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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규섭 Dec 10. 2022

치킨 집에는 없는 닭 그림

우리나라 사람들은 닭고기를 좋아하고 많이 먹는다.

한국식 닭튀김이나 ‘치맥’은 이미 한국 음주문화를 대표하는 조합으로 자리 잡았다.

흔히 ‘사위가 오면 씨암탉을 잡는다.’는 말처럼 예전부터 닭과 달걀은 만만한 단백질 공급원이었다.   

   

“우리나라는 1.5kg 정도의 작은 닭을 좋아한다더군. 확실히 영계가 맛있지.”     


“영계가 무슨 뜻인가?”    

  

“계(鷄)는 닭의 한자이고, 영....영이 무슨 뜻이지? 설마 어리거나 젊다는 young은 아닐 테고.”  

   

“연계(軟鷄)는 연한 닭고기란 말로 어린 닭을 연상시키지. 연계와 영계를 연결하는 것은 말장난에 불과하네. 영계, 흔히 어린 닭은 활동량이 적어 고기 자체는 부드럽지만 생장 기간이 짧아 육향이 거의 없고 영양분은 물론이고 식감도 엉망이지. 어린 닭으로 만드는 삼계탕은 닭발이나 인공 조미료로 육수를 내고 있다네. 3kg 정도로 성숙한 닭고기가 육질이 풍부하고 훨씬 맛있네.”         

[모든 음식의 맛은 재료에서 나온다. 3kg 큰 닭은 백숙, 삼계탕, 치킨의 맛을 최상으로 끌어올린다.]

    

“노계(老鷄)는 질기고 맛이 없지 않나?”  

   

“우리가 먹는 닭고기를 육계(肉鷄)라고 하네. 육계 품종은 세계 여러 나라와 비슷하지. 늙어 죽도록 키우는 닭은 없네. 노계는 폐계(廢鷄)의 다른 말인데, 늙어 알을 낳지 못하여 폐기된 닭을 유통하면 처벌받지.”  

   

“작은 닭이라도 맛있으면 그만 아닌가?”     

 

“우리나라 치킨이 맛있는 이유는 양념기술이 발달했기 때문이지. 맛없는 어린 닭을 보완하기 위해 고육지책으로 양념기술을 발전시킨 것이지.

만약 맛있는 3kg 닭고기에 양념기술을 더하면 정말 세계적인 치킨으로 거듭날 것일세.

사료비도 줄이고 환경오염도 덜 일으키니 도랑치고 가재 잡는 격이지.”

     

“무슨 말인지 알겠네. 곰곰 생각해보니 숱하게 치킨 집을 다녔지만 매장에 닭 그림은 본 적이 없네. 고작 포장지에 그려진 캐릭터 그림이 전부일세.

우리 선조들은 닭 그림을 좋아하지 않은 건가?”     


“닭은 오래 전부터 가축으로 키웠고, 사람과 가까이에 있었네. 당연히 여러 상징이 붙었고 다양한 그림으로 그렸지.”   

  

“닭에는 무슨 상징이 붙어있는가?”    

 

“닭의 생태 특성을 반영한 상징이 대부분이네. 조금 길지만 인내심을 갖고 들어보게나. 친구들과 치맥하면서 떠들기 딱 좋은 내용일세.”    

   

첫째, 새벽에 우는 특성에 따라 귀신을 쫒는 역할이다.

이를 벽사의 역할이라고 한다.

벽사(辟邪)는 전설의 동물로 호랑이 몸통에 뿔이 달린 모습을 하고 있다. 이 벽사가 귀신이나 마귀를 쫓는다고 한다.     

 [위-대만 고궁박물관에 있는 옥으로 만든 벽사. 아래-경복궁 영제교에 있는 벽사.]  


닭이 새벽에 훼치며 ‘꼬끼오~’라고 우는 것은 빛에 민감한 기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닭이 벽사 역할을 하게 된 것은 귀신이나 마귀가 주로 밤에 활동하기 때문이다.

닭이 울어 아침이 되면 밤에 활동하는 귀신이 물러간다는 의미가 된다.         

                                           

세화는 연초(年初)에 한시적으로 사용하다 버리는 그림이다.

왕이 도화서 화원들에게 ‘닭 그림’이나 ‘호랑이그림’을 그리게 해서 신하들에게 나눠줬다는 기록이 있다.

새해 부정한 기운을 없애고 밝고 좋은 날을 맞이하라는 의미로 대문이나 집 벽에 붙였다.        

[목판에 새겨 대량으로 찍어낸 닭 그림이다. 새벽에 우는 닭은 귀신을 쫓는 능력을 부여받았다. 주로 닭 한 마리만 그린다. 이런 그림을 벽사용 세화, 혹은 문배화라고 부른다.]     


도사나 무당 중에는 닭의 피로 부적을 쓰기도 했다.

귀신을 쫓는 능력에다 강력한 의지와 희생을 뜻하는 붉은 피가 결합하면 더욱 효험이 있다고 여긴 것이다.   

  

둘째, 닭의 볏 모양에 의해 출세의 상징이다.      

수컷의 볏은 암컷보다는 크고 색깔도 선명하다. 조류는 대개 색깔에 민감하다. 잘 익은 열매인지를 구분하고 인지하는 색이 바로 붉은색이다.

닭은 집단생활을 하는데 하나의 우두머리를 정하기 위해 수탉들은 피를 튀기면서 싸운다. 크고 선명한 붉은색의 볏을 가진 수탉은 강한 힘을 가졌다는 상징으로 암탉에게 인기를 얻는다.     


이런 닭 볏을 선비들은 계관(鷄冠)이라고 불렀다.

닭이 모자를 쓰고 있는 형상을 한자로 표현한 것이다.

닭이 모자를 쓴 것은 관직을 가졌다는 의미로 수용했다.    

  

조선시대 선비의 꿈은 수기치인(修己治人)으로 압축할 수 있다.

공부와 수양을 한 후 세상에 나아가 백성을 위한 정치를 펼치는 것이다.

이를 출세(出世)라고 했다.          

[오원 장승업이 그린 닭 그림이다. 닭 볏을 문자 상징으로 바꾸어 출세의 의미를 넣었다. 닭이 높은 바위에 올라가 있는 모습은 높은 관직을 상징한다. 또한 맨드라미와 함께 그린 닭 그림은 관직 위에 관직을 더해 높은 관직에 오르기를 기원하는 내용을 가진다.]     


닭 볏을 계관(鷄冠)이라고 쓰고, 다시 계관(鷄冠)의 모자 관(冠)을 관직(官職)의 관(官), 즉 벼슬로 바꾸어 해석한다.

우리말인 볏은 벼슬과 운률이 잘 맞는다.

이렇게 닭 볏 때문에 닭은 관직을 상징하는 동물로 바뀐다.

     

닭 그림에 맨드라미를 함께 그려 넣는 경우도 있다.

맨드라미는 닭 볏과 비슷하게 생긴 생태적 특성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맨드라미를 계관화(鷄冠花)라고 불렀다.     

계관화(鷄冠花)의 관도 닭 볏과 마찬가지로 관(官)으로 바꾸어 해석한다. 닭과 맨드라미가 함께 그려지면 관 위에 관이 얻어진 모습으로 높은 관직을 상징하게 된다.  

 

셋째, 닭의 집단생활은 가정의 화목을 상징한다.

닭은 무리를 이루어 생활하고 우두머리를 중심으로 엄격한 위계질서를 가진다.

하지만 이런 닭의 생태적 특성은 조선 말기에 이르러서야 상징성을 얻는다.      


조선 말기에는 삼정(三政)이 문란해지고 관리가 부패하고 외세의 침입으로 암울한 시대상황이 만들어진다. 공동체가 무너지면서 가문과 가족에 대한 집착이 강해졌다.     


이런 시기에 집단을 이루어 생활하는 닭의 생태적 특징은 화목한 가족의 상징으로 발전한다.

그렇다고 기존의 벽사와 출세에 대한 상징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기존의 상징 위에 화목한 가정이라는 상징이 추가되는 것이다.       


닭 한 마리를 그리던 벽사그림에서 닭과 맨드라미를 함께 그리는 출세그림으로 발전하고 다시 수탉과 암탉, 병아리를 함께 그려 화목한 가정을 뜻하게 된다.

여기에 부귀의 상징인 모란이나 다산의 뜻하는 원추리를 추가하기도 한다.

[풍요와 화목/심주이/디지털화. 닭 그림은 출세하여 궁궐을 장식하는 역할을 할 뻔했다. 하지만 봉황에게 밀려 그 뜻을 이루지 못했다. 출세의 뜻을 접고 낙향한 닭 그림은 백성들의 품으로 돌아왔다. 두려움을 없애고 풍요에 대한 희망, 가정의 화목을 주었다.]    


고급문화가 대중화를 이루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은 바로 비빔밥 현상 혹은 융합이다.

하나의 그림에 여러 상징을 결합하여 많은 사람들의 이해와 요구를 담는 것이다.

수탉과 암탉, 병아리, 바위, 맨드라미, 모란, 원추리 따위의 요소가 결합된 그림은 출세를 하여 부귀를 얻고 화목한 가정을 이루며 사악한 귀신을 쫓아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그야말로 종합선물 꾸러미가 되었다.  

     

“헉헉, 정말 길고 기네. 닭에 이렇게 많은 사연이 있었다니, 놀랍고 존경심마저 드네. 이런 얘기를 듣고도 치킨이 목으로 넘어가겠는가? 이 때문에 치킨 집 사장들이 닭 그림을 걸지 않기로 담합을 했을 거란 합리적인 의심이 드는데, 자네 생각은 어떤가?”

      

“닭을 주인공으로 하는 그림 중에 가장 발전한 것은 온 몸을 금색으로 칠한 황금 닭 그림이 있네. 궁중화원이었던 김홍도가 황금 닭을 그린 일본화를 베껴 그렸다고 기록하고 있지.”


“황금 닭이라니, 멋진데. 실제 황금 닭 느낌의 치킨 광고를 본 적이 있네. 보기만 해도 고급지고 먹음직하더군.”

     

“김홍도에 의해 금계가 그려졌지만 황금 닭은 궁궐에서 살아남지 못했네. 벽사 역할을 하는 닭에게 황금 칠은 무의미하지. 문제는 닭에게 붙은 출세의 상징 때문이라네.”  

   

“출세와 황금은 멋진 조합이 아닌가? 출세하면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으니 말이네.”     


“바로 그것을 경계한 것이지.

출세의 목적은 백성들의 평안함을 구현하는 것일세. 만약 높은 관직에 올라 욕망을 채우고자 한다면 백성의 삶은 피폐해질 것이 분명했지.

금은 허영과 사치를 뜻하네. 이 때문에 조선은 공식적으로 금이 없다고 주장하며 채굴도 하지 않는 나라였네. 궁궐에서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금을 사용하지 않았네.

출세는 권력을 가지는 일이네. 이런 상징을 가진 닭 그림에 황금 칠을 한다는 것은 용납되지 않았네.”

     

“대만이나 홍콩 같은 곳에서는 금칠을 한 황금 닭이 액을 막고 풍요를 준다며 광범위하게 통용되고 있다고 알고 있네.”     


“도교의 영향 때문일세. 우리는 예나 지금이나 도교나 미신을 좋아하지 않네. 우리의 철학 수준이 그만큼 높다는 의미가 아니겠는가.”

[단원 김홍도가 그렸을 것이라고 추정하는 금계도 부분. 삼성 리움박물관 소장이다. 일본 화가가 금계도를 그려 정조에게 바쳤다고 한다. 정조는 이 그림을 김홍도에게 모사하게 하여 화성행궁이 두었다고 한다.]    


“아무튼, 닭의 승승장구는 여기서 끝난 거구만. 닭의 운명도 기구하네.”   

  

“꼭 그렇지도 않네. 대신 이라는 말이 있지. 적당한 것이 없을 때 그것과 비슷한 것으로 대체하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지.

사실, 닭의 경쟁 상대는 꿩이 아니라 봉황이었네. 봉황은 태평성대의 상징으로 궁궐 여기저기를 장식했지. 황금을 두르고도 궁궐 입성에 실패한 것은 이미 봉황이 자리를 잡고 있었기 때문이지.”   

  

“그럼 봉황 대신 닭이란 말인가?”    

 

“중국에서는 봉황 대신 공작새나 금계를 수용했지만 우리나라에는 없는 동물일세. 결국 현실적인 닭이 그 역할을 대신한 것이지.”    

 

“닭의 운명은 파란만장하네. 잠깐 동안 영어를 배워 치킨이 되었고, ‘코스닭’ 체인점을 운영하는 글로벌 리치의 상징이 되기도 했지. 하지만 결국 농장이 아닌 공장에서 태어나 백숙이나 튀김으로 짧은 생을 마감하고 만다네. 이런 닭이 봉황 역할을 하기에는 역부족이 아닌가?”   

  

“닭의 역할은 봉황과 다르지 않네. 자연재해나 전염병 귀신이 없고, 민본정치를 통해 백성이 평안하고 가족이 화목하면, 그것이 태평성대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갑자기 치킨은 진리라는 말이 생각나는군. 치킨을 먹으면 기분이 좋아지는 것도 이 때문일까?”    

 

“그건 자네의 먹성이 좋아서라네. 말이 나온 김에, 친구들이랑 치맥 어떤가?”     


“좋지. 이렇게 친구들이랑 맛있는 치킨을 먹으며 노는 것이 나에게는 태평성대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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