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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규섭 Mar 25. 2023

고추잠자리가 정력제라구요?

연꽃과 고추잠자리

“웃기는 얘기 하나 하겠네.

할머니가 바구니를 들고 남자 목욕탕에 간 까닭은?”    

 

“때 밀러?”

.

.

.

“고추 따러. 큭큭큭...”   

  

“남자 속옷을 다섯 글자로 하면?”

     

“쌍방울? 이건 세 자인데.”

.

.

.

“고추잠자리! 으하하하...”   

  

“아, 썰렁해.”   

   

“우리 그림 중에 고추잠자리를 그린 것이 있는가?”         

[단원 김홍도/연꽃과 고추잠자리/종이에 채색/32.4*47cm/조선 후기/간송미술관 소장]


“단원 김홍도가 그린 [연꽃과 잠자리]라는 작품이 있네. 

연꽃과 함께 빨강, 푸른색의 잠자리 두 마리가 짝짓기를 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지.

어지간히 뜬금없는 장면이지만 성적 해학이 있어 유쾌하다네.”     


“연꽃은 원래 군자의 상징이 아닌가? 진흙탕에서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연꽃의 생태를 인격의 결정체인 군자에게 투영한 것으로 알고 있네.

이런 고매한 군자의 그림에 교미하고 있는 잠자리라니, 생뚱맞군.” 

    

“이 작품은 이중 상징을 가지고 있다네. 선비나 양반이 보는 관점, 중인이나 백성이 수용하는  관점이 통합되어 있지.

연꽃은 군자의 상징이기도 하지만, 이 작품에서는 출세(出世)의 상징으로 표현했을 것이네. 

짝짓기를 하는 잠자리를 넣은 것 때문이지.

이 작품을 주문한 사람은 선비보다는 돈 많은 중인일 가능성이 크네.”  

   

“잠자리는 무슨 상징을 가지고 있는가?”     


“잠자리는 잔자리에서 변형된 말이네. 

앉아 있는 모습이 마치 졸고 있는 모습처럼 보이기에 잠자리가 직관적으로 수용되었지. 

우리그림에서 잠자리의 상징은 다산(多産)일세.

잠자리의 몸통이 남성의 성기와 닮아서 그렇다고 하는군.      

동의보감에는 ‘양기를 강하게 하고 음경을 따뜻하게 하며… 약으로 쓰려면 말려서 날개와 발을 떼고 볶아서 사용한다. 

눈이 푸르고 큰 것이 좋은데 고추잠자리는 더욱 좋다.’며 잠자리를 정력제로 서술하고 있네.”    

 

“자세히 보니, 붉은색 고추잠자리와 푸른색 잠자리가 뒤엉켜 있군. 이건 분명 남녀 성교를 의미하네. 남녀의 성행위를 뜻하는 비속어 잠자리와도 같지 않은가. 

혹시, 김홍도는 자녀를 많이 낳기 위해서는 남녀가 잠자리를 많이 가져야 한다는 의미로 짝짓기 모습을 그린 것은 아닌가?”     


“김홍도의 작품 성격으로 보면 충분히 가능한 추론일세. 평소에도 성에 관련한 아재 농담을 자주 했을 것이네.” 

    

“고상한 선비들이 뒤로는 호박씨를 까고 있었단 말인가?”  

   

“조선의 선비들은 불륜, 강간, 성추행 따위에는 무자비하고 엄격하게 처벌했네. 

그렇다고 남녀의 연애나 성관계를 나쁘게 보지 않았네. 그냥 자연의 이치라고 여겼지.

혜원 신윤복의 야한 풍속화가 수용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정서가 바탕에 깔려 있었기 때문이지.”   

    

“이 작품을 본 남성들은 낄낄거리며 웃을 것이고, 여성들은 얼굴을 가리며 묘한 웃음을 흘렸을 것이네.”  

   

“혹시 누가 점잖지 못한 그림이라고 타박을 한다면 이렇게 대답했지.

출세를 하고, 아내와 금슬 좋게 지내고 많은 자녀를 두어 가정이 번창하길 바랍니다.”  

   

“그런데 정말 고추잠자리를 먹으면 정력이 강해지는가?” 

    

“그런 약이 존재할 리가 있겠는가. 그저 삼시 세끼 잘 먹고, 운동하며 지극히 사랑하는 마음이 가장 큰 정력제일세.” (*) 

             

[잠자리에 관한 참고 작품]         

[잠자리는 제법 오래전부터 그려졌다. 율곡 이이의 어머니인 신사임당(1504년~ 1551년)이 그린 초충도(草蟲圖)에 검은 잠자리가 표현되어 있다. 

이 작품은 수예용 초본이라는 견해도 있다. 수예 작품에 잠자리가 들어간 것은 여성이 먼저  잠자리의 상징을 수용했다는 말이다.]         

[현재 심사정/연꽃과 고추잠자리/비단에 채색/35*28.2cm/1762년.

김홍도의 그림보다 앞선 시기에 그렸다. 김홍도는 심사정의 작품을 참고하여 그렸을 가능성이 크다.]     

[좌-원행을묘정리의궤 속의 준화(樽花). 1795년, 정조의 화성행차를 기록한 의궤이다. 

우-진찬의궤 속의 준화. 1848년, 헌종 때 순원왕후의 환갑 행사를 기록한 의궤이다.

준화는 가짜 복숭아나무를 만들어 세우고 꽃과 각종 새, 곤충은 비단이나 종이로 만들어 청화백자에 넣어 장식했다. 큰 것은 높이 3m에 이른다.

잠자리를 다산(多産)의 상징으로 공식 인정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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