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지구, 함박 디자인 지구
K-pop, K-culture, K-webtoon, K-drama.
최근 한국 문화는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한류 열풍의 중심이었던 한국 드라마, 영화에서 더 나아간 K-문화의 유행은 한국을 전 세계에 알리는데 이바지했다.
그러나 기업이 팬을 대하는 자세는 과거와 달라지지 않았다. 팬덤의 체급이 커지는 만큼 더 오만한 자세로 팬들을 ‘다루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빠순이’라는 멸칭에서 알 수 있듯 과거부터 특히 여성 팬을 향한 멸시는 보편적이었다. 그러나 최근 기업체-팬 간의 논란을 보면, 그들은 여성 팬을 멸시하고 낮잡아 보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직접 그 가해의 주체가 됨으로써 팬들, 특히 어린 여성 팬들을 상대로 관계의 우위를 점하고자 한다. 정당한 ‘소비자’이면서도 그보다 훨씬 못한 취급을 받으며,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이유로 ‘빠순이’들은 만만해진다.
최근 아이돌 시큐(시큐리티; 경호원)의 과잉 경호가 여러 차례 논란이 됐다. 공통점은 아이돌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팬을 막는 것이 아니라 팬에게 폭력을 행사한다는 것이다. 특히 공개 스케줄의 경우 당연히 기자와 팬들이 몰리게 되는데, 기업의 관리 없이 오로지 팬들에게만 현장 질서의 책임을 전가하면서 연예인 보호라는 명목으로 팬을 위협한다. 연예인이 도착하기 전 시큐를 투입하여 사전 질서를 관리하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서울EN 연예팀. 2015. 엑소 매니저, 엑소팬 폭행 ‘전치2주’ 결국 벌금형 선고... 당시 상황보니 ‘경악’. 서울EN.
이런 시큐의 폭행 사태는 과거부터 꾸준히 있었다. 2015년에는 모 아이돌의 매니저가 공항에서 사진을 찍던 팬을 폭행하여 벌금형을 선고받았으며1, 최근까지도 남자 아이돌 B, 여자 아이돌 H 등 시큐가 팬을 적극적으로 밀치고 상해를 입히는 과잉 경호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구민지. 2023. 보이넥스트도어, 과잉 경호 사과... “피해자에 연락, 재발 막겠다”. 디스패치.
이유나. 2025. “걸그룹 경호원이 팔꿈치 가격”...연예인 과잉 경호 논란 재점화. YTN.
수많은 사례와 비판에도 불구하고 계속 이런 사태가 벌어지는 것은 팬을 소비자임에도 불구하고 ‘을’로 간주하는 탓이 크다. 팬을 ‘을’ 취급하는 문화는 특히 콘서트 시즌에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콘서트에선 매번 ‘본인 확인’을 명목으로 팬의 모든 개인정보를 검증하는 일이 당연하게 벌어진다. 문제는 직접 예매한 티켓이 있는데도 이런 과잉 검열 때문에 입장하지 못하는 경우가 흔하다는 것이다.
최근 D그룹의 팬미팅에선 갑작스러운 본인인증 강화로 팬미팅에 입장하지 못한 팬들의 후기가 속출했다. 위 사례에서 한 팬은 경찰을 대동하여 본인의 신분을 증명하고, 경찰 입회하에 신원조회까지 했음에도 운영진 측에서 인정하는 신분증이 없다는 이유로 티켓을 받지 못했다
금빛나. 2025. “빠순이라 만만해?”... 데이식스 팬미팅 논란 속 숨겨진 불편한 진실 [MK★초점]. MK스포츠.
이처럼 아이돌 산업이 팬을 대하는 방식은 매우 착취적이고 수직적이다. 팬들이 주 소비자일 뿐만 아니라 수입원이라는 점에서 참 아이러니한 대우다. 특히 젊은 여성 팬이 대부분인 남자 아이돌 그룹에서 유독 이와 같은 사례가 많이 보인다. 같은 업계의 여성 위주 팬덤이어도 연령대가 낮아 부모님의 개입이 많은 아이돌 그룹이나, 연령대가 높은 트로트 가수가 친절한 응대로 소문난 것과는 아예 반대되는 행보이다. 이를 통해 엔터사의 도 넘는 팬 취급이 젊은 여성들의 약자성에 편승하고 있다는 것을 추측할 수 있다. 아이돌 팬들은 오늘도 수난 시대다.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현상이 아이돌 산업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투디 여성 팬들도 수난시대다. 오프라인 무대에서 남자 아이돌을 소비하는 여성 팬들의 위치가 불안정하다면, 온라인 2D 콘텐츠에서도 여성 팬들은 비슷한 경험을 겪는다. 2D 속 여성 캐릭터의 재현 방식은 현실(3D)보다도 폭력적인 경우가 많다. 수많은 남성향 작품 속에서 여성 캐릭터는 주체적인 인물이라기보다 남성 주인공의 동기부여, 성적 소비, 혹은 장식품에 불과하다. 여성의 고통이나 죽음은 서사의 장치로 소모되고, 성적 대상화는 오히려 개그나 자극으로 포장된다. 여성 캐릭터는 가장 쉽게 희생될 수 있는 존재이자, 산업이 별다른 리스크 없이 마음껏 활용할 수 있는 ‘도구적 서사 장치’로 기능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2D 여성 팬덤이 느끼는 수난은 단순히 소비자 취급의 문제를 넘어, 자신이 소비하는 텍스트 속 여성의 자리가 얼마나 부당하게 그려지는가와 직결된다. 즉, 매체와 장르는 다르지만 여성 팬덤은 공통적으로 산업 구조 속에서 ‘언제나 충성하는 소비자이자 동시에 가장 손쉽게 무시할 수 있는 집단’으로 자리매김한다. 이 글에서 중심이 될 네이버웹툰은 한국 웹툰 시장을 독점하다시피 하는 1위 플랫폼으로, 그만큼 많은여성 독자층을 확보하고 있음에도 이들을 존중하지 않고 오히려 반복적으로 배제하고 착취해 왔다.
네이버웹툰은 다수의 인기 웹툰 작품에서 여성혐오적 표현이 반복적으로 등장하며 비판을 받아왔다. 기안84의 『복학왕』 304화 「광어인간 2화」에서는 여성 캐릭터가 상사와의 성관계 이후 정직원으로 채용되는 장면이 묘사되었고, 이는 성적 대가를 전제로 한 취업 서사라는 점에서 여성의 도구화 및 성적 희화화라는 비판을 초래하였다.
인기웹툰인 박태준의 『외모지상주의』 역시 여성 캐릭터의 성적 대상화와 성폭력 정당화 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되었으며, 전선욱의『프리드로우』 또한 여성혐오적인 내용에도 네이버 웹툰 1위를 차지하며 인기를 끌었다.
반면, 남성혐오로 지적된 사례에서는 이례적으로 신속한 대응이 이루어졌다. 웹툰 『전지적 독자 시점』에서 여성 캐릭터의 손 모양이 이른바 ‘집게손’과 유사하다는 이유로 남성 커뮤니티에서 논란이 발생하자, 플랫폼은 해당 장면을 즉시 수정하였다. 이후 유사한 표현을 자제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었고, 이는 콘텐츠 업계 전반의 공통된 기조로 이어졌다.
웹툰 『화산귀환』 또한 원작 소설의 표현(‘청명이 엄지와 검지를 딱 두 배만큼 띄웠다’)과 달리 손바닥을 맞붙이는 장면으로 표현한 점 등을 보면 여성혐오에는 관대하면서도, 남성 이용자 중심의 항의에는 즉각 반응하는 검열의 이중잣대를 추측할 수 있다.
『이세계 퐁퐁남』은 불매운동의 직접적 촉매가 된 작품으로, ‘퐁퐁남’이라는 인터넷 혐오어를 전면적으로 차용하면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퐁퐁남’은 성관계 경험이 많은 여성과 결혼한 남성을 비하하는 표현으로, 여성을 ‘사용된 물건’에 빗대는 여성혐오적 의미를 내포한다. 작품 속 주인공은 이세계에서 “결혼 전 성 경험이 없는 순결한 여성”을 만나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는데, 이는 여성의 성적 자기 결정권을 폄훼하고, 인간의 가치를 성적 경험 여부로 환원하는 전형적인 젠더 혐오 서사다.
이 작품이 베스트도전에 승격되자, 여성 이용자들을 중심으로 대규모 불매운동이 전개되었다. 불매운동의
장기화는 플랫폼의 이용자 구성에도 변화를 불러왔다. 여성 이용자들의 이탈로 상대적으로 남성 소비자의 비중이 높아졌고, 그 결과 댓글창은 더욱 공격적이고 혐오적인 언어가 난무하는 공간으로 변질되었다. 커뮤니티 역시 ‘남초 감성’이 강화되며 여성향 작품과 그 작가들이 집중적인 피해를 입었다. 플랫폼 전반이 특정 성별의
정서를 일방적으로 반영하는 구조로 기울게 된 것이다.
이처럼 『이세계 퐁퐁남』 사태는 단순히 한 작품의 논란을 넘어, 젠더 감수성이 결여된 플랫폼 운영이 이용자 환경 전반을 어떻게 악화시킬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같은 팬이라도 남성보다 여성이 더 혐오 당한다. 여성들은 웹툰이라는 취미를 한순간에 잃어버렸다(실제로 잃어버리지 않았더라도, 배신당했다 내지 변하지 않는구나 하는 탈력감은 존재할 것이다). 24년 10월 발생한 이 사태가 벌어진 지 이제 1년이 되어간다.
왜 아이돌 기획사든 콘텐츠 제작사든, 결국 가장 강력한 소비자이자 지지 기반인 여성 팬들을 끝내 존중하지 않는 것일까? 웹툰 산업에서는 여성혐오 코드가 남성 독자층을 겨냥한 상업 전략으로 반복 활용되고 있다. 성인 유료 플랫폼 경쟁 속에서 ‘일진물’ 등 자극적 장르가 확산하며 전략적 여성혐오가 유리한 선택이 되고 있다. 또한 시장 포화와 이용자 이탈 속에서 플랫폼과 작가는 주목을 얻기 위해 더 자극적인 서사를 추구한다. 이 과정에서 여성혐오와 같은 혐오 코드가 생존 전략으로 재생산된다.
보통 사람은 주고 받는 사랑을 기대한다. 그러나 ‘빠순이’라 불리는 여성 팬들은 그럴 수 없다. 그들의 사랑은 “너네 오빠는 너 몰라”, “저런다고 누가 알아주나”, “현생을 살아”라는 식의 조롱과 혐오의 대상이 되기까지 한다. 왜 여성 소비자들은 사랑도 돈도 감정도 다 쏟아내면서도 되돌려받기를 기대할 수 없는가?
좋아한다는 감정이 곧 약점으로 전락하고 있다.
사회는 팬심을 미성숙한 감정으로 낙인찍고, 산업은 이를 착취할 수 있는 자원으로 바라본다. 이제는 작품과 작가를 넘어 연예인, 나아가 플랫폼과 소속사의 행태를 살펴야 할 때이다. 끝내 되돌려받지 못하는 사랑을 바치는 지고지순한 팬들의 자리에 응원의 말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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