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반달가슴곰 솜이불
디자인 솜이불
'인터넷강국 대한민국', 이렇게 빠른 속도로 인터넷 연결이 원활하게 되는 나라가 또 있나 싶다. 정보통신 기술이 발전하면서 디지털 성범죄가 만연해졌다. 디지털 성범죄란, 카메라 등 디지털 기기나 기술을 매개로 온/오프라인 공간에서 발생하는 젠더 기반 폭력을 의미한다. 대검찰청 집계[1]에 따르면 성범죄 중에서도 카메라를 이용한 성범죄 발생건수는 2007년 564건에서 2018년 6,085건으로 약 11배 증가했다. 피해자가 피해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 경우와 정식으로 신고하지 않은 경우를 더해본다면 범죄의 규모는 이루 말할 수 없이 심각하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디지털 성범죄가 일상에 스며들어 나를 잠식하고 있다면 과연 어떤 조치를 취할 수 있을까?
기존 성범죄와 달리, 불법으로 촬영된 이미지 합성과 소비의 폭은 무한하게 넓다. 시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고 파일 공유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어마어마한 파급력을 바탕으로 끊임없이 여성에 대한 착취와 폭력이 되풀이된다. 생산자와 소비자의 경계가 불분명하다는 특성을 지녔기 때문에 1:n - 피해자:가해자 구도를 보이는데, 피해자가 영상을 삭제하거나 정식으로 수사를 의뢰하더라도 다수의 가해자들이 마음만 먹으면 익명성을 빌미삼아 재유포할 가능성이 있어 기존의 성범죄보다 피해자 2차 가해의 우려도 크다. 이런 특성을 가진만큼, 디지털 성범죄를 보도하는데 있어서 언론은 평소보다 더 신중을 기하여 피해자를 더 철저히 보호할 필요가 있다. 오래전부터 인식은 해왔으나 구체적인 모션(행동)은 취하지 않은 언론, 그들은 신중함 대신 자극을 택했다. 디지털 성범죄는 소라넷을 시작으로 n번방까지 끊임없이 변화를 꾀어내며 피해자들에게 고통을 안기는데 언론은 성범죄와 함께 바뀌어 가는 일상 속에서 어떤 역할을 맡았냐고,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언론이 해야 할 일'을 마땅히 수행해왔냐고 언론에게 물음표를 던져보려 한다.
언론의 디지털 성범죄 보도 한 눈에 보기
※디지털 성범죄 보도 관련 모니터 대상은 10개 중앙지 (경향신문/국민일보/동아일보/문화일보/서울신문/세계일보/조선일보/중앙일보/한겨레/한국일보)이며
모니터링은 한국언론진흥재단의 <빅카인즈>를 기반으로 이루어졌음.
1)소라넷 사건 설명: 1999년 개설돼 수많은 불법 촬영물과 성범죄 모의가 판을 치던 사이트이다. 이러한 악질적인 행태에도 불구하고 운영 당시 국내 최대 야동 사이트 등으로 표현되며 오래도록 성행했다. 하지만 운영 16년째인 2015년 등장한 소라넷아웃프로젝트의 #소라넷하니? 운동을 시작으로 소라넷의 만행이 공론화되기 시작해 2016년 4월 폐쇄되었다. 4명의 운영진 중 단 한 명만 처벌을 받았는데, 징역 4년을 선고받았다. 운영자 4인과 회원 100만 명 중 오직 한 사람만 처벌받은 것이다. 그마저도 사이트 운영 이익 수백억 원에 대한 추징이 파기되며 솜방망이 처벌로 마무리되었다.
소라넷 관련 기사는 총 833건, 인용문 1,762건, 사설 14건으로 검색되었다. 검색 기간[3]동안 소라넷 키워드는 2015년 12월 91번, 같은 해 11월에 85번, 2020년 3월 61번으로 가장 많이 언급되었으며 소라넷 기사 내에서 의미적 유사도가 높은 키워드(빈도수)는 음란물(1374번), 음란물 사이트(217번), 운영자(861번), 국내 최대 음란사이트(55번), 일베(393번) 순으로 나타났다. 대부분의 기사에서 소라넷을 음란 사이트로, 불법 촬영물을 음란물로 표현했다. 국내 최대 야동 사이트라는 표현을 그대로 사용한 기사들에서는 묘하게 소라넷을 추앙하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디지털 성범죄의 심각성에 대한 언론의 낮은 이해도를 여실히 보여주는 기사가 대부분이었다.
2)웰컴 투 비디오(W2V) 사건 설명: 세계 최대 아동 성착취물 공유 사이트이다. 운영자 손00의 미국 범죄인 송환 불허가 결정되었다. 2015년 7월부터 2018년 3월까지 다크 웹에서 유료 회원 4천여명에게 7,300여 회에 걸쳐 수억 원에 달하는 암호 화폐(비트코인)를 받고 총 22만 여건의 성 착취물을 배포한 것으로 수익은 약 4억 원, 구입자는 156명으로 파악됐다. 서버 IP를 이용하여 운영자인 손정우가 한국 충남 당진시 한 아파트에서 해당 사이트를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지고, 한국 경찰청과 미국 국토안보수사국(HIS), 영국 국가범죄청(NCA) 등 32개국 수사기관이 공조하여 웰컴 투 비디오의 운영자 및 사용자 318명의 신원 추적에 성공했다.
웰컴 투 비디오라는 단어를 포함한 기사를 워드클라우드[4]로 나타낸 그림이다.
웰컴 투 비디오(W2V) 관련 기사는 조사기간[5] 동안 총 207건, 인용문 516건, 사설 5건으로 검색되었다. '웰컴투비디오' 키워드는 2020년 7월 49번, 9월에 14번, 5월에 9번으로 가장 많이 언급되었다. 토픽랭크 알고리즘 조사 결과, 웰컴 투 비디오 기사 내에서 의미적 유사도가 높은 키워드(빈도수)는 '손씨'(635번), '아동 성착취물'(76번), '다크웹'(76번), '세계 최대 아동'(60번), '운영자'(143번) 순으로 나타났다.
텔레그램 성착취물(n번방) 사건이 터지면서 이전에 발생한 웰컴 투 비디오 사건도 재조명을 받게 되는데, 특히 다크 웹 운영자 손정우의 출소가 임박하면서 언론의 관심이 크게 증가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건 1년 전 당시에는 가해자 검거를 비롯해 이 사건이 주요 이슈로 보도되지 않았다는 것. 언론이 꾸준하게 웰컴 투 비디오 사건에 대해 취재하고 목소리를 냈다면 좋았을 걸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3)텔레그램 성착취물(이하 n번방) 사건 설명: 성인/미성년자의 성착취물을 공유, 판매하는 텔레그램 대화방(2018.02~2019.06)으로 성착취물 공유방의 시초이다. 가해자들은 피해 여성들을 '노예'로 부르며 협박을 통해 얻은 성 착취 영상 등을 이용, 'n번방' 참가비 명목으로 수익을 남겼으며 수십여명의 여성을 협박해 성 착취 영상 촬영을 강요하고 이를 수 만명에게 판매한 사건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성 착취 영상을 보고자 수백만원씩 돈을 내고 텔레그램 비밀방에 들어간 소위 유료방 접속자가 최소 1만명에 이른다는 점, 'n번방'에 참여한 남성의 수가 일부 남성들이 아닌 구 인구 수에 이를만큼 26만명이라는 큰 숫자이기에 경찰도 입을 다물고 있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텔레그램 성착취'라는 단어를 포함한 기사를 워드클라우드[6]로 나타낸 그림이다.
텔레그램 성착취물 관련 기사는 조사기간[7] 동안 총 4,609건, 인용문 9,398건, 사설 66건으로 검색되었다. 근래에 일어난 성범죄 중 사회적 파장이 가장 큰 사건으로, 가해자들이 저지른 범죄보다 가벼운 처벌을 받지는 않을까 우려되는 바이다. 'n번방' 키워드는 2020년 3월에 1,369번, 4월에 1,354번, 5월에 765번 언급되었는데 지금까지도 매월 100번 이상 언급되는 것을 보면, 텔레그램 성착취물 사건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과 분노가 얼마나 높은 지 체감할 수 있다. 토픽랭크 알고리즘 조사 결과, n번방 기사 내에서 의미적 유사도가 높은 키워드(빈도수)는 '텔레그램'(2,503번), '박사방'(815번), '착취물'(1137번), '미성년자'(584번), '갓갓'(987번) 순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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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는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키고, 진실을 알릴 의무를 가진 언론의 최일선 핵심존재로서 공정보도를 실천할 사명을 띠고 있으며, … 다른 어떤 직종의 종사자들보다도 투철한 직업윤리가 요구된다.”
한국기자협회 윤리강령의 일부를 발췌한 것이다. '투철한 직업윤리가 요구된다'는 강령이 무색하게 여전히 일부 기자들은 가장 기본적인 윤리의식조차 부재한 기사를 써내고 있다.
재작년 말 텔레그램 집단 성착취 사건의 공론화를 이끈 추적단 불꽃은 2020년 4월의 한 인터뷰[8]에서 이렇게 밝혔다. "그래서 이제는 되도록이면 언론과 인터뷰를 안 하려고 한다. 지인들이나 가족이 신상 노출을 걱정하기도 하고, 사건이 아닌 '추적단 불꽃'에 이목이 끌리다 보면 불꽃이 영웅화되고 동시에 타깃이 될 수 있다는 점이 우려된다. 또한 알려질 것이 두려워 아직 경찰에 신고하지 못한 피해자들이 있다. 그래서 그분들을 돕는 데 매진하고자 한다." 또, n번방에 잠입 취재한 한겨레 오연서 기자는 2020년 4월 17일 기사를 통해 "정작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은 따로 있었다. 기사가 나가도 아무런 반응이 없는 사회, 여전히 활보하고 심지어 피해자를 더욱 조롱하는 가해자들, 기사를 통해 텔레그램 성 착취 세계에 새로 참여한 사람들의 존재, 보도 이후에도 나에게 ‘대화 좀 하자’며 위풍당당하게 텔레그램으로 말을 걸어온 박사 조 씨의 행동이 나를 힘들게 했다."며 기자로서의 죄책감과 무력감에 시달렸다고 밝히기도 했다. 안타깝게도, 아픔과 분노가 채 가시지도 않은 피해자들이, 진실을 알리려 노력하는 이들이 두려움에 떨고 무력감에 빠져야만 하는 이 상황이 대한민국의 현주소인 것이다.
추적단 불꽃은 해당 인터뷰에서 또 이렇게 덧붙였다. "기자는 사건을 제일 먼저 보는 사람이고 사건의 해결에 큰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 중 한 명이다. 그러나 여태까지는 그저 보도를 통해 팩트를 알리는 것에 그쳤다. 앞으로는 기자의 직무를 넓혀 피해자 보호에 함께 힘써줬으면 한다." 언론은 클릭 유도성, 일회성, 선정적인 보도에서 탈피해야 한다. 디지털 성범죄 근절과 피해자 보호에 힘써야 한다. 더불어 가해자가 합당한 처벌을 받을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후속 보도를 이어가야 한다. 가장 기본적이고 당연한 것을 이렇게 오랫동안, 수많은 이들이 바라고 있다는 사실이 원통하다. 하지만 여전히 바란다. 편안하게 기사를 볼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무너지는 보도윤리’ 따위의 제목을 내건 글이 더 이상 나오지 않는 날이 오기를, 간절하게 바란다.
1 대검찰청(2019), 「2019 범죄분석」
2 소라넷 키워드를 의미적 유사도 순서에 따라 가중치 정보로 나타낸다. 가중치는 토픽랭크 알고리즘에 기반하여 출력됐다. 빅카인즈, 한국언론진흥재단
3 기간은 사건이 발생한 시점부터 2020년 10월 31일까지의 기사로 한정했다.
4 웰컴 투 비디오 키워드를 의미적 유사도 순서에 따라 가중치 정보로 나타낸다. 가중치는 토픽랭크 알고리즘에 기반하여 출력됐다. 빅카인즈, 한국언론진흥재단
5 기간은 2018년 1월 1일부터 2020년 10월 31일까지의 기사로 한정했다
6 텔레그램 성착취 키워드를 의미적 유사도 순서에 따라 가중치 정보로 나타낸다. 가중치는 토픽랭크 알고리즘에 기반하여 출력됐다. 빅카인즈, 한국언론진흥재단
7 기간은 2020년 1월 1일부터 2020년 10월 31일까지의 기사로 한정했다.
8 “[단독] 조주빈 폰엔, 여성 연예인 2명 ‘충성사진’ 있었다”, 조선일보, 2020.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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