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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차 불거진 재현의 윤리
최근 문학계에서 또 다시 사생활을 작품에 무단으로 도용당한 피해자의 외침이 울려퍼졌다. 도마 위에 오른 건 정지돈 작가의 『야간 경비원의 일기』, 『브레이브 뉴 휴먼』이었다. 불과 몇 년 전 김봉곤 작가와 김세희 작가가 동일한 사안으로 논란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작가가 같은 실수를 반복했다. 예나 지금이나 쟁점이 된 부분은 모두 작중에 실재하는 인물과 사건을 재현하여 피해를 끼쳤다는 점이다. 피해자들은 지극히 사적인 일상이 사전 동의 없이 만천하에 공개되어 겪는 고통을 토로하고 있다.
현재 수많은 작가들이 리얼리즘, 오토픽션을 표방하여 작품에 자신의 경험을 싣고 있다. 이러한 경향이 뚜렷해질수록 당사자의 허락을 구하지 않거나, 별도의 각색이나 수정을 거치지 않고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일 역시 늘어난다. 문학 작품은 아니지만, 영화 『극비수사』와 『암수살인』이 모티브가 된 사건의 피해자나 그 (유)가족의 동의를 구하지 않고 제작되어 물의를 빚었다. 최근에는 SNS상에서 자신이 보고 들은 사건을 일상웹툰으로 그려낸 작가가 대중의 비판을 받기도 했다. 도박 중독으로 인한 비극을 흥미로운 가십거리로 다룸
으로써 당사자의 고통에 민감하지 못했다는 의견이 있었기 때문이다. 작가가 극한의 리얼리즘을 추구해서 아무리 핍진하게 현실을 묘사하더라도 보통 독자는 알 길이 없다. 독자는 픽션이라는 틀 안에서 벌어지는 일이 실화이든 완전한 허구이든, 그저 가공 세계의 일종으로 받아들일 뿐이다. 그러나 자신도 모르는 새 소설을 통해 실존하는 타인의 민감정보를 알게 된 독자는 “기만당했다”는 불쾌감과 함께, “작가의 가해에 일조했다”는 죄책감을 느낀다. 윤리적 책임과 사회적 신의를 저버린 작가는 도덕적 해이의 표본으로서 신뢰 자본을 무너뜨린다. 단순히 사생활을 무단으로 도용당한 당사자와 작가만의 일이 아닌 것이다. 무엇보다 타인의 삶은 소재가 아니다. 사람의 인생은 게으른 작가들의 글 몇 편에 함축될 수 없다. 게다가 픽션이 순도 높은 현실의 모방에 지나지 않는다면, 어디까지가 창작의 영역이라고 할 수 있을까.
비슷한 일이 반복되는 게 과연 작가만의 책임일까? 출판계는 이러한 사태에 적절한 대응을 했는지 의문이 남는다. 2020년 출판사 창비와 문학동네는 김봉곤 작가 관련 논란이 발생한 지 2주 안에 판매 중지를 거쳐, 독자의 요청에 의한 환불 절차를 밟았다. 2021년 민음사 역시 김세희 작가의 소설 『항구의 사랑』을 판매 중지하기까지 3주가 걸렸다. 사생활 무단 도용 문제가 처음 제기된 2020년으로부터 4년이 지났다. 이런 상황을 대비해 매뉴얼이 만들어졌더라도 이상하지 않을 시간이다. 그래서 더욱이 출판사들의 발빠른 후속 대처가 이루어지리라 기대했다.
그러나 2024년 6월 23일, 김현지 씨의 공론화 이후 출판사들은 실망스러운 행보를 보였다. 정지돈 작가의 소설 『야간 경비원의 일기』의 출판사인 현대문학은 25일 공식 ‘X(구 트위터)’ 계정에 “정지돈 작가의 소설 『야간 경비원의 일기』는 작가의 요청에 따라 판매 중단하게 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라고 적힌 이미지와 함께 “6월 22일 김현지 씨가 본인 블로그에 정지돈 작가의 『야간 경비원의 일기』에 대한 문제제기를 했고, 정지돈 작가는 6월 25일 본인 블로그에 김현지 씨에 대한 사과와 해당 도서 판매 중단에 대한 입장을 표명
했습니다.”라는 글을 게시했다. 하지만 사건 경위에 관한 출판사측 입장을 밝히지 않아 대중의 공분을 샀다. 그저 건조하게 사실을 나열하고 있을 뿐, 사태에 대한 책임을 통감하는 어떠한 표현도 없었기 때문이다.
소설 『브레이브 뉴 휴먼』의 출판사 은행나무 또한 27일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에 “작가와 논의 중이며 후속 조치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예정되었던 사인회와 북토크 등 관련 행사들도 모두 취소하였습니다.”라는 내용이 담긴 이미지를 게시했다. “이 논란이 창작 윤리 문제에 대해 공론화 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라며 독자에게 사과했다. 그러나 게시물에서 언급한 “절판, 판매, 수정 후 재출간, 회수 등 논의하고 합의해야 할 사안”과 관련한 후속 조치는 9월 14일 현재까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다. 해당 도서는 아직까지 유명 온라인 서점에서 구매가 가능하다. 기약없는 기다림이 계속되고 있다. 문학계와 출판계는 이번 사건이 문단 내 권력의 실상을 보여주는 사례가 될지, 공론장을 통해 변화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계기가 될지, 독자들이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수많은 이들이 다년간 고은 시인의 성폭력 가해 사실을 쉬쉬할 정도로 그의 문단 내 권력은 공고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영미 시인의 고발의 여파로 고은 시인의 작품세계를 조명하는 서울도서관의 ‘만인의 방’이 철거되었다. 게다가 최영미 시인의 폭로 이후, 그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한 고은 시인은 1심과 2심에서 모두 패했다. 그의 공적은 미투 운동의 격랑과 함께 문단에서 하나둘씩 사라졌고, 이내 완전히 퇴출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고은 시인은 5년 후, 2023년 1월 시집을 내며 문단에 복귀했다. 무려 5년간 침묵을 고수한 그가 일언반구 없이 돌아온 것이다. 그의 신작을 출간한 실천문학사는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작년 1월 17일부로 서점에 도서 공급을 중단했었으나, 작년 7월 말부터 공급을 재개했다. 시집은 주요 온라인 서점에서 버젓이 판매되고 있다. 실천문학사는 지난해 5월 고은 시인과 관련한 설문을 받기도 했으나, 설문 문항에서 고은 시인의 작품 활동 지속을 정당화하기 위한 의도가 드러나 빈축을 샀다. 실천문학사의 대표는 “헌법 21조가 부여한 기본권
인 표현의 자유”를 내세워 고은 시인의 행보를 비호했다. 뒤이어 여러 문인들의 성폭력 가해 공론화가 이루어졌고, 피해자들은 피해 사실을 인정받기 위해 분투했다. 그러나 피해자를 향한 의심 어린 시선과 편견은 아직도 문단 권력 한 켠에 자리하고 있다. 페미니즘이 문학계의 뜨거운 감자로 부상한 지 벌써 꽤 되었다. 날이 갈
수록 여성 문인의 입지와 위상 역시 드높아지고 있다. 그러므로 문학계 및 출판계는 자정 차원에서 의식 개선 프로그램 등 권력형 성폭력을 막기 위해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문단 내부의 폐쇄적인 공기를 환기하지 않는다면, ‘괴물’들의 고질적인 횡포는 계속될 것이다.
영감, 오마주, 혹은 표절
표절은 모든 예술의 영역, 특히 문학계에서 매우 민감한 사안이다. 동시에 객관적으로 판단하기 어려운 주제이기도 하다. 표절이라는 개념 자체가 주관적이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의 유사성부터 표절이라고 할 수 있는가? 문장이나 묘사가 동일하다면 표절로 봐야 하는가? 혹은 소재와 글의 구성이 비슷하다면 표절이라고 여겨야 하는가? 일상에서 흔히 얻을 수 있는 소재라도, 겹치는 요소가 다수 존재한다면 표절인가? 특정 주제와 스타일이 유행할 때 쏟아지는 비슷한 글들은 전부 표절이라고 할 수 있는가? 표절에 대한 생각은 사람마다 다르고, 그만큼 판단이 어려운 이슈이다. 그러나 다수의 사람에게 명백히 표절로 받아들여지는 사건도 발생하고는 한다.
표절 이슈로 자숙하며 대중들의 외면을 받았던 그는 2019년 창비 계간지 여름호를 통해 『배에 실린 것을 강은 알지 못한다』를 발표하며 복귀하였다. 이후 2021년에는 『아버지에게 갔었어』, 2023년에는 『작별 곁에서』를 출간하며 꾸준히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대중들의 반응은 여전히 싸늘하다. 대중들은 더 이상 ‘이전의 신경숙 작가’만큼 ‘표절 논란 작가 신경숙’을 사랑하지 않는다. 특정 작품에서 표절했다고 해서, 나머지 출판물의 작품성까지 의심받아야 하는 것일까? 표절 작가는 다시 인정받으면 안 되는 것일까? 혹은, 여러 책을 표절하여 문학계에 피해를 준 작가가 뛰어난 재능을 이유로 쉽게 복귀해도 되는 것일까?
다른 예를 들어 보자. 반독재투쟁의 상징으로 여겨지며 민중 가요로 발전했던 김지하 시인의 시 『타는 목마름으로』가 폴 엘리아르의『자유』를 표절했다는 주장이 제기된 적이 있다. 해당 작품이 표절인지, 아니면 단순히 특정 작품의 영향을 받은 것인지에 대한 합의는 이루어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타는 목마름으로』가 한국 현대사에 거대한 영향을 미친 작품인 데다, 원작자인 김지하 시인이 독재에맞섰다는 것을 이유로 비판의 수가 현저히 적었기 떄문이다. 표절 논란이 제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해당 시는 여전히 민주주의의 상징처럼 여겨지고 있다. 그러나 작품성이 높고, 민주화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다고 해서 해당 작품을 여전히 칭송해도 되는 것일까? 표절 논란이 있는 시가 한국 현대시의 대표작 중 하나로 손꼽혀도 괜찮은 것일까? 김지하 시인이 독재에 맞섰다는 이유로 표절 논란이 묻혀도 되는 것일까? 반대로 생각해 볼 수도 있다. 표절인지 아닌지 정확히 밝혀지지도 않은 논란을 이유로 한국 역사와 문학계 모두에게 중요한 작품을 부정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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