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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규섭 Dec 03. 2022

친절한 궁궐 해설사

-오봉도 이야기

해설사 “[오봉도, 五峰圖]는 왕의 권위와 위엄을 드러내는 그림이며 왕이 있는 곳에 항상 두었습니다.”     


관람자 “보통 일월오봉도(日月五峰圖)라고 하지 않나요?”     


해설사 “일단 명칭 문제부터 정리하고 넘어가겠습니다. 일월오봉도는 잘못된 명칭입니다. 옛 문헌에는 [오봉도], [오악도], [오봉병]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봉도에 일월을 붙인 것은 1970년대인데, 마치 음양오행론과 연관이 있는 것처럼 보이게 했습니다. 그러나 오봉도는 음양오행론과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관람자 끄덕끄덕     


해설사 “전 세계 왕이나 절대자의 권위와 위엄을 드러내는 상징은 금은보화, 강력한 무기, 괴수 따위로 표현합니다.”   

 [오봉도는 왕의 상징이다. 왕이 업무를 보는 근정전부터 외부 행사장, 침소에도 오봉도를 두었다.]

 

관람자 끄덕끄덕

     

해설사 “그림을 자세히 보세요. [오봉도]에는 산, 바다, 소나무, 폭포와 같은 자연물밖에 없지요?”    

 

관람자 “정말 그러네요.”  

   

해설사 “자연물밖에 없는데 어떻게 권위와 위엄이 생길까요?”   

  

관람자 ???     


해설사 “[십장생도]는 모두 알고 있죠? [오봉도]는 [십장생도]를 바탕으로 간결하게 표현했습니다.

이유가 뭐냐고요? 왕의 상징과 역할을 규정하는 도상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오봉도는 17세기를 전후로 창안된 작품입니다. 그래서 중국이나 일본에는 없습니다.”   

  

관람자 “아, 네.”     


해설사 “[십장생도]는 ‘민본정치를 통해 태평성대’, ‘생명력이 풍부한 이상세계’를 상징합니다.

따라서 [오봉도]는 민본정치를 통해 태평성대를 구현하는 자, 혹은 역할이 되지요. 왕의 권위와 위엄은 태평성대를 이루고자 할 때 생긴다는 의미입니다.”     

[유럽왕실문장과 로마제국의 문장이다. 대부분 괴수, 무기, 금은보화로 장식한다.]


관람자 “왕의 권위와 위엄이 만백성을 위한 노력에서 나온다니 놀랍습니다.”     


해설사 “그렇습니다. 아마 세계에서 가장 철학적인 왕의 그림일 것입니다.”

    

관람자 “하늘에는 해와 달이 있는데 무슨 뜻인가요?”    

 

해설사 “하늘에 있는 것은 해와 달이 아니라 두 개의 해를 그린 것입니다. 오봉도는 우리 그림에서 유일한 좌우대칭형 그림입니다. 이 구도는 그림 중앙에 앉는 왕에게 집중시키는데 적격입니다.

우측의 붉은 해를 복사해 좌측에 놓았습니다.

우측의 붉은 해는 영원성을 뜻하고, 왼쪽의 하얀 해는 절정기를 의미합니다.

둘 다 꼭 필요한 개념입니다.”    

 

관람자 “어디서 들은 적이 있는데, 보름달은 태양과 같은 크기로 보인답니다. 달로 보이게 하려면 초승달을 그린 답니다. 자세히 보니 하얀색을 칠했네요. 달의 일반적인 색은 노란색이 아닌가요?”    

 

해설사 “그렇습니다. 아침 해는 붉게 보이고, 대낮의 해는 하얀색으로 보이지요. 무엇보다 달은 부정, 어둠, 고통의 요소를 가지고 있습니다. 왕을 상징하는 그림에 부정적인 달을 그릴 이유는 없습니다.”  

   

관람자 “그래도 하늘에 두 개의 태양이 있는 것이 보기 불편합니다.”    

 

해설사 “혹시 슈퍼맨이 하늘을 날아다니는 영화가 불편합니까?”  

    

관람자 “그건 영화잖아요.”    

 

해설사 “그림도 영화처럼 현실이 아닙니다. 마음속 생각이나 바라는 꿈을 표현하는 것이 예술입니다. 오봉도는 그림일 뿐이지요. 열 개의 태양을 그려도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왜 그렇게 그렸는가를 아는 것이죠.”    

 

[오봉도는 우리전통그림에서 유일한 좌우대칭형 그림이다. 좌우대칭형은 도상을 간결하게 만들고 왕을 부각시킨다. 완벽한 대칭은 아니며 약간의 변화를 주었다. 우측의 붉은 해를 복사해 좌측에 그렸다.  다섯 개의 봉우리는 특별한 의미가 없다. 우리그림은 숫자를 이용한 상징을 사용하지 않는다.]

 

관람자 “두 개의 태양을 그려야 하는 절박한 이유라도 있나요?”

    

해설사 “좌측이나 우측으로 치우치면 좌우대칭 구도가 깨지기 때문입니다. 태양을 하나만 그리면 오봉도의 중앙에 넣어야 하지요.

그림 중앙에 태양을 그리면 왕의 머리 부분에 놓이게 되지요. 바로 이런 장면이 문제가 됩니다. 자칫 왕과 태양이 동격이거나, 태양의 위임을 받은 존재가 되어 신격화 될 수 있습니다.

조선은 왕과 선비가 함께 통치하는 나라로, 왕을 절대적 존재나 신격화되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관람자 “하늘의 파란색(황색, 감색)을 칠한 이유는 뭔가요?”     


해설사 “조선은 신을 믿지 않았기에 하늘을 규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빈 공간을 뜻하는 황색, 알지 못하는 가물가물한 감색을 칠했습니다. 조선 후기로 들어오면서 오봉도의 하늘을 청색(녹색과 파란색의 혼용)으로 칠하는 문화가 생겼습니다. 하늘은 양심이 있는 우주 본연의 자리라고 여겼기에, 양심의 색인 청색으로 칠한 것입니다.”    

 

관람자 “네그루의 소나무는 무엇을 상징합니까?”    

 

해설사 “모든 생명을 뜻합니다. 좁게는 만백성을 의미하지요. 소나무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고 유용한 백성의 나무입니다. 선조들은 소나무 금줄로 인생을 시작해서 소나무 관에 묻혀 삶을 마감했다는 말까지 있으니까요.”    

 

관람자 “바다가 황색인 이유는 뭐지요?”   

  

해설사 “본디 큰 호수를 그린 것입니다. 그러다 점차 바다로 바뀌었지요. 우리나라는 삼면이 바다입니다. 하지만 선조들이 삶으로 수용한 바다는 황해였습니다. 황해는 황토가 흘러들어 해산물이 풍부한 그야말로 생명의 바다입니다. 아무튼 그냥 물이라고 여기면 됩니다. 물은 생명줄이면서 올바른 정치를 상징합니다.”     

[오봉도는 안견의 몽유도원도, 요지연도, 십장생도, 해학반도도의 내용과 형식을 간결하게 표현한 것이다.]


관람자 “오봉도는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과는 별 관련이 없지요?”    

  

해설사 “민본정치는 백성을 근본으로, 백성을 위한 정치를 뜻합니다. 민본정치의 최종점을 태평성대라고 합니다. 결국 [오봉도]는 백성의 태평성대를 표현한 것이지요.

민본정치는 왕의 역할이고 태평성대는 백성의 몫입니다. 왕의 정치와 백성의 꿈이 결합한 것이지요. 백성이 없다면 왕도 없고 민본정치나 태평성대도 무의미합니다.”     


관람자 “[오봉도] 앞에 앉으면 왕이 되는 겁니까?”   

   

해설사 “입장에 따라 다릅니다. 태평성대를 구현할 양심과 능력이 있다면 누구나 이 자리에 앉을 수 있습니다. 혹시, 왕이 될 분이 계십니까?”   

  

관람자 “없어요.”   

  

해설사 “그래도 앉을 수 있습니다. [오봉도]의 진짜 주인은 만백성이기 때문이죠.”     

[만 원 권 지폐에 오봉도가 새겨져 있다.]


해설사 “아, 한 가지 남은 것이 있습니다. [오봉도]를 자주 보면 부자가 된다는 말을 들어 본적이 있습니까?”   

  

관람자 “금시초문인데요. 부자가 되려면 매번 궁궐에 와야 합니까?”

    

해설사 “그럴 필요 없습니다. 여러분의 지갑에 만 원 권 지폐 한두 장은 가지고 다니지요?

한번 꺼내 보십시오.”   

  

관람자 “주섬주섬. 여기 있습니다.”  

   

해설사 “세종대왕 초상이 있고, 그 배경에 오봉도가 새겨져 있습니다.”  

   

관람자 “정말 그렇군요. 그런데 오봉도를 자주 보면 부자가 된다는 게 무슨 말인가요?”   

  

해설사 “말 그대로입니다. 여러분이 만 원 권 지폐를 많이 가질수록 부자가 되는 것은 당연합니다. 부디 많은 오봉도를 영접하시여 부자가 되길 바랍니다.”   

  

관람자 “하하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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