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서 우리는 무사할 수 있을까요

대학생의 시선에서 바라본 권력형 성범죄

by 자치언론 파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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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솜이불


장마를 앞두고 무더웠던 지난 7월의 어느 날, 퇴근하신 아버지가 인사를 채 나누기도 전에 TV를 키셨다. 뉴스에서는 박원순 전(前)서울시장의 실종 보도가 반복되고 있었다. 몇 시간이 지난 후, 실종 전날 그가 성추행으로 피소되었다는 사실이 보도되었다.


안희정 전 충남지사(수행비서 김지은씨 성폭행 및 성추행으로 징역 3년 6월 선고 받고 복역 중)와 오거돈 전 부산시장(보좌진 성추행으로 부산시장직 사퇴)이 뇌리를 스쳤다. 기시감이 들었다. 전 서울시장이 발견된 것은 이미 그가 진실을 아는 입, 피해자에게 사죄할 수 있는 입을 막은 이후였다.

안희정 성폭력 사건, 오거돈 성추행 사건, 박원순 성추행 피소 사건은 공통된 맥락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가해자와 피해자가 같은 조직 안에서 계급과 권력의 차이가 명백한 상하 관계에 있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계급 권력에 의한 각종 성폭력을 ‘권력형 성범죄’라 한다.


우리나라의 현행 형법 제303조 제1항에서는 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간음죄[1]를,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10조 제1항에서는 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추행죄[2]]를 규정하고 있다. 대법원에 의하면[3]‘위력’이란 피해자의 자유의사를 제압하기에 충분한 세력을 말하고, 유형적이든 무형적이든 묻지 않으므로, 폭행과 협박 뿐 만 아니라 행위자의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인 지위나 권세를 이용하는 것도 가능하다.


업무상 위력을 수단으로 이루어지는 성범죄는 주로 가해자가 피해자의 동의를 받아 간음. 추행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위력을 수단으로 하는 성폭력범죄에서는 유효한 동의가 없다는 점에서 간음.추행이 피해자의 진정한 의사에 반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으나, 외형적으로는 피해자의 동의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에서 폭행.협박을 수단으로 하는 성폭력범죄와 구별된다.[4]


이 때문에 피해자는 오로지 가해자의 위세와 권력 때문에 명백한 의사를 표시하지 못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가해자는 피해자의 의사를 왜곡하여 피해자의 동의가 있는 것처럼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는 것이다.[5]


“말할 수 없음. 문제제기 할 수 없음. 그것이 바로 위력입니다.” (『김지은입니다』 139쪽)

또한 폐쇄적이고 수직적인 집단일수록 위력을 수단으로 하는 성범죄의 피해 사실을 밝힌 피해자는 인사 보복은 물론, 조직적인 입막음과 피해자 개인에 대한 음해, 그리고 2차 가해까지 감당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내가 들었던 말은 “너 말고 그 자리 앉힐 사람 많아” 였다. 그러니 감수하라고 했다. “앞으로 이런 비슷한 일로 또다시 시끄럽게 한다면 오히려 잘리는 건 너야”라는 메시지를 강하게 받았다.” (『김지은입니다』, 123쪽)


앞서 언급한 공공기관 내 성범죄는 가해자들이 선출직 공무원이라는 점에서 큰 사회적 파장을 일으킬 수 있었다. 일반 사기업의 경우라면 피해자의 고발은 더욱 쉽지 않을 것이다. 2020년 여름에 개봉한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밤쉘: 세상을 바꾼 폭탄 선언>의 대사는 권력형 성범죄가 은폐되기 쉬운 기업의 구조를 보여준다.


“여기서 익명 핫라인이 무슨 쓸모가 있어? 월급 주는 사람을 변태라고 불러봐. 그 사람이 관리하는 익명 핫라인에 신고해. 계약상 통화 내용은 다 녹음되겠지. 웃기고 있네. 여자들이 바보야? 누가 네 옷을 벗겼는데 그걸 증명하라며 나체로 걸으란 소리잖아.”


필자는 권력형 성범죄와 관련된 일련의 사건들을 보며 끝없이 이어지는 분노와 큰 무력함을 느꼈다. 직장이 여성에게 안전한 공간이 될 수 없다면, 우리가 그곳에 가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맞는 걸까, 길을 잃은 것 같았다. 하루하루를 치열하게 살아내는 선배와 동기들을 보면 더욱 씁쓸해졌다. 열심을 다해 발 딛은 그 곳에서 보호받지 못한다면 현재의 노력은 무엇을 향해있는 걸까. 부푼 꿈을 안고 입사했을 권력형 성범죄 피해자들의 표정을 떠올리면 아찔해졌다.


하지만 권력형 성범죄에 대한 공포가 새롭지는 않았다. 수 많은 스쿨 미투 사례가 증명하듯, 우리의 10대도 결코 안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학도 다르지 않다. 학생들의 진로 선택에 필수적인 학점과 졸업 여부, 학계에서의 인정을 쥐고 있는 교수와 학부생, 대학원생의 관계 혹은 선후배 관계 안에서도 권력형 성범죄는 발생할 수 있다.


하지만 가해자에 대한 대학 사회의 처벌은 구두경고처분 혹은 몇 개월의 정직에 그치고 그 마저도 드문 사례다. 가해자와의 분리나 가해자에 대한 합당한 징계 없이, 그저 피해자가 졸업해서 학교를 떠나는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청소년이었던 우리는, 대학생인 우리는, 저곳에서 살아남아 이곳으로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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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형법 제303조 제1항에서는 “업무, 고용 기타 관계로 인하여 자기의 보호 또는 감독을 받는 사람에 대하여 위계 또는 위력으로 간음한 자는 7년 이하의 지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라고 하여, 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간음죄를 규정하고 있다.

[2]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10조 제1항에서는 “업무, 고용이나 그 밖의 관계로 인하여 자기의 보호, 감독을 받는 사람에 대하여 위계 또는 위력으로 추행한 사람은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라고 하여, 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추행죄를 규정하고 있다.

[3] 2014.10.15 선고 2014도9315 판결

[4] 김태명, 「권력형 성범죄의 처벌과 비동의간음, 추행죄의 도입」, 『법학연구』 제57호, 전북대학교 법학연구소, 2018.9, 143면

[5] 서혜진, 「사례를 통해 본 권력형 성폭력 범죄의 특성 및 문제점」, 『법학연구』 제56호, 전북대학교 법학연구소. 2018. 5, 17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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