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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규섭 Mar 19. 2023

해외로 나간 왕실그림의 기막힌 사연

해학반도도와 해상군선도


[해학반도도 12폭 병풍/비단에 채색과 금박/780㎝, 세로 244.5㎝/20세기 초 조선/미국 데이턴 미술관 소장] 

문화재청 국립고궁박물관과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은 국내에 들여와 보존처리를 마친 미국 데이턴미술관(Dayton Art Institute) 소장 해학반도도(海鶴蟠桃圖)를 국립고궁박물관 특별전시를 통해 2020년 12월 4일부터 내년 1월10일까지 공개한다고 밝혔다.    

 

1941년, 외교관이었던 제퍼슨 패터슨(Jefferson Patterson) 부부는 해학반도도를 데이턴 미술관에 기증했다.    

  

“이 병풍은 삼촌 찰스 C. 굿리치가 1920년대 후반에 구입한 것인데, 나는 이 작품에 대해 아는 바가 없었다. 삼촌은 응접실을 다시 지어 이 작품이  거의 다 차지하도록 놓았다. 1932년 삼촌이 사망한 후 유품들의 우선 선택권을 받은 나는 이 작품을 놓을 가장 적합한 곳이자 이 작품에 흥미를 보일 곳으로 데이턴 미술관이 떠올랐다.”     


데이턴 미술관에 따르면 해학반도도는 찰스 굿리치가 1920년대 서재를 꾸미려고 구매했고, 그의 사후 조카가 1941년 9월 12일 브루클린박물관 관계자 주선으로 기증했다.     

데이턴 미술관에서 이 작품의 원산지를 일본이나 중국이라고 여겼다.

크게 그린 학, 배경의 금박 표현은 전형적인 일본화풍이기 때문이다. 이후에는 중국그림으로 분류해 두었다고 한다.     

하지만 여러 전문가들의 논의 끝에 이 작품은 한국의 왕실과 관련된 20세기 초 작품으로 판단했다.   

   

“1900년 대 초반이면 조선이 실질적인 일본의 식민지였는데, 왕실에서 어떻게 해학반도도를 그릴 수 있었단 말인가?”  

   

“2017년, 이도 미사토(井戶美里) 일본 교토공예섬유대학 교수와 김수진 미 하버드대 옌칭 연구소 연구원이 현지 조사를 진행해 한국 작품으로 분류했다네. 작품의 크기, 비단을 사용한 점, 십장생 주제, 12폭 병풍 형식이란 점이 그 이유였지.

이 작품의 창작 시기는 대략 1900~1928년으로 추정하는데, 국가미술기관인 도화서나 자비대령화원은 폐지되었으니 왕실에서 공식적으로 창작한 작품은 아닐세.

추정컨대, 여러 사람이 돈을 모아 주문 창작한 계병(契屛)일 것이네.”   

  

“이 작품이 어떻게 미국까지 간 것인가?

찰스 굿리치가 조선이나 일본을 방문해서 구입했는지, 미국에서 업자를 통해 구매했는지도 모른단 말인가?”  

  

“이 작품에 대한 유일한 정보는 굿리치가 1920년 대 후반에 구입했다는 사실 뿐이네. 어떤 경로로 조선의 왕실그림이 머나먼 미국까지 갔는지는 오리무중일세.

찰스 굿리치는 타이어 업계의 선구자인 B. F. 굿리치의 아들이자 미국의 사업가로 알려져 있네. 딱 여기까지네. 더 이상의 정보는 없네.”  

   

“단지 서재를 꾸미기 위해 생소한 해학반도도를 구입했다는 것은 이해되지 않네. 드라마틱한 사연이 숨어있을 거라는 합리적인 의심이 드는군.”

     

“상식 안에서 여러 정보를 모아 추정 소설을 써 볼 수는 있네.

일단은 미국인 사업가 찰스 굿리치가 1920대에 조선을 방문했다는 전제가 필요하네.

해학반도도는 전형적인 왕실그림으로 일반 백성들은 일생에 한 두 번 볼까 말까하는 희귀한 작품일세.

하물며 조선이나 왕실그림을 모르는 외국인이 12폭, 가로 8m에 이르는 엄청난 대작을 구입하는 경우는 번개 맞아 죽을 확률보다 희박하기 때문이지.”   

  

“12폭 병풍은 조선에서도 희귀하다지. 가격은 얼마쯤으로 예상하는가?”    

 

“1920년, 화재로 손실된 창덕궁을 재건하는 과정에서 대조전, 희정당, 경훈각을 장식한 6점의 부착벽화를 창작하는데 들어간 비용은 약 30억이었다고 하네. 한 점당 5억 원이 들어간 셈일세.

지불한 돈은 3000원이었는데, 당시 서울의 중산층 집이 300원 전후였다네.

현재 서울 중형 아파트 가격에 견주면 30~50억 정도의 제작비용이 들어간 것과 같네.

데이턴 미술관 해학반도도는 12폭이나 되는 대작이고, 배경을 금박으로 채웠으니 창덕궁 재건벽화보다는 비쌌을 것이네.”   

  

“찰스 굿리치는 사업가인데, 이렇게 엄청난 돈을 들여 구매했다면 세금 때문에 반드시 거래명세서를 작성하고 남기는 것이 정상 아닌가?”   

  

“거래명세서는 제시하지 못했네. 찰스 굿리치 조카 부부가 유품을 팔지 않고 미술관에 기증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걸세.     

거래명세서가 있는 사례가 있다네.

1927년, 미국 호놀룰루 미술관에서는  야마나카 상회를 통해 해학반도도를 구입했지.

야마나카 상회는 오사카에서 시작해 19세기 말 미국에 진출한 일본의 대표적인 골동품 회사였지.

이 작품은 1902년에 창작했으며 관리들이 자금을 모아 제작한 계병일세.

국가자금으로 창작하지 않았기 때문에 회사 명의로 구매할 수 있었지.

일본 회사는 조선 왕실 그림을 싸게 구입하여 일본이나 미국에 비싸게 팔아 이익을 남기려고 했다네. 호놀룰루 미술관에서 구입한 것도 하와이에 이주한 일본인이 많았기 때문이네.”      

[미국 하와이에 있는 호놀룰루미술관이 소장한 12폭 병풍 해학반도도, Cranes and Peaches Folding Screen, Collection of the Honolulu Museum of Art. Gift of Anna Rice Cooke, 1927.사진=호놀룰루미술관)   

  

“이 해학반도도가 장물일 가능성은?”   

 

“만약 찰스 굿리치가 조선을 방문했다면, 훔친 장물이 아니라 뇌물이나 선물일 가능성이 크네.

조선 그림에 문외한인 미국인이 거금을 주고 감상용 또는 투자 목적으로 작품을 구매했다는 것은 상식에 어긋나기 때문이지.”  

   

“누가 미국인 사업가에게 뇌물을 준단 말인가?”

    

“당시 12폭 해학반도도는 조선 최고의 보물이었네.

미국인 찰스 굿리치에게 이런 그림을 뇌물로 줄 수 있는 사람은 조선총독부나 친일파 부자밖에는 없네.”

    

“100여 년 전에도 미술작품을 뇌물로 주었다는 말인가?”    

 

“아닐세. 20세기 초반, 조선 땅에서는 그런 문화가 없었지. 이유는 간단하네. 작품을 현금으로 바꿀 방편이 없었기 때문이지.

그런데, 조선총독부나 친일파 부자들이 팔지도 못하는 병풍그림을 뇌물로 주었을 가능성은 거의 없네.

만약 찰스 굿리치에게 뇌물을 주고자 했다면 일본 돈이나 채권, 금은보석 따위의 현물을 사용하는 것이 훨씬 현실적이지.”  

   

“뇌물이 아니라면 선물이겠네.”

    

“왕실그림을 선물할 수 있는 곳은 딱 한군데 있지. 바로 이왕가(李王家)라네.

껍데기만 남은 왕실이지만, 왕실그림의 주도권 정도는 가지고 있었네. 실제 창덕궁 재건 벽화도 이왕가가 주도했다네.”  

   

이왕가(李王家)는 1910년 한일 병합 조약 이후 대한제국 황실을 왕공족의 일개 가문으로 격하하여 부르는 명칭으로 일본에 의해 만들어졌다. 보통 대한제국의 고종과 순종의 가족을 이르는 말인데, 1910년 8월 29일에 창설되어 1947년 5월 3일까지 유지되었다.     


“이왕가에서 무슨 이유로 미국인 사업가에게 병풍그림을 선물로 주었단 말인가?”     

[해상군선도/10폭 병풍/비단에 채색/20세기 초]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앞선 사례가 있네.

조선 최초의 무역회사 세창양행 사장이었던 독일인 칼 볼터(Wolter)는 20세기 초 고종 황제로부터 10폭 병풍 해상군선도(海上群仙圖, 연대 미상)를 하사 받았네.

해상군선도 10폭 병풍은 서울옥션에서 6억 6000만원에 낙찰되었지.

아무튼, 칼 볼터는 1887년 30세에 조선 최초의 무역회사 세창양행 지사장으로 부임하여 20여 년간 조선에서 살았네.

1898년 독일 황제 빌헬름 2세의 동생 하인리히 친왕이 방한해 고종 황제를 알현할 때 수행했던 인물이지.     

고종은 일본의 눈을 피해 독립자금을 마련하여 독일은행에 숨기려 했다는 일설이 있네.

이 일을 맡은 사람이 칼 볼터였다고 하지.

볼터는 거액의 돈을 맡길 정도로 신의가 있었던 사람이었네.  

고종은 이런 볼터의 공적을 치하 하는 차원에서 해상군선도(海上群仙圖)를 하사한 것이네.

특별히 해상군선도를 선택한 것은 위험한 바닷길을 안전하게 건너가라는 의미도 있었다고 하네.

볼터는 1908년 해상군선도를 가지고 조선을 떠났는데, 비밀 자금이 어떻게 사용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네.”  

   

“자칫 목숨이 위태로울 수 있는 막중한 임무를 맡긴 사람에게 고작 병풍그림만 선물했다는 말인가?”  

   

“조선에서 그림을 선물하는 것은 돈보다 중요한 의미가 있네. 공적이 있는 사람에게 왕이 그림을 하사하는 것은 조선의 오랜 전통일세.

공로를 세운 신하에게 초상화를 하사하거나 관료에게 그림을 하사하는 세화는 일상적인 일이었다네.

조선에서 그림은 공공성이 강하고 양심의 징표 같은 역할을 했다네.

고종과 볼터 사이에는 주고받은 대화나 어떠한 밀지(密旨)도 없었네. 병풍그림 하나면 충분했기 때문이지.”  

  

“돈이 모든 것의 중심인 현대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네.”    

 

“왕이 하사하는 그림에는 정치적 목적이 담겨있지.

만약 미국인 사업가 찰스 굿리치가 조선에 왔다가 해학반도도를 하사 받았다면, 그에 합당한 정치적 과업을 맡았을 가능성이 있네.

하지만 찰스 굿리치는 그림을 받은 지 10년도 되지 않아 사망했고, 조선은 일본의 식민지 상태였다네.

당시 일본과 미국은 동맹 관계였으니 굿리치가 조선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네.”  

   

“소설 같은 추정이지만, 그림 하나로 마음을 나누고 세상을 바꾸고자했다는 것이 특별하게 다가오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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