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충도]에는 수박, 가지, 맨드라미, 양귀비, 여뀌, 오이, 가지, 원추리, 봉선화 따위와 같은 풀꽃이 표현되어 있다.
또한 곤충에는 매미, 나비, 메뚜기, 여치, 물잠자리, 사마귀, 개구리, 풍뎅이, 쇠똥구리 따위가 있다. 가끔은 곤충과 관계없는 도마뱀이나 쥐를 표현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런 곤충이나 풀은 왜 그린 것일까?
모든 미술작품이 그렇듯이, 곤충이나 풀의 자세한 모습을 알거나 자연생태를 연구하는 목적은 아니다.
풀과 곤충은 일상생활에서 가장 흔하고 친근하다.
평범함이 가지는 강력한 힘은 대중성이다. 특별히 공부하지 않아도 직관적으로 수용된다.
이런 대중적 소재에 사회적 가치와 상징을 투영하는 일은 미술작품의 오래된 관례였다.
선조들은 자연을 사랑하고 조화롭게 살아가는 삶은 학문이나 인격수양에 반드시 필요한 가치로 생각했다.
[화훼초충도 花卉草蟲圖/전 신사임당/종이에 채색/16세기/조선.
신사임당이 그렸다고 전하는 초충도에는 다양한 풀과 꽃, 곤충이 표현되어 있다. 사람 주변에서 쉽게 관찰되는 풀과 곤충에는 다양한 상징이 붙어있다. 그림의 뜻을 알지 못해도 상관없다. 보고 있으면 마음에 편해진다. 독립된 회화작품이면서 수예나 가구 장식에 쓰이는 바탕그림의 역할도 했다.]
풀과 곤충에게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다양한 의미를 붙였다.
이를테면, 수박이나 오이, 가지, 원추리는 다산(多産)을 뜻하고, 맨드라미나 양귀비는 출세를 상징한다.
나비는 장수, 매미는 군자, 잠자리는 정력, 쇠똥구리와 개구리는 부귀의 상징이다.
그렇다고 주변의 모든 풀과 곤충이 그림의 소재가 되거나 상징이 붙는 것은 아니다.
사람에게 해악을 끼치는 모기나 파리, 독사나 독버섯 따위는 그림에 등장하지 않는다.
만약 독초나 해충을 그림으로 그리면 사람들은 무섭고 더럽다고 느껴 외면한다.
우리그림은 사람과 사회에 나쁜 것은 결코 그리지 않는다.
아름다운 풀꽃과 귀여운 곤충들이 노니는 그림을 집안에 걸어 장식했다.
방안은 화사해지고 보는 사람들의 기분도 좋아진다.
친구나 자녀에게 그림에 대해 설명한다.
“맨드라미 꽃모양이 높은 벼슬을 가진 사람들이 쓰는 모자와 비슷하게 생겼지? 출세해서 높은 관직에 오르라는 의미가 담겨있지.
그 아래에 있는 쇠똥구리가 열심히 쇠똥을 굴리고 있는 모습은 성실하고 부지런하게 공부하고 일하라는 뜻이야.”
그림은 딱딱한 철학이나 욕망을 멋있게 표현한다.
그림이 아름답다고 느껴야, 그 속에 담겨있는 철학도 자연스럽게 수용하게 된다.
감성이 먼저 받아들인 다음, 이성이 사물에 담긴 뜻을 논리적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미술작품을 감상하는 가장 올바른 방법이기도 하다.
매미그림을 잘 그린 화가
매미는 한여름에 잠깐 나타났다 사라지는 곤충인데도 시끄러운 울음소리 때문에 존재감이 확실하다.
이 자극적인 울음소리는 한여름 더위에 지친 사람들에게 시원한 기분을 주기도 한다.
이런 탓인지, 송나라 문인인 구양수는 '명선부(鳴蟬賦)'라는 글에서 매미소리를 음악에 비유했다.
“가냘픈 소리는 피리소리가 아니고, 맑은 소리는 현의 소리와 같다.
찢어질 듯 막 부르짖다가 다시 오열하고, 처절하게 끊어질 듯 다시 어어 진다.
한 가지 소리를 토해내 율을 맞추기 어려운데, 오음률(五音律)의 자연스러움을 함축했구나.”
무엇보다 중국 진나라 시인 육운은 매미에게 다섯 가지의 덕(德)인 문(文), 청(淸), 렴(廉), 검(儉), 신(信)을 갖춘 곤충이라고 칭송했다.
문(文)은 학문과 배움, 청렴(淸廉)은 세상의 더러움이 없는 깨끗함, 검(儉)은 욕심이 없는 생활이며, 신(信)은 양심을 지키는 의지를 뜻한다.
오덕(五德)을 갖춘 매미는 오덕을 가진 사람, 즉 군자를 상징한다.
오덕(五德)을 매미의 모습이나 생태에서 찾아낸 것이라고 하지만 억지스럽다.
매미는 이로운 곤충은 아니다. 딱히 덕(德)과 연관된 사연도 없다.
그럼에도 매미를 군자의 상징으로 만들고 수용한 이유는 한 번 들으면 결코 잊을 수 없는 매미소리처럼, 올바른 삶을 추구하려는 강력한 외침과 잘 맞았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화가들은 매미를 많이 그렸다.
매미그림은 [초충도]에 속한다.
매미는 보통 나무나 나뭇가지에 매달린 모습으로 그린다.
한해살이 풀인 여뀌나 연꽃에 붙어있는 모습을 그리기도 하는데, 그것은 군자를 뜻하는 매미와 걸맞은 상징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매미가 군자를 뜻해서인지 선비화가인 겸재 정선과 현재 심사정의 매미그림이 유명하다.
진경산수화를 완성한 겸재 정선의 그림에는 소나무 가지에 매달린 매미, 여뀌에 붙어있는 매미가 표현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