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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규섭 Nov 23. 2022

왕관에 매미가...

군자의 상징-매미

   

초충도(草蟲圖)는 각종 풀과 곤충을 소재로 한 그림이다.

[초충도]에는 수박, 가지, 맨드라미, 양귀비, 여뀌, 오이, 가지, 원추리, 봉선화 따위와 같은 풀꽃이 표현되어 있다.

또한 곤충에는 매미, 나비, 메뚜기, 여치, 물잠자리, 사마귀, 개구리, 풍뎅이, 쇠똥구리 따위가 있다. 가끔은 곤충과 관계없는 도마뱀이나 쥐를 표현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런 곤충이나 풀은 왜 그린 것일까?     

모든 미술작품이 그렇듯이, 곤충이나 풀의 자세한 모습을 알거나 자연생태를 연구하는 목적은 아니다.

    

풀과 곤충은 일상생활에서 가장 흔하고 친근하다.

평범함이 가지는 강력한 힘은 대중성이다. 특별히 공부하지 않아도 직관적으로 수용된다.

이런 대중적 소재에 사회적 가치와 상징을 투영하는 일은 미술작품의 오래된 관례였다.      

선조들은 자연을 사랑하고 조화롭게 살아가는 삶은 학문이나 인격수양에 반드시 필요한 가치로 생각했다.

[화훼초충도 花卉草蟲圖/전 신사임당/종이에 채색/16세기/조선.

신사임당이 그렸다고 전하는 초충도에는 다양한 풀과 꽃, 곤충이 표현되어 있다. 사람 주변에서 쉽게 관찰되는 풀과 곤충에는 다양한 상징이 붙어있다. 그림의 뜻을 알지 못해도 상관없다. 보고 있으면 마음에 편해진다. 독립된 회화작품이면서 수예나 가구 장식에 쓰이는 바탕그림의 역할도 했다.]     

  

풀과 곤충에게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다양한 의미를 붙였다.

이를테면, 수박이나 오이, 가지, 원추리는 다산(多産)을 뜻하고, 맨드라미나 양귀비는 출세를 상징한다.

나비는 장수, 매미는 군자, 잠자리는 정력, 쇠똥구리와 개구리는 부귀의 상징이다.     


그렇다고 주변의 모든 풀과 곤충이 그림의 소재가 되거나 상징이 붙는 것은 아니다.

사람에게 해악을 끼치는 모기나 파리, 독사나 독버섯 따위는 그림에 등장하지 않는다.

만약 독초나 해충을 그림으로 그리면 사람들은 무섭고 더럽다고 느껴 외면한다.

우리그림은 사람과 사회에 나쁜 것은 결코 그리지 않는다.     


아름다운 풀꽃과 귀여운 곤충들이 노니는 그림을 집안에 걸어 장식했다.

방안은 화사해지고 보는 사람들의 기분도 좋아진다.     


친구나 자녀에게 그림에 대해 설명한다.     


“맨드라미 꽃모양이 높은 벼슬을 가진 사람들이 쓰는 모자와 비슷하게 생겼지? 출세해서 높은 관직에 오르라는 의미가 담겨있지.

그 아래에 있는 쇠똥구리가 열심히 쇠똥을 굴리고 있는 모습은 성실하고 부지런하게 공부하고 일하라는 뜻이야.”    

 

그림은 딱딱한 철학이나 욕망을 멋있게 표현한다.

그림이 아름답다고 느껴야, 그 속에 담겨있는 철학도 자연스럽게 수용하게 된다.

감성이 먼저 받아들인 다음, 이성이 사물에 담긴 뜻을 논리적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미술작품을 감상하는 가장 올바른 방법이기도 하다.     


매미그림을 잘 그린 화가


매미는 한여름에 잠깐 나타났다 사라지는 곤충인데도 시끄러운 울음소리 때문에 존재감이 확실하다.

이 자극적인 울음소리는 한여름 더위에 지친 사람들에게 시원한 기분을 주기도 한다.

      

이런 탓인지, 송나라 문인인 구양수는 '명선부(鳴蟬賦)'라는 글에서 매미소리를 음악에 비유했다.     


“가냘픈 소리는 피리소리가 아니고, 맑은 소리는 현의 소리와 같다.

찢어질 듯 막 부르짖다가 다시 오열하고, 처절하게 끊어질 듯 다시 어어 진다.

한 가지 소리를 토해내 율을 맞추기 어려운데, 오음률(五音律)의 자연스러움을 함축했구나.”  

   

무엇보다 중국 진나라 시인 육운은 매미에게 다섯 가지의 덕(德)인 문(文), 청(淸), 렴(廉), 검(儉), 신(信)을 갖춘 곤충이라고 칭송했다.

문(文)은 학문과 배움, 청렴(淸廉)은 세상의 더러움이 없는 깨끗함, 검(儉)은 욕심이 없는 생활이며, 신(信)은 양심을 지키는 의지를 뜻한다.  

   

오덕(五德)을 갖춘 매미는 오덕을 가진 사람, 즉 군자를 상징한다.

오덕(五德)을 매미의 모습이나 생태에서 찾아낸 것이라고 하지만 억지스럽다.

매미는 이로운 곤충은 아니다. 딱히 덕(德)과 연관된 사연도 없다.       


그럼에도 매미를 군자의 상징으로 만들고 수용한 이유는 한 번 들으면 결코 잊을 수 없는 매미소리처럼, 올바른 삶을 추구하려는 강력한 외침과 잘 맞았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화가들은 매미를 많이 그렸다.

매미그림은 [초충도]에 속한다.

매미는 보통 나무나 나뭇가지에 매달린 모습으로 그린다.

한해살이 풀인 여뀌나 연꽃에 붙어있는 모습을 그리기도 하는데, 그것은 군자를 뜻하는  매미와 걸맞은 상징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매미가 군자를 뜻해서인지 선비화가인 겸재 정선과 현재 심사정의 매미그림이 유명하다.

진경산수화를 완성한 겸재 정선의 그림에는 소나무 가지에 매달린 매미, 여뀌에 붙어있는 매미가 표현되어 있다.                

[겸재 정선/송림한선도松林寒蟬圖, 매미/비단에 담채/21.3×29.5cm/18세기/조선/간송미술관 소장.

매미는 군자, 소나무는 변치 않는 지조와 절개의 상징이다. 양심을 지키는 군자의 모습을 매미에 투영했다.]   

[겸재 정선/홍료추선(紅蓼秋蟬)/비단에 채색/20.3*30.5cm/1742, 간송미술관.

홍료추선은 우리말로 붉은 여뀌와 가을 매미라는 뜻이다. 여뀌는 한해살이풀로 가을이 되면 꽃이 붉은색으로 변한다. 또한 한여름의 매미가 아닌 가을 매미라고 제목을 붙였다.

가을 매미는 늦게까지 남은 매미이다. 여뀌의 상징은  ‘학업을 마치다’이다.  

이를 결합하여 해석하면, ‘군자는 죽을 때까지 학업을 놓지 않는다.’가 된다.]    

 

현재(玄齋) 심사정은 조선시대를 통틀어서 매미그림을 가장 많이 그렸다.

심사정은 매미그림을 통해서 자신의 삶과 꿈을 표현하고자 했다.     


심사정은 명문 사대부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조부 심익창(沈益昌)이 왕세제 시해에 가담하면서 역모 죄로 집안이 몰락했다.

대역죄인 가문이라는 굴레를 가지고 살았으며 관직을 포기하고 평생 그림을 그려 생계를 유지하고 화가로 명성을 얻었다.   

   

많은 나무 중에 굳이 선비의 상징인 버드나무에 앉은 매미를 그린 데는 이유가 있다.

보통 버드나무는 추운 초봄에 일찍 이파리가 나는 특성에 따라 어려움을 이겨내는 강인한 군자의 상징을 가지고 있다. 또한 강한 바람에 흔들릴지언정 꺾이지 않는 의지를 표현하기도 한다.      


그런데 심사정이 그린 버드나무는 특이하다.

나무의 윗부분이 부러져있다.

부러지지 않아야 하는 버드나무의 상징을 무시하고 의도적으로 부러진 버드나무를 그린 것이다.

부러진 버드나무를 통해 꿈이 무너진 현실을 표현하고 있다.

역적의 자손이라는 현실은 관직과 정치에 대한 꿈이 부러진 것과 같다.

하지만 새롭게 돋는 이파리를 그린 것은 새로운 희망이 자라고 있음을 비유한 것이다.     

어려움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선비의 삶을 버드나무와 매미를 통해 극복하고자 한 것이다.          

[현재 심사정/버들 매미/종이에 채색, 28.0×22.2㎝/18세기/간송미술문화재단 소장.

부러졌지만 새 가지와 이파리가 돋는 버드나무에 앉은 매미그림을 통해 희망을 표현하고 있다.]       

[심규섭/한여름 매미/디지털그림.

살구나무에 붙어 있는 매미를 그렸다. 한여름 살구가 열릴 때면 매미는 극성스럽게 울어낸다. 살구, 복숭아, 자두는 같은 시기에 나는 여름 과일이다.

우리 전통문화에서 살구나 자두는 모두 태평성대를 의미하는 복숭아와 같은 상징을 가지고 있다.

훌륭한 사람이 많을수록 좋은 세상이 된다.

이런 의미로 군자를 상징하는 매미와 태평성대의 상징인 살구를 함께 그렸다.]   

  

왕관에 매미가 붙은 까닭은?   

      

[영조 어진/68㎝*110㎝/비단에 채색/국립고궁박물관.

익선관은 세종 때부터 조선이 망할 때까지 왕의 관모로 사용했다.]    

 

조선시대 왕과 세자가 곤룡포(袞龍袍)와 함께 쓰는 관모를 익선관(翼善冠)이라고 한다.

익선관은 비단으로 만들었으며 금은보석은 전혀 들어가지 않는다.     

모자 뒤쪽에 날개 모양 2개가 뿔처럼 세워져 있는데 이것이 매미날개를 닮았다고 하여 익선관(翼蟬冠), 매미날개모자라고 부른다는 설이 있다.


하지만 익선(翼善)이란 말은 ‘선한 일을 도와 실행하다.’의 뜻으로 매미와는 아무 관련이 없다.      

선(善)은 일반적으로 착하고 올바름, 어질고 좋음을 뜻하지만 철학적 개념으로는 완벽한 도덕적 가치를 뜻한다.

왕이 가져야 할 인품과 행동지침을 관모로 규정한 것이다.     


실제 조선시대 왕들은 엄청난 분량의 공부와 과도한 업무 때문에 일찍 죽었다는 주장이 있다.

최고의 권력을 가진 왕의 인격이 떨어지거나 올바르게 통치하지 않으면 사회가 혼란해지고 백성은 도탄에 빠진다.      

따라서 왕이 될 사람은 어릴 적부터 높은 도덕적 인격과 실천을 요구받았다.

왕이 되기 전에 군자가 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관모의 장식을 매미날개로 해석하는 것은 이런 연유이다.     

[관리가 쓰는 오사모]     


고위 관료들이 쓰는 오사모(烏紗帽)에는 날개가 옆으로 나 있다.

익선관의 날개가 매미날개라면 오사모의 날개도 매미날개일 것이다.

신하가 쓰는 오사모의 날개가 옆으로 펼쳐진 것은 매미가 나는 것처럼 열심히 일하고 실천하라는 뜻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사람들은 [초충도]에 표현되어 있는 많은 풀과 곤충이 무엇을 뜻하는지 잊어버렸다.

세월이 흐르고 시대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의 가치와 욕망은 변함이 없고, 세상에는 여전히 선하고 양심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한여름 밤낮을 시끄럽게 울어대는 매미소리와 날개 짓에서 군자의 숨결을 조금이라도 느낄 수 있다면 세상은 한층 좋아질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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