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시선 디자인 파피
최근 금쪽 상담소를 통해 방송인 홍석천 씨의 이야기를 우연히 들 었다. 오랫동안 하나님을 섬기는 크리스천이지만 성경에 따르면 자 신은 불에 타서 죽을 죄인이라는 것이 힘들었다는 이야기를 하며 눈물을 흘리는 장면은 나에게 큰 인상을 남겼다. 퀴어와 개신교의 대립의 이미지에 익숙해져 종교 단체 속 퀴어의 존재를 잊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은 헌법으로 ‘종교의 자유’를 보호하고 있지만 한국 사회에는 성소수자 인권 보장을 위한 법제화 작업이나 사회적 편견 해결 같은 큰 과제들이 남겨져 있기 때문에 그들의 ‘종교의 자유’ 정도 는 나중에 해결해도 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종교는 인간에게 자유 추구 욕구, 그 이상의 가치이다.
알쓸신잡에서 김상욱 박사는 수천 년 간 종교가 비슷한 형태로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이 한 가지를 의미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바로 종 교는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가장 근본적인 합의를 갖 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질문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이웃을 사랑해 야 한다’, ‘악이 아닌 선을 추구하며 살아야 한다’ 같은 당연한 담론들은 상당 부분 종교에서 기원했다. 일종의 강력한 사회적 합의 같은 것이다. 종교를 믿는지, 어떤 종교를 믿는지에 상관없이 종교는 이미 강력한 관습의 근간이다. 이러한 역할을 하는 종교가 특정 소수자를 배척하라는 메시지를 전달한다면 이것은 서서히 사람들의 인식에 스며들 것이다. 따라서 퀴어와 종교 간의 관계를 조명하는 것이 단순히 ‘종교의 자유 지키기’만의 문제가 아님을 밝히며 글을 시작하려 한다.
♦종교마다 다른 성소수자 포용 정도
종교의 자유 보장 덕분에 여러 종교가 존재하지만 한국 사회 내에 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개신교, 불교, 천주교의 상황을 말해보려 한다.
♦성서에 따르면 동성애자는 정말 죄인일까?
그렇다면 성서의 말씀을 근거로 동성애자에 대한 혐오를 드러내고 있는 일부 개신교는 정말 정당할까. 실제로 성경에는 동성애를 반대하는 많은 말씀이 있지만 이 말씀들을 현대사회에서 곧이곧대로 해석하게 된다면 수많은 모순이 발생한다.
소수자에 대한 개인적인 혐오와 분노에 하나님이라는 정당성을 입히고 있지는 않았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성경 해석을 근거로 한 혼혈인, 흑 인, 여성 차별이 과거에는 당연했지만, 지금은 아무도 그것이 정당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종교 안에서 차별받아 마땅한 소수자는 없다. 언젠가는 “그때 교회에서는 동성애가 죄라고 생각했대!”라고 웃으며 말할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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