 무방비하게 유해화학물질에 노출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화학물질 사고는 한순간에 바로 일어나기 보다는 장기간에 걸쳐 알아차리지 못하게 서서히 우리의 일상을 파고든다.


전 세계적으로 12만 종이 넘는 화학물질이 존재하고 매년 수천 개의 새로운 화학물질이 개발된다. 그중 실생활에서 자주 사용되는 세정제, 방향제, 탈취제 등 국내 기준 총 39개의 화학제품 관리 대상은 2020년 10만5874개에서 지난해 20만7087개로 약 2배 증가했다. 우리는 아침에 일어나서 밤에 다시 잠들기까지 수많은 화학물질들에 둘러싸여 살아간다. 화학물질은 이제 현대사회에서 빼놓을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편리함에는 그만큼의 대가가 따르는 법일까. 화학물질의 유해성을 피부로 느낄 만한 사건 사고들이 최근 몇 년 사이에 끊이지 않고 일어 났다. 가습기살균제, 발암물질 정혈대, 라돈 침대 사건 등 대상이 된 제품들을 살펴보면 우리가 실생활에서 자주 사용하는 제품들이다.


제조·유통과정에서의 문제를 정부가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거나, 잘못된 사용법 때문에 부작용을 경험하는 소비자가 늘어났다. 이에 따라 화학물질에 대한 불안과 관심이 최고조에 이르며 케모포비아 현상이 발생하기에 이르렀다. 케모포비아(Chemophobia)는 ‘화학적인’이라 는 뜻의 케미컬(Chemical)과 ‘공포’를 뜻하는 포비아(Phobia)의 합성어로, 인체에 끼치는 유해성으로 인해 화학물질에 공포감을 느끼는 불안 심리를 말한다. 작년 7~8월 대한의사협회와 과학기자협회가 소비자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생활용품 안전성 인식 조사’ 에 따르면, 76%가 화학물질을 합성해 만든 제품은 위험할 수 있다고 답변했다.


말도 안되는 물건이 불러 온 죽음

가습기살균제 참사는 전 세계적으로도 전무후무한 화학물질에 의 한 참사이자, 케모포비아가 대중 사이에 공공연하게 자리잡게 된 계기 였다. 가습기살균제는 1994년 11월 유공(현 SK케미칼)에 의해 최초로 출시되었고, 이후 옥시, 애경 등의 기업들에서 후속 제품들이 쏟아져 나왔다. 부실 개발로 인한 대량 피해가 감지된 것은 17년이 지난 후였 다. 2011년 4월 서울아산병원 의료진이 임산부 등 원인 미상의 폐 질 환 환자 7명을 질병관리본부에 신고하면서 본격적으로 역학조사가 이 루어졌다. 가습기살균제가 의문의 폐 질환의 원인으로 밝혀져 그 해 11 월 제품 수거 및 판매 중단 명령이 내려졌을 때는 이미 천만 개의 제품 이 시장에 유통된 시점이었다.


가습기살균제 참사의 가장 직접적인 원인은 제조사의 ‘살인적 사용법’으로 꼽힌다. 가습기살균제는 물통에 직접 넣어 세균과 물때를 제거 하는 용도로 화학성분이 물과 함께 기체가 되어 인체에 직접 흡입된다. 사실 사람이 흡입할 수 있는 공기 중으로 살균제를 퍼뜨린다는 것은 최소한의 상식에서도 벗어나는 생각이다. 제품 개발자의 잘못된 발상이 안전을 검증하지 않는 기업의 무책임과 연결되었고, 제품을 감시 감독하지 않는 정부의 무능과 또 다시 연결되어 참사로 이어졌다. 소비자들은 ‘살균 99.9%’, ‘인체에 무해’, ‘아이에게도 안심’이라는 광고 문구에 속아 무방비하게 유해물질에 노출되었다.


가습기살균제 참사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기에 정확한 피해 규모 019 가 밝혀지지 않았다.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 (이하 사참위)에서 어림으로 추산한 피해 규모는 사망자 1만4천명, 환자 67만명에 달한다. 7월 13일 과거 기준에 미치지 못해 구제 급여를 받지 못한 피해자 110명이 추가로 인정받아 정부가 공식 인정한 피해자 수는 총 4,350명이 됐다. 그중 사망자는 1.048명이다. 실제 피해 사례에 비해 이 숫자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보다 안전한 세상에서 살아가기 위해

법과 정부, 국회는 가습기살균제 피해를 참사가 아닌 사건 또는 사고로 명명해왔다. 사전적 의미 상 참사는 ‘비참하고 끔찍한 일’, 사건은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거나 관심을 끌 만한 일’이다. 두 단어 사이에는 엄청난 간극이 있다. ‘사건’이라는 명칭과 함께 그 의미와 피해 규모도 피해자들의 고통에 비해 축소되었다. 특히나 가습기살균제 참사는 피해자가 전국에 흩어진 만큼 특정 단체가 대표성을 띠고 논의에 참여하거나 한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구조다. 문제가 제대로 매듭지어지지 못한 채 오랜 시간이 흐르면서 피해자들의 목소리는 서서히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져 가고 있다.








시민들이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감시를 하지 않으면 국회나 정부는 언제든지 강자의 편으로 돌아설 수 있다. 더 이상 기업이 만든 블랙박스에 갇혀 있어서는 안된다. 화학물질의 보이지 않는 공포 속, 당신의 하루는 정말로 안전하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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