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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규섭 Nov 27. 2022

삶의 의욕으로 공부하다.

복숭아 연적

      

복숭아는 신선세계를 뜻한다.
같은 말에는 태평성대, 무릉도원이 있다.

중국에서 복숭아는 주로 불로장생의 상징으로 사용했다.

조선은 중국의 도교적 형상을 가져와 태평성대의 내용으로 발전시켰다.    
  

복숭아나무는 안평대군의 꿈을 그린 안견의 [몽유도원도, 夢遊桃園圖]의 핵심 소재이다.

[몽유도원도]는 조선 초기 선비들이 꿈꾸었던 이상세계의 자신감이 녹아있는 작품이다.

[몽유도원도]에는 전쟁과 살육, 약탈이 없는 평화로운 세상이 화사한 복숭아꽃으로 표현되어 있다.     

이후 복숭아나무는 궁중회화의 단골 소재였고 한양에는 복숭아나무가 넘쳐났다. 선비들은 복숭아나무 아래에서 꽃놀이를 하고 시를 지었으며 풍류를 즐겼다.          

[문방도병풍(文房圖屛風)/작자 미상/종이에 채색/142.8*234cm/19~20세기 초/국립고궁박물관 소장.

‘장막책거리도’라고 부르기도 한다. 서책과 문방구를 중심으로 선비들이 좋아했던 각종 사물들이 표현되어 있다. 그림 속의 사물들은 선비들이 보물처럼 소중하게 여겼다.

그림 속에 장막을 친 것은 장식 효과를 높이기 위함이지만 보물을 숨기고자 하는 부끄러움도 함께 표현한 것이다. 앞쪽에 벼루, 붓통과 함께 복숭아 연적이 그려져 있다.]   

  

선비들이 학문을 할 때 사용하는 주요 도구를 문방사우(文房四友)라고 한다.

벼루, 먹, 종이, 붓에 속하지는 않지만 먹을 갈 물을 담는 연적(硯滴)도 꼭 필요한 문방구였다.

연적의 모양은 다양한데, 특별히 복숭아 열매처럼 만든 것이 복숭아 연적이다.      


숱한 모양 중에서 하필 복숭아를 닮은 연적을 만든 이유는 뭘까?

조선시대 선비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겼던 말은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였다.

여기서 평천하(平天下)는 태평성대를 뜻한다.


이러한 태평성대를 이루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수신(修身)이 필요하다.

수신은 양심을 키우고 인격을 높이는 공부와 실천을 말한다.      

복숭아는 태평성대를 뜻하는데, 이를 학문을 뜻하는 문방구와 연결하여 수신의 목적을 명확히 한 것이다.

그러니까 복숭아 연적에는 ‘학문을 하는 목적은 민본정치를 통해 태평성대를 만드는 것’이라는 의미가 숨어있는 것이다.      

복숭아 연적은 여성의 젖가슴을 닮았다.

특히 복숭아 꼭지 부분을 붉게 칠한 것은 상당히 자극적이다.      

복숭아 연적은 우리그림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십장생도]의 복숭아에서 차용한 것이다.


그렇다면 [십장생도]의 복숭아 열매를 여성의 젖가슴처럼 표현한 이유는 뭘까?     

두 가지로 추론한다.     


첫째, 애초에 복숭아 열매는 불로장생의 상징이었다.

중국에는 서왕모(西王母)와 천도복숭아에 관한 전설이 있다. 천도복숭아는 신령한 복숭아라는 의미로 반도(蟠桃)라고도 한다.      

서왕모는 불로장생하는 복숭아나무를 가지고 있었는데 신선인 동방삭(東方朔)이 천도복숭아를 훔쳐 먹고 삼천갑자, 180,000년을 살았다는 전설이 있다.      

서왕모(西王母)는 중국 신화에 나오는 여선(女仙)의 우두머리로 만물을 소생하게 하는 능력을 지녔다고 한다.

[빌렌도르프의 비너스는 1908년 오스트리아 니더외스터라이히주 빌렌도르프 근교의 구석기 시대 지층에서 고고학자 요제프 촘바티가 발견한 11.1 cm의 여자 조각상이다.

이 석상은 2만 2000년에서 2만 4000년 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빌렌도르프의 비너스는 사실적이라기보다는 이상적으로 표현한 여성상이다. 커다란 유방을 늘어뜨리고, 허리는 매우 굵으며, 배는 불룩 나와 있고, 엉덩이는 풍만하며 성기가 강조되어 있어서, 생식과 출산, 다산의 상징으로 주술적 숭배의 대상이 되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서왕모는 전형적인 여신(女神)이며 출산과 풍요를 상징한다. 출산과 풍요는 여성의 큰 가슴이나 엉덩이로 표현하는 것이 보편적 문화이다.

이러한 서왕모와 복숭아를 결합하여 젖가슴처럼 표현한 것이다.  

   

둘째, 대중적인 표현이다.

여성의 젖가슴을 닮은 복숭아는 일종의 성적인 표현이자 해학이다.

서왕모와 천도복숭아가 그려져 있는 [요지연도]는 민간신앙인 도교(道敎)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자극하기 위해 성적 형상으로 표현한 것이다.          

[십장생도 부분/심규섭.

십장생도를 비롯한 다양한 장생도에 그려진 복숭아 열매는 마치 여성의 젖가슴처럼 거대하게 표현되어 있다.]     

 

복숭아 연적과 비슷한 것이 무릎 연적이다.

오래전 [무릎과 무릎사이]라는 영화가 있었다. 묘한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제목이다.

여자 주인공이 두 무릎을 가슴 쪽에 붙이고 앉아있는 영화 포스터가 인상적이었다.

얼핏 보기에 가슴인지 무릎인지 분간하기 어렵게 만든 것이다.   

  

무릎 연적은 여성의 젖가슴을 연상시킨다는 의미로 지은 이름이다.

실제 이런 목적으로 연적을 만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복숭아 연적에 익숙해 있기에 가능한 상상력이었다.     


경상도 상주에는 상주아리랑이라는 노래가 전한다.

여기에 여성의 젖가슴과 연적을 동일하게 여기는 가사가 나온다.

    

상주 함창 공갈못에

연밥 따는 저 처자야

연밥 줄밥 내 따 줄게

이내 품에 잠자주오

모시야 적삼에 반쯤 나온

연적 같은 젖 좀 보소

많이야 보면 병 난단다

담배씨만치만 보고 가소.    

 

선비들은 원초적 욕망을 제거한 특별한 존재가 아니다.

단지 욕망을 사회적 공공심에 맞게 조절하려고 애쓰는 평범한 사람이다.


선비들이 책을 읽거나 글을 쓰다가 가끔 복숭아 연적을 쓰다듬었다고 하더라도 나무랄 일은 아니다.

성적인 상상력을 높이는 물건이나 그림은 삶의 의욕을 높인다.

삶의 의욕이 충만해야 어려운 공부도 하고 백성들을 위한 정치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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