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댓말과 반말 사이의 기묘한 모험: 평어

by 자치언론 파란

이채 디자인 이채



대학 입학 후 처음으로 들어간 만화 동아리에는 독특한 규칙이 있었다. 이름 대신 별명을 사용하고, 서로를 ‘OO님’으로 부르며 상호 존대를 해야 한다는 것. 동아리방 문을 열고 들어가면 나와 같은 학년의 친구들부터 몇 학번 위의 선배들까지 만날 수 있었다. 우리는 동아리방 소파에 걸터앉아 선배, 후배라는 호칭에 구애받지 않고 마음껏 관심사에 대한 이야기들을 쏟아냈다. 모두가 나이나 학번이 주는 거리감에서 벗어나 동등한 위치에서 하고 싶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은 그곳이 처음이었다.




전문은 <파란 7호: 죽지 않는 것들>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모험의 언어가 향하는 곳은

언젠가부터 사회 곳곳에서 우리는 소통 구조 자체의 변화를 필요로 하기 시작했다. 영어 호칭을 도입하고 다 같이 존댓말을 쓰거나 간혹 반말을 시도하는 회사들이 생겨나고 있다. 이러한 노력들에도 불구하고 쉽게 구성원들 사이에서 문화로 정착하지 못하는 이유는 본질적인 인식의 변화가 어렵기 때문이다. 생각하는 방식의 변화가 수반되지 않은 상태에서 호칭만 바꿔 부르는 건 실패의 가능성이 높다. 나이와 권위 체계가 분명한 한국에서 살아온 우리는 더더욱 그렇다. 하루아침에 평생 써 온 언어와 사고 체계를 한꺼번에 바꾸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대학 강의 시간에 평어를 도입해 화제가 되었던 김진해 경희대 교수는 평어 쓰기만으로 위계질서를 허물어뜨리지는 못하지만 말의 질서를 확인하는 데 목적이 있다고 말했다. 언어가 위계질서와 얼마나 견고하게 결속되어 있는지 체감하는 것이다.


한국사회에서 완전한 수평 관계가 가능할까? 하지만 평어가 그 질서에 돌을 던지는 역할을 해줄 것임은 분명해 보인다. 조심스레 평어를 도입해보는 곳이 하나 둘씩 늘고 있다고 한다. 평어를 설계한 이성민 번역가는 평어를 ‘모험의 언어’라고 부른다. 평어는 모험을 가능하게 해주는 언어고 평어를 쓰는 사람들은 함께 모험하는 사람들이다. 평어라는 작은 돌이 세상에 미칠 파장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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