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다프네 스노우 디자인 솔솔
월경은 참 많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진정한 여성으로 성장하는 과정이라고도 하고, 건강한 여성의 상징이라고도 한다. 그만큼 월경은 중요한 신체적 현상 중 하나이지만, 사실 긍정적으로만 느껴지진 않는다. 하루 종일 괴롭게 하는 월경통과 시도 때도 없이 나오는 혈때문에 일상에 제약이 생긴다. 월경대에 들어가는 돈도 만만치 않다. 그래서 많은 여성이 월경을 ‘불편하고 귀찮은 일’로 여긴다.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 월경은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 이렇게 나 보편적이면서 특수하게 받아들이는 현상이 또 있을까. 건강한 여 성이라면 대부분 월경을 하지만, ‘월경’이나 ‘생리’라고도 말하지 못하고 ‘그날’, ‘마법’, ‘대자연’ 같은 은유적인 단어로 부른다. 월경과 관련한 담론은 은밀하고 성적인 영역으로 간주되어 수면 위로 올라오지 못했다.
그러는 사이, 수면 아래에서 홀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있다. 장애 여성의 월경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주변에 장애가 있는 지인 이 없다면 인지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필자 또한 장애인이 이동할 때 겪는 어려움은 쉽게 접했지만, 장애여성이 월경하면서 겪는 불편함에 대해서는 들은 적이 없었다. 애초에 ‘월경’이라는 주제를 언급하는 행위 자체가 금기시되는 분위기였기에, 상대적으로 조명받지 못하는 장애여성의 어려움은 사회적 공감을 얻기 더욱 어려웠다. 장애여성의 월경 문제는 단순히 생활 속 불편함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정보격차와 자기 몸 결정권으로도 이어진다. 사회가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이,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의 고통은 오롯이 혼 자 감당해야 할 몫이 되었다.
장애여성의 월경
월경 시작 직전, 느낌이 이상해 마음의 준비를 잔뜩 하고 화장실 로 갔다가 월경이 시작하지 않아 안도하거나 허무해 했던 경험이 있 을 것이다. 하지만 같은 상황에서 시각 장애인은 월경을 시작했는지 아닌지 알 방법이 없다. 월경혈과 월경 전 나오는 분비물(냉)은 느낌이 비슷하기 때문에 색깔로만 구분할 수 있는데, 시각장애인은 이 둘을 구분하기 어렵다. 그래서 월경이 시작하는 느낌이 들면 미리 월경대를 착용하고 있어야 한다. 돈이 아까워도 어쩔 수 없다. 혈이 옷이 나 이불에 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도 정확하게 확인하지 못한다. 월경할 때쯤이면 불안한 느낌을 계속 가질 수밖에 없다.
휠체어를 이용해야 하는 지체장애인에게는 월경 자체가 고통이다. 습한 여름에 휠체어에 장시간 앉아있는 것부터 쉽지 않은 일이다. 여기에 두꺼운 월경대까지 착용하고 있으면 땀이 찬 피부에 통풍도 잘 되지 않아 온종일 찝찝한 기분을 느껴야 한다. 이는 마치 “오물을 깔고 앉아 있는 기분”이라고 한다. 월경대를 가는 것도 그저 귀찮은 일 정도가 아니라 많은 시간과 노력을 필요로 하는 노동이다. 직접 월경을 처리하기 어려운 장애여성은 활동 보조인의 도움을 받는데, 이 경우에는 자신이 원하지 않는 상황에서도 타인에게 몸을 보여야 한 다.
우리가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위에서 언급한 것들이 있다. 그런데 장애여성이 특히 어려움을 겪는 부분은 월경용품을 선택하는 문제다. 장애여성은 월경대에 대한 정보를 얻는데 제약이 있어서 정보에서 소외되기도 한다. 일회용 월경대만 해도 양에 따라 필요한 월경대의 크기도 다르고, 개인마다 선호하는 브랜드도 다르다. 하지만 월경대의 브랜드 이름과 크기, 유통기한, 들어 있는 개수 등의 정보는 점자로 적혀 있지 않다. 시각장애인이 오프라인 매장에서 자신의 힘으로 알 수 있는 정보는 그것이 월경대라는 사실뿐이다. 그래서 급하게 필요할 때는 지인이나 직원의 도움을 받아야 하고, 평상시에는 온라인에서 대량 구매해야 한다.
온라인쇼핑몰에는 음성 지원이 있어, 별도의 점자 없이 크기나 브 랜드를 알고 구매할 수 있다. 그러나 유통기한 표기를 확인할 수 없다는 문제가 있다. 시각장애여성 한혜경 씨는 온라인쇼핑몰에서 유통기한이 지난 월경대를 구매했다가 온몸에 두드러기가 일었고, 가려움증 때문에 더 이상 월경대를 사용할 수 없었다. 그는 “시각장애여성들은 대량으로 (일회용 월경대를) 구매하는 경우가 많은데, 가격도 만만치 않아 생리대를 전부 폐기해야 했다”라며 문제를 지적했다. 일부 기 업에서 점자가 적힌 월경대를 출시했지만, 일부 제품의 점자 표기만 으로는 달라지지 않는다. 점자가 표기된 월경대로 선택지가 좁혀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시각장애가 있는 유튜버 우령은 자신의 경험을 공 유하면서 이러한 문제에 대해 ‘점자가 붙여진 제품에만 선택권이 좁혀지는 건 결국 자유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정말 필요한 것은 비장애인이 얻을 수 있는 정보를 장애인도 충분히 얻을 수 있는 환경이다.
다른 월경용품을 사용할 수는 없을까.
월경을 둘러싼 인식
‘그거 잘 안 없어진다!’ 어릴 때 풍선껌 껍질을 까면 들어있던 판박이 스티커를 창 한가득 덕지덕지 붙인 적이 있다. 한바탕 호통을 듣고 손톱으로 열심히 긁어봤지만, 아무리 해도 지저분하게 자국이 남았다. 어떤 편견은 덜 지워진 판박이 스티커처럼 잘 없어지지 않는다. ‘어떤’에 ‘월경’을 넣어본다면 어떨까. 월경에 대한 편견도 판박이처럼 끈질기게 붙어있지 않은가? 필자는 그 근원을 따라가 봤다.
현대 의료‧과학계는 여성의 몸을 재생산 차원에서 연구해왔다. 여성주의 차원의 연구는 없었다. 같은 맥락에서 기존 성교육 자료와 미디어 재현은 호르몬 작용, 임신 실패 결과로서의 월경. 그러니까 ‘생물학적’ 설명만 다뤄왔다. 위생 관점에서 월경을 보이지 않게 처리 할 수 있는 방법에만 집중해온 것이다. 이 과정에서 월경은 감춰야 하는 부정적 이미지로, 몸은 통제의 대상으로 인식이 고정되었다.
특히 남성중심주의 사회에서 남성이 모르는 여성의 몸의 속성은 공포스러운 것으로 간주되어왔다. 메리 더글라스(Mary Douglas)는 비체(abject)의 개념으로 이를 설명한다. 비체(abject)란 안/밖, 주 체/객체 등 양극화된 영역에 포함되면서 동시에 어느 한쪽과도 동일시될 수 없는 개념이다. 이에 따르면 체액은 몸 안과 밖의 경계에 걸쳐있는 것이다. 체액은 완벽히 통제할 수 있는 물성이 아니라서 견고한 것(고체성)을 추구하는 남성의 몸에 공포를 가져온다. 모른다는 공 포는 혐오를 낳고 혐오는 역겨움, 더러움과 같은 불쾌감으로 표출된 다. 그러나 모든 체액이 더럽다고 여겨지는 건 아니다. 눈물, 정액은 비교적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다. 남성의 땀, 정액과 같은 체액은 더러움이 아닌 건강함으로 여겨지기까지 한다. 반면 월경은 ‘오염’ 프레임에 갇혀있다. 무지에서 비롯된 공포가 만들어낸 혐오 프레임 말이다.
그러니 월경하는 몸을 바라보는 시선은 어떻겠는가. 2016년, 지하철 시트에 월경혈이 묻은 사진이 ‘지하철 민폐녀’라는 제목으로 SNS에 떠돌아다녔다.
교육의 현주소
대상의 본질은 호명될 때 발현된다. 그러나 호명되지 않은 대상의 함의는 수면위로 드러나지 않는다. 불리지 못한 월경권은 교육 영역에서도 보장받을 수 없었다. 현재 초·중·고등학교는 매년 15시간 이상 의무적으로 성교육을 해야 한다. 그러나 그 15시간 안에 월경에 대한 실질적인 정보는 없다. 실제로 여성환경연대와 서울시 청소년 월경 용품 보편지급 운동본부가 작년 4월, 전국 914명 청소년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76.7%(704명)가 ‘학교에서 월경 용품 관련 교육을 거의 받지 못했거나 교육내용에 만족하지 않는다’고 답 했다.
필자에게도 초경은 두려운 경험이었다. 월경을 시작했을 때 어떻 게 해야 하는지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보건 시간에 배운 ‘월경’ 역시 포궁의 재생산과 관련된 어떤 현상일 뿐이었다. 그저 ‘수정 실패’의 결과가 월경이라는 것. 그게 공교육이 가르친 전부였다. ‘출산을 위한 존재’로 여겨지는 건 몸에 대한 존중 없이, 내 몸에서 일어나는 일을 숨겨야만 하는 ‘부끄러운 일’로 생각하게끔 했다. 안현진 여성환경연대 활동가는 “월경 공교육의 기본은 학생들이 ‘몰라서’ 대처를 못 하는 일이 없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당연한 걸 ‘선택’할 권리도 따라와야만 한다. 선택의 폭이 넓어지고, 정보 격차가 줄어들어 상황에 맞게 월경 용품을 고를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면 선택할 권리, 월경권은 부상할 수 있다. 모두가 안전하고 평등하게 월경할 권리를 보장받는 것. 그 당연함을 위해 우리는 지워진 것을 호명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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